[[파일:hwwsOEZ.png]] [목차] == 개요 == [[일본]]의 미해결 실종 사건. == 여자친구와 함께 실종 == [[1981년]] [[6월 20일]], 카나자와 국제 호텔에 근무하는 당시 18세의 회사원 아다치 토시유키씨가 교제중이었던 여성과 함께 실종된 사건이다. 실종 당일 아침, 모친을 치과에 데려다 준 뒤 출근. 퇴근 후인 18시경 여자친구[* 동료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것으로 추정.]와 친구의 집을 찾았으며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하고 차로 친구의 집에서 나온 뒤 두 사람 모두 행방 불명. 그 후 오후 7시~7시 반 경 시라야마쵸 교차점에서 다른 친구가 지나간 것이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모습이다. == 어린 아이에게서 걸려온 의문의 전화 == 이전에도 2,3일 정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이 있었기 때문에 아다치씨의 미귀가에 모친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며칠 뒤 직장에서 무단 결근이라는 연락을 받고 실종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외출 시 통장이나 인감, 현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가지고 나간 자동차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실종 8일째 되는 28일 저녁, 아다치씨의 자택에 어린 여자 아이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토시유키 붙잡혀있어(俊之つかまっているよ)"'''라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10분 뒤 아무 말 없다가 끊기는 무언 전화도 걸려왔다고. == 납북의 가능성도 == 이시카와현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히 사랑의 도피로써만 치부했으나 [[일본]]의 '특정 실종자 문제 조사회'가 [[북한]]에 따른 [[납북]]일 가능성에 염두에 두고 특정 실종자로써 명단에 기재하고 있으며 납북 문제에 대해 북한 측에선 [[2014년]] 7월에 전면적으로 조사를 실행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진전은 없다. 실종 34년째가 되는 [[2015년]] 6월 20일 아다치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현장 근처에선 모친 미치코씨와 약 50명의 인원이 참가해 하루라도 더 조속한 귀가를 바라는 집회가 열렸으며 미치코씨는 "한번이라도 만나서 '어서 오렴'이라고 말하고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집회에선 정부에 [[북한]]에 진상 규명 요구를 결의하였고 7월 22일에는 [[도쿄]]에서 가족회에 따른 긴급 국민 집회가 열렸다. [[분류:일본의 미제 사건]][[분류:쇼와 시대/사건사고]] [[분류:1981년/사건사고]][[분류:이시카와현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