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개성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887년 출생]][[분류:198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심영식}}}'''[br]'''沈永植'''}}}}}}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심영식.jpg|width=100%]]}}}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7년]] [[7월 15일]] || ||[[경기도]] [[개성특별시|개성군]] 송도면 북본리 || ||<|2><color=#fff> '''사망''' ||[[1983년]] [[11월 7일]] || ||[[경기도]] [[인천시]] ||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color=#fff> '''종교''' ||[[가톨릭]]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심영식은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북본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가톨릭]]에 입교했고, 심명철(沈明哲)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결혼 후 아들이 9살이 되던 때에 남편마저 사망했기에 홀로 자식을 키워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업에 뜻을 두었고, 개성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현재 [[호수돈여자중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학교]]는 [[대전광역시]]에 있다.]를 졸업했다. 1919년 3월 3일 개성군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형사가 "맹인 주제에 시위에 왜 가담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눈이 멀었을지언정 마음까지 멀었겠느냐? 눈이 멀었을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다." 이후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인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다가 1983년 11월 7일에 [[선종(가톨릭)|선종]]했다. 사후 7년 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심영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기타 == * 2020년 8월 1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에 심영식의 아들 문수일 씨가 출연했다. 그는 어머니가 "옥중 생활 이야기를 하셨는데, 간수한테 가끔 불려 나가서 뺨을 많이 맞았다. 그래서 한 쪽 고막이 터져서 돌아가실 때까지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쓰시던 [[안경]]을 가져왔다. 그는 "돌아가실 때까지 쓰시던 안경"이라며 "지금 보니까 안경이 조그마하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0/08/830894/|#]] [youtube(jDy6sjuxG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