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mimgnews1.naver.net/201407271042770123_53d45b690377c_99_20140727105304.jpg]] [[2014년]] [[7월 26일]] [[세바퀴]]에 출연하여 아버지 심상우에 대해 언급한 [[심현섭]]. 沈相宇 [[1938년]] [[5월 7일]] ~ [[1983년]] [[10월 9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청송 심씨|청송]](靑松)[* 안효공파 23세손 상(相) 항렬]. 로케트전기 창업주인 심만택의 [[아들]]로, 위로는 호남전기 2대 총수 큰형 심상하가 있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심진섭(영어강사), [[심현섭]]([[코미디언]])이 있다. == 생애 == 1938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부]]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 미국 몬타나 주립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68년부터 큰형 심상하가 호남전기(훗날 로케트전기) 회장이 되자 그는 사장이 되었고, 1970년 심상하 회장 사후에도 사장 직위는 유지하였다. 1971년부터 둘째 형인 심상수와 함께 전 사주인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광주일보|전남매일신문]]을 인수받아 1980년 언론통폐합 전까지 부사장(1971~1973)과 사장(1973~1980)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 호남전기의 실세인 형수 진봉자 여사와 심상수 회장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imiz2&logNo=1013531183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갈등]]으로 심상수는 호남전기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그도 사장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후임 사장으로 21세의 조카 심홍근이 앉았으나, 경험 미숙과 경영권 분쟁, 방탕한 생활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고 1977년 8월 9일에 강릉 옥천해수욕장 부근 개울에서 [[http://mnews.joins.com/article/1465388#home|자살하였다.]] 결국 호남전기는 1976년부터 호남 연고기업 14개가 인수했지만, 1978년부터 초창기 6주주들 중 하나인 전남일보(= 광주일보) 사주 남봉 [[김남중(언론인)|김남중]](1917~1987)이 경영권 경쟁의 승자가 되었다. 다행히 경제개발 및 유가, 외환, 금리의 3저호황 국면을 활용해 다시 번성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해외 유명 브랜드와 중국산 저가 건전지에 시장을 잠식당했고, 1998년에 로케트 상표권과 판매권을 질레트에 넘긴 뒤 하청업체로 전락하다 2015년 2월에 회사가 정리되어 사라졌다. 반면 자회사 진해전지는 1978년에 세방기업에 인수되어 '세방전지'가 되었다.][* 70년대에 호남전기의 경영권을 "자의반 타의반" 내려놓은 일부 유지들이 전북의 주요 전지업체 후원을 시작, 회사가 본격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1980년에 전남매일이 언론통폐합으로 전남일보와 합쳐져 생긴 [[광주일보]]의 명예회장을 맡은 그는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광주)|동구]]-[[북구(광주)|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임재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3월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는데 지금이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서로 분리된 직책이지만 당시에는 '''대통령 = 여당 총재'''였기 때문에 그만큼 여당 내에서 제법 무게있는 요직이었다. 심지어 심상우의 출신지를 감안하면 대단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계 각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직책이지만, 당 총재 비서실장은 좀처럼 보기드문 자리로 전두환 정부 때 신설된 직위이다. 하단에도 나와있지만, 심상우 비서실장은 평소 유머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매우 능숙한 사람이었는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전두환이 이렇게 실력과 유머감각을 모두 갖춘 심상우를 높이 평가해, '''전례가 드문 직위'''를 신설해가면서 곁에 가까이 두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심상우 의원의 비서실장 임기는 짧았는데, 총재 비서실장 영전 7개월 후,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따라 버마(현 [[미얀마]]) 순방에 동행하였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별세]]했기 때문. [[향년]] 45세.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심상우의 사망 후 고인이 생전 닦아온 터전들 중 일부는 유가족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가로챈 경우도 있어, 유가족들의 슬픔이 더했다고 한다. 생전의 심상우는 정계에 투신한 후 기자들을 상대할 일이 많아지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방편으로 유머를 조금씩 곁들이곤 했는데 사실 원래부터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쾌활한 성격이었으며, 나이차가 10살 가까이 되는 후배들이라든가 자신 밑에서 일하는 비서 등에게도 '''존칭을 쓰면서까지''' 친절하게 대했다고.[* 이게 80년대 중반 이전임을 감안하면.....][* 그런데 사망 직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표정이 매우 굳어있는데, 훗날 심현섭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 날따라 아침부터 표정이 굳어있고 말수도 적었다고.'''] 훗날 희극인의 길을 걷게 된 [[차남]] 심현섭 또한 [[군기]]가 엄하기로 악명높은 희극계에서 후배들을 때리거나 심하게 괴롭히는건 고사하고 군기 자체를 좀처럼 잡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볼 때 선친의 [[대인배]]스러운 품성을 잘 물려받은 듯. 심상우 의원의 아내 임옥남 씨는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살다가 2019년 5월 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시]] [[동구(광주)|동구]]·[[북구(광주)|북구]]) || [[민주정의당]] || 36,489 (22.96%) || '''당선''' (1위) || || [각주] [[분류:제11대 국회의원]][[분류:민주정의당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38년 출생]][[분류:1983년 사망]][[분류:광주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테러 피해자]][[분류:폭발물에 죽은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청송 심씨]] [[분류: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