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KBS 명작 다큐멘터리, rd1=신 실크로드, other2=기아자동차의 버스 그랜버드의 등급 실크로드, rd2=기아 그랜버드, other3=SPRITE 동인팀의 게임, rd3=실크로드 시리즈, other4=조이맥스의 MMORPG, rd4=실크로드 온라인, other5=다크웹의 유명한 마약 불법 거래 사이트, rd5=실크 로드(블랙마켓),,)]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ilk_road_map.png|width=100%]]}}}|| ||<bgcolor=#ffffff> {{{#000000 기원후 1-6[* 5세기에는 훈족이 캅카스 지역의 교역망을 점령했으며, 6세기에는 소그드인이 튀르크족에 동화되었다.]세기경 실크로드 교역망의 분포도.}}} || [목차] {{{#F59908 {{{+1 Silk Road}}} }}} == 개요 == [[중국]]과 [[지중해]]를 연결하던 무역을 지칭하는 개념 혹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서 교역 루트'''들을 의미한다. 이 루트를 통해 동서 간의 문물이 왕래했으며 이로 인해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도시나 마을이 생겼다. == 어원 ==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여담이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 이 사람의 조카다.]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연구하던 중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것에서 착안하여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 즉 '비단길'로 명명하면서 사용되었다. 이 실크로드라는 말은 동서방 간의 교역로 중 [[스텝(지리)|스텝]]지대의 '초원길'과 [[인도양]]을 통해 이어지는 '바닷길'을 제외한 '''[[사막]]과 [[오아시스]] 일대의 도시들을 거치는 교역 경로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교역로가 확대되면서 다소 부적절해졌지만 유라시아의 원거리 [[무역]]과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적이고 관용적인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부른다. 양측 기점은 동양 쪽은 동아시아와 서양 쪽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가운데의 주요 경유지. [[한반도]]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되는 물품의 소비국 중 하나로, 지금도 당시의 이런저런 수입품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 역사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163417996_bd8209d237_b.jpg|width=100%]]}}}|| [[투르판]]의 [[고창국]] 고성 유적 넓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기원전 10,000년 전후 [[빙하기]]가 끝난 후 [[문명]]이 발생하고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몇 갈래의 교통로로서 지금까지 문명 간 교류의 통로로 기능하는 것을 지칭한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기원전 8~9세기부터 만들어져 근대 이전까지 기능한 동서문명 교류의 통로를 지칭한다.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의 경우 중앙아시아의 도시국가나 [[유라시아]]의 [[유목]]국가들에게는 부와 국력의 원천이기도 했으며, [[사산조 페르시아]]부터 [[일 칸국]]에 이르기까지 [[서아시아]]의 국가들에게도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했다. 그러나 16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대서양]] 바다를 통한 대양무역이 확대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길이 완전히 "쇠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항해시대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서구 중심적 옛 사관에서는 내륙 실크로드가 교역루트로서 몰락했다고 간주하기도 했지만, 이쪽도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퍼센트가 줄어들었을 뿐 16세기 이후에도 이들 유라시아 내륙교역로의 무역랑의 절대량은 계속 증가했으며, [[티무르 제국]]과 제국 붕괴 이후의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러시아]],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엮는 삼각무역의 요충지로서 전성기를 지내며 번성하였다. [[러시아]]는 이곳에서의 모피무역을 비롯한 각종 교역에서 얻은 자본을 통하여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실크로드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게 완전히 정복되는 건 한참 이후의 일이다. 근대에는 러시아에 의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비롯해 여러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되었으나 냉전시대 철의 장막으로 [[공산권]] 내부의 교통로 역할로 그 입지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냉전이 끝난 21세기에는 옛 실크로드를 달리는 철도의 유용함이 주목받고 있다. 내륙 수송을 하기에는 해운은 비효율적인 면이 있고, 안전성, 수송량, 속도 등에서 철돋 수송이 해운보다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원래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슬람 세력([[오스만 제국]])에 의해 육로 교역길이 막혔기에 새로운 교역길을 만들기 위한 것 때문이었다. == 종류 == 크게 동서교역로는 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의 3대 간선과 마역로, [[붓다|불타로]], [[라마|라마로]], [[메소포타미아]]로, [[호박(보석)|호박로]]라는 5대 지선으로 나뉜다. 다만 이런 복잡한 구분이 생긴 것은 19세기 즈음에 서구 [[제국주의]]의 근대적인 팽창 과정에서 실크로드 연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에 더욱 심해졌는데 80년대의 [[일본]]이나 한국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실크로드 교역로 연구 자체가 특정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향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이 실크로드 범위에 일본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일본을 포함시키면 중간에 있는 [[한반도]]도 당연히 무역의 한 축으로 포함되는 것이 정상인데, 일본 학계에서는 [[한반도]]를 경유지로 전락시키거나 아예 배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일본이 자주 보이는 역사 왜곡의 일환이다. 실제로 [[국립경주박물관]]에만 가봐도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신라 황금보검]]이나 로만 글라스, 유리공예 등 서역 상품과 금속 기술을 볼 수 있다. 만약 일본의 주장대로 한반도가 실크로드 교역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면 신라의 금속 기술을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것이 된다. 한국 학계에서도 만주-초원 루트와 중국 루트를 건너 [[신라]]와 [[발해]], [[고려]]까지 실크로드의 주역으로 보고 연구되는 편이다. [* 물론 일본 얘기는 대충 빼고 한반도의 역할에 집중하는 편. 간혹 일본에 문물을 '전해줬다'는 식으로 넣어주기도 한다.] 가장 먼저 개척된 곳은 '''초원길'''로서 [[흑해]], [[아랄해]], [[카스피해]] 일대에서 살던 [[스키타이]]인들이 개척했는데 유라시아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며 [[선사 시대]]부터 이용되었다. 오아시스로가 개척되기 전부터 초기 문명 전파의 주요 통로로 기능했었다. [[몽골]] [[고비 사막]] 부근에서 [[흉노]]가 성장하면서 광활한 초원지대가 단일한 정치 체제로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초원길 경영이 이루어졌다. 이 초원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흉노의 [[선우]]에게 통행증을 제시해야 했는데, 통행증이 없다면 이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하므로 신체적, 경제적인 한계가 굉장히 많이 따랐다. 그러나 흉노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이 과정에서 한나라의 비단이 헐값 혹은 공짜로 흉노에 유입된다. 흉노는 이 [[비단]]을 그대로 서부 지역에 전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오아시스로'''는 [[파미르 고원]] 서쪽의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왕조 시기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이 인도 [[간다라]] 지방까지 교통로를 건설하면서 개척되기 시작했고, 파미르 고원의 동쪽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장건]]이 [[월지]]와의 동맹을 위해 사신으로 파견됨으로써 착공하고 흉노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나타나는데 이렇게 파미르 고원의 양편의 교역로가 연결되게 된다. 통상 실크로드라고 하면 이것을 지칭한다. 이 길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로마 등등과 동아시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 로마에서 막연하게 중국 일대를 비단이 나는 나라라는 뜻의 [[세리카#s-6|세레스]]라고 부르는 것의 연원이 되었다.], [[로마]]의 [[유리(물질)|유리]]가 서로 전해졌다.[* 이 유리는 [[신라]]와 [[가야]]에까지 전해져서, 현재 많은 신라 [[고분]]에서 서역산 유리가 발굴되었으며 특히 황남대총에선 그야말로 쏟아져 나왔다. 상태가 온전한 유리공예품은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가야 지역의 경우도 [[합천]] [[옥전 고분군]]에서 로만글라스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또한 단 한 번뿐이지만 [[로마 제국]]의 사자가 [[한나라]]까지 오기도 했다. 중국의 교역로는 [[시안시|장안]]에서 돈황을 거쳐 [[천산 산맥]]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이것도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나눠진다. 이러한 구분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같은 자연적인 한계가 강한 곳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형성되었다. 초반에는 천산 산맥 남쪽을 지나는 길을 천산남로로 칭했는데, 인근 도시국가들이 물 부족과 [[사막|사막화]]로 쇠퇴하고 북방 민족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천산 산맥 북쪽 교역로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를 천산북로라고 한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제지 기술과 [[차]], [[도자기]], 비단을 전하게 된다. 그러나 서쪽의 [[이슬람]] 제국(압바스 왕조)이 팽창하자 당시 튀르크족들이 지배하고 있던 탈라스 강 쪽으로 군대를 보내다 압바스 왕조에 대패한다. 군 이때 이슬람에 잡힌 포로 중에 제지공이 있어서, 제지술이 이슬람과 유럽으로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보통 이 사막길의 종점은 위에서 말한 장안으로 설정하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게 중국 [[청두시|청두]]에서는 이 종점을 장안을 거쳐서 청두로 연장시킨다고 한다. 완전히 억지는 아니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게, 실크로드의 어원이 되는 중국 [[비단]] 중에서도 청두를 비롯한 [[쓰촨성]] 비단의 양과 질이 특히 고대부터 유명했기 때문이라고.[* [[삼국지]]에서 [[촉한]]이 [[위(삼국시대)|조위]]보다 나라가 훨씬 작음에도 대충 3국 구도로 대치가 가능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쓰촨의 특산물 비단(촉금, 蜀錦) 무역 수익이 있었다.][* 쓰촨성에서 히말라야 산맥 남부를 돌아서 인도로 직행하는 육로 무역도 가능하긴 했으나 지형이 험하고 현지 원주민들의 무관심으로 교역 규모와 수익이 적었다. 쓰촨성-[[윈난성]]-미얀마-아삼-벵골 루트는 13세기 원나라 시기가 되어서야 윈난성에 무슬림([[후이족]])이 정착하고 [[아삼]] 지역이 인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사막로'''인 카스-[[호탄]]-뤄창-[[돈황]]으로 이어지는 길에 한나라 때의 유적들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름처럼 매우 험한 길이다. '''바닷길'''은 1세기경에 개척되었고 인도양으로 향하는 이 길을 통해 본격적으로 원거리 무역이 성행했다. 이로써 당대 로마는 동방의 물건을 해상으로 운송할 수 있었으며 베트남, 중국 남부로 추정되는 지역에까지 교류를 확대했다. 해상 수송은 대량수송의 장점이 있어 도자기와 향료, 차 등이 주로 오갔다. 따라서 비단이 오고간 육지의 비단길에 빗대 이 길은 '향료길', '도자기길'로 불리기도 한다. 고대도시 [[페트라]]와도 연관이 있는데 페트라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2500㎞ 향료길을 잇는 관문이기도 했다. 고대 아라비아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페트라는 AD 2세기 로마에 함락된 이후 동서무역로의 중심이 비단길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닷길은 [[포르투갈]] [[바스코 다 가마]] 이후 [[대항해시대]] 항로에 포함되었다. == 문화 == 방송 매체의 영향으로 실크로드하면 비단 장수들이 [[낙타]] 타고 한가하게 사막을 건너는 모습이 연상될 수 있겠지만, 사실 비단 교역로는 사람 살기 힘든 동네였다. 특히 [[오아시스]] 주변으로 발달한 도시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물이 줄어들면 그와 함께 급격하게 쇠퇴하거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날아오는 어마어마한 모래 폭풍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모래 더미에 폭삭 파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초원길과 사막길의 개척 시기에 격차가 있는 것도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이다. (타클라마칸 사막 자체가 당대의 현지 언어로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이란 뜻이다.) 게다가 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도적 떼에게 습격이라도 당하는 순간엔 가진 물건을 모두 빼앗기기 십상이었다. 한마디로 비단 장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사막길을 건너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길로 중국, [[티베트]], [[인도]], [[네팔]] 등을 연결하던 [[차마고도]]가 있다. 한국인이 읽어볼 만한 개설적인 내용은 [[정수일]] 박사의 책과 김호동 교수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좀더 심층적으로 이슬람의 동점 이전 고대 실크로드의 역사에 대해서는 발레리 한센의 <실크로드: 7개의 도시>,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수잔 홧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 서양인들의 실크로드 탐험사에 대해서는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영상물로는 [[일본방송협회|NHK]]의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실크로드'가 있으며, 중국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와 합작 제작하여 [[시안시|장안]]에서 [[로마]]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당시는 중국이 덩샤오핑 체제하에서 갓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때라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OST를 뉴에이지 음악가인 기타로가 담당하였고 '[[https://www.youtube.com/watch?v=bR0bp-iCKhw|메인 테마]]'와 '[[https://www.youtube.com/watch?v=eRoDze-Uo3Y|캐러밴의 쉼터]]' 등이 유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훗날인 1984년 [[KBS]]에서도 수입 방영되었다. [[https://youtu.be/I9Hdy4TrebY|KBS 방영 버전 제1편(유튜브)]] 2005년 실크로드 제작 25주년을 기념하여 리부트판인 '[[신 실크로드]]'가 제작되었으며, 이 때는 [[일본방송협회|NHK]]와 [[중국중앙텔레비전|CCTV]]뿐만 아니라 [[KBS]]도 공동제작에 참여하고 LG그룹이 제작을 후원하였다. 이 다큐멘터리도 영상미와 음악이 뛰어난데 OST 담당은 [[요요마]]. 요요마 특유의 중후한 첼로와 서역의 이색적인 음률이 잘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카이 마사토]]가 일본에서 장안으로 유학하여 관리까지 지내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세이 신세이의 재연배우로 나온다.] 원래 시리즈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방송장비와 촬영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당시에 비하며 대단히 수려한 영상미를 뽑아낸다. == 현재 == 러시아 제국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및 [[투르키스탄]] 각지에 철도를 건설하고, 이후 [[소련]] 시절에 일률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고 사회간접자본이 설치, 개선되면서, 그 결과 오늘날에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이 같은 경제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인프라, 경제, 문화 교류 정책을 추진중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아프리카 공략도 포함되어 있다. 2014년에는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라는 이름으로 실크로드상의 33개의 유적을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 참조. == 관광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사마르칸트/hirob.jpg|width=100%]]}}}||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구시가지 레기스탄의 모습. 사마르칸트에는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아프라시압 벽화가 유명하다.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hiva_Ichon_Kala.jpg|width=100%]]}}}|| ||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이찬 칼라의 전경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561937104_c9a0056169_b.jpg|width=100%]]}}}|| || [[투르크메니스탄]] [[메르브]](Merv)의 산자르 영묘 (Sanjar Mausoleum)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81.jpg|width=100%]]}}}|| || 투르크메니스탄 메르브(Merv)의 고대 성채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iaohe_Ruins.jpg|width=100%]]}}}||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Turpan) 근교의 교하 고성(交河故城, Jiaohe ruins)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aochang_Ruins_Turpan_Xinjiang_China_新疆_吐魯番_高昌故城_-_panoramio_(5).jpg|width=100%]]}}}|| ||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Turpan)의 고창 고성(Gaochang Ruins) || ||<tablebordercolor=#F59908><tablealign=center><tablewidth=8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7fc7c32faf5efec3718d83c4d733ebb.jpg|width=100%]]}}}|| ||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만리장성]] 시작부분의 유적 || == 동명의 게임 == * [[실크로드 온라인]] - 실크로드를 무대로 중국과 유럽의 캐릭터들을 선택해서 플레이하는 온라인게임이다. * [[위메이드]] 엔터테이먼트의 모바일 게임 - [[위미#s-3]] 브랜드로 서비스 중이고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형식의 게임이다. == 여담 == * 2005년 한중일 합작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신 실크로드]]가 2020년 11월 KBS 다큐 유튜브를 통해 공식적으로 올라왔다. [[신 실크로드|링크]]를 통해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실크로드가 '(동음이의)'를 처리하여 별도의 동음이의어 문서가 존재하며, 실크로드의 본 문서는 '''비단길'''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나무위키는 정반대로 비단길이 동음이의어 문서로 이미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사항은 [[비단길]] 문서를 참고할 것. ~~비단길도 실크로드 둘 다 똑같은 표현~~] [[분류:중앙아시아사]] [[분류:경제사]] [[분류: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