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신중하.png|width=200]] 愼重夏 [[1918년]] [[5월 5일]] ~ [[1991년]] [[11월 23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본관은 [[신(성씨)#s-3|거창]](居昌)[* 통례공파 34세손 중(重) 항렬], 호는 동원(東園). 1918년 [[경상남도]] [[거창군]] 읍내면 동동(현 [[거창읍]] 대동리 동동마을)[* 인근의 양평리와 함께 [[신(성씨)#s-3|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도출]]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db.history.go.kr/id/im_107_30457|#]]에서 아버지 신정재(愼正縡)와 어머니 [[전(성씨)|죽산 전씨]](竹山全氏) 전병홍(全秉弘)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광복 이후 초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민주당(1955년)|민주당]] 경상남도당 산업ㆍ재정부장, 민주당 중앙위원, 경상남도곡물협회 회장, 민주당 거창군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당(1955년)|민주당]] [[소장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38선거구([[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서한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다시 위 선거구에 출마하여 43.19%(21,123표)의 득표를 받아 [[민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15지역구([[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민병권(1918)|민병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선거가 끝나고 몇 년간 남한운수(南韓運輸)주식회사 사장으로 재임하였다. 1967년 [[신민당(1967년)|신민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여 중앙위원, 경상남도 제18지역구당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18지역구([[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또 다시 [[민주공화당]] [[민병권(1918)|민병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1월 27일 [[민주통일당]]이 창당될 때 조직책으로 관여하였고, 창당 후 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통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9선거구([[산청군]]·[[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우식(정치인)|정우식]] 후보와 신민당 [[김동영(정치인)|김동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경상남도의회의원]][[분류:거창군 출신 인물]][[분류:거창 신씨]][[분류:1918년 출생]][[분류:1991년 사망]][[분류:홍익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