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신자]][[분류:횡성군 출신 인물]][[분류:1856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신재근(申在根) || || 생몰 ||[[1856년]] [[12월 18일]] ~ ? || || [[출생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영영포리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재근은 1856년 12월 18일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영영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횡성 [[천도교]]회 봉훈(奉訓)를 역임하던 1919년 3월 교주 [[손병희]]가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고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횡성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3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장도훈]]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 구입 자금으로 3원을 주었다. 장도훈은 이것을 가지고 3월 11, 12일경 경성에서 태극기 한 폭, 종이로 만든 태극기 20매 및 독립선언서 40매를 구입하고 3월 26일 돌아왔다. 장도훈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구입하여 고향에 돌아오자, 신재근은 이것을 향리인 영영포리를 비롯하여 횡성면 일대에 배포하였다. 또 [[강만형]]은 원주 소초면 지역에, [[안승훈(독립운동가)|안승훈]]과 김인경(金麟卿) 등은 정곡과 갑천(甲川)·둔내면(屯內面) 등지에 각각 배포하였다. 3월 27일 신재근과 장도훈은 횡성시장에서 윤태환(尹泰煥)에게 태극기를 주고, 이를 휘두르며 장꾼 300여 명에게 태극기 및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본 경찰과 원주에서 파견된 기마병 7명에 의해 시위군중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신재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