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거창 신씨]][[분류:영암군 출신 인물]][[분류:1908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분류:건국포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신원범.jpg|width=300px]] || || 성명 ||신원범(愼元範) || || 본관 ||[[거창 신씨]][* 통례공파 31세손 범(範) 항렬.] || || 생몰 ||[[1908년]] [[2월 6일]] ~ [[1970년]] [[8월 5일]] || ||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노노리[br](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도 이 마을 출신이며, 독립유공자 [[신일선(독립운동가)|신일선]]과 [[교보생명그룹]] 초대 회장 [[신용호]] 형제는 옆 동네인 송내마을 출신이다.] || || 추서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원범은 1908년 2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노노리(현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6월 덕진면 영보리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0942&docId=1196839&categoryId=39201|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 최판옥(崔判玉) 등의 지도하에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김판권은 일찍이 [[도쿄]]에 있으면서 1920년대 초부터 신사상에 심취하였고, 1931년 7월 고향인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로 돌아온 뒤로는 최판옥, 곽명수 등과 교유하면서 신사상의 연구와 운동방침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일에 경계가 엄중하여 이를 기념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겨 음력 5월 1일에 해당하는 같은 해 6월 4일에 시위운동을 하고 농민층을 규합할 것을 계획하였다. 신원범은 이에 동조하여 운암리와 백계리 방면에서 소작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규탄하며 큰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크게 외치며 대오를 지어 산을 내려와 운암리 방면을 향해 시위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신원범은 체포되어 영암경찰서에 구류되었으며, 1933년 6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예심이 종결되어 광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440&evntId=0034992450&evntdowngbn=Y&indpnId=0000023441&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그해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형사부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형 50원[* 납부치 않을 시 50일간 노역장에 유치함.]을 언도받아[[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440&evntId=0034992517&evntdowngbn=Y&indpnId=0000023503&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이에 공소하였으나 1934년 3월 7일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벌금형 50원[* 완납치 않을 시 1원당 1일씩 노역장 유치.]을 그대로 언도받았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573&evntId=0034985411&evntdowngbn=Y&indpnId=0000016875&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70년 8월 5일 별세하였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