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1901년 출생]][[분류:1961년 사망]][[분류:거창 신씨]][[분류:고창군 출신 인물]][[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경제, 사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경제]][[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인물]] [[파일:external/rokps.or.kr/281.jpg|width=150]] 한자 표기 : 愼鏞頊 일본식 이름: 眞原勝平 [[1901년]] [[10월 15일]] ~ [[1961년]] [[7월 16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조종사]], [[기업인]], [[정치인]]. 본관은 [[거창 신씨|거창]](居昌)[* 참의공파 32세손 용(鏞) 항렬.], 호는 청하당(淸夏堂). 한국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대한항공]]의 전신)를 창립하여 운영하였다. == 생애 == 1901년, [[전라북도]] 흥덕군 이서면 사천리(現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신용남]] 전 국회의원과 독립유공자 [[신용수(독립운동가)|신용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www.gcnb.tv/default/index_view_page.php?board_data=aWR4JTNEMTQ0MTU=%7C%7C&search_items=cGFydF9pZHglM0Q3NQ==%7C%7C|#]]에서 아버지 신정범(愼正範)과 어머니 [[함평 이씨|함풍 이씨]] 이송범(李松範)의 딸[* 아버지의 족보에는 배우자가 함풍 이씨 이종범(李鍾範)의 딸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외가의 족보에는 아버지가 이송범의 사위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어머니는 함풍 이씨 이송범의 딸이다. 다음은 출처 사진들이다. [[파일:신정범 신용욱 부자 족보.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1.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2.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3.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4.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5.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6.png]][[파일:신용욱 외가 족보 7.png]]]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오쿠리비행학교를 나와 1등조종사 면허를 받았다. 이후 동아항공전문학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여 미국 헬리콥터 조종사 면허도 취득하였다. 귀국 후 조선비행학교를 창립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모집, 비행술을 가르쳤다.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직후에는 일본군 비행기 수백대를 헐값으로 구입하여 고철로 처리, 막대한 이익을 남겼으며, 이 해에 대한국민항공사(KNA, 현 [[대한항공]]) 사장이 되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같은해 3월 특별검찰부 검찰관에 의하여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의 친일 행위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백관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1952년경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대한국민항공사 여객기 1대가 납북되는 [[창랑호 납북 사건]]으로 재정적인 손실을 입은 뒤 계속 사업에 실패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홍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상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 부정축재 등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그 해 8월 12일 출소하였고, 공민권이 상실되었다. 이후 사업을 위해 끌어다 쓴 약 십억환 이상의 채무에 시달리면서 임직원들의 급여까지 밀리게 되자 8월 25일 저녁 KNA 임원에게 중요한 회사 서류와 금고 열쇠 등을 맡긴 뒤 행적을 감추었고, 며칠 후인 28일 [[여의도공항]] 부근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가 사업 실패를 비관하여 한강에 투신자살 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이야깃거리 == * 생전 그는 KNA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항공기 조종도 했는데, 운항 도중 조종사나 승무원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기내에선 기장님이라고 불러!"''' 라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천성이 [[파일럿]]이었던 모양이다... * 전라북도 고창군 선거구에서 제7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민주공화당)을 지낸 [[신용남]]은 10촌 동생이며,[[파일:신용욱 신용남 촌수결과 1.png]][[파일:신용욱 신용남 촌수결과 2.png]] [[독립운동가]] [[신용수(독립운동가)|신용수]]는 6촌 형이다.[[파일:신용욱 신용수 촌수결과 1.png]][[파일:신용욱 신용수 촌수결과 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