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거창 신씨]][[분류:고창군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신용수(독립운동가).jpg|width=300px]] || || 성명 ||신용수(愼鏞秀) || || 자 ||자문(子文) || || 본관 ||[[거창 신씨]][* 참의공파 32세손 용(鏞) 항렬.] || || 생몰 ||[[1888년]] [[10월 28일]] ~ [[1951년]] [[6월 29일]] || || [[출생지]] ||전라도 흥덕현 이서면 사천리[br](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신용남]]·[[신용욱]]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용수는 1888년 10월 28일 전라도 흥덕현 이서면(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에서 아버지 신희범(愼喜範)과 어머니 [[의성 김씨]] 김용재(金龍載)의 딸 사이의 5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후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정읍시|정읍군]] 태인면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부친 신희범을 따라 어린 나이로 입진하였다. 1908년 2월 [[박도경(독립운동가)|박도경]] 의병장이 [[보령시|보령군]] 남포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재차 입진하여 왜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19년 3월 1일에는 고창군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0일간 옥고를 치렀다. 한편, 같은 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내 독립운동에 대한 감독 및 군자금 모집 등을 위하여 [[전주시|전주]] 지방에 전북독립운동감독부를 설치하고 [[노진룡]]을 감독에,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5236|오의균]](吳毅均)을 부감독에 임명할 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http://db.history.go.kr/id/hdsr_007_0010_0020_0010|#]] 이후 민족의식 고취 등에 진력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1년 6월 29일 별세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여담 == [[친일반민족행위자]] [[신용욱]]은 6촌 동생이다.[[파일:신용욱 신용수 촌수결과 1.png]][[파일:신용욱 신용수 촌수결과 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