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원군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2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신용섭(申龍涉) || || 이명 ||신용섭(申龍燮) || || 생몰 ||[[1897년]] ~ [[1924년]] [[9월 6일]] || || [[출생지]] ||[[평안남도]] [[평원군(평안남도)|평원군]] || || 사망지 ||[[평안북도]] [[위원군]] 봉산면 고각동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용섭은 1897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이다. 그는 1922년경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입대하여 활동했으며, 1923년에는 참의부(參議府) 제2소대 2분대원으로 활동했다. 1924년 7월 12일 참의부 제2소대장 [[이의준]]의 지휘하에 제2중대 2분대장 김창균(金昌均), 동지 김창옥(金昌玉)·이기섭(李基涉)·한영환(韓永煥)·김영하(金永河) 등과 함께 위원군 화창면에 출동했다. 그는 강계군 공서면 두흥동의 계인계(桂仁桂)와 인근 염진희(廉珍熙)의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했고, 며칠 후 강계군 시중면 시천동의 김찬원(金燦元)의 집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받아내는 등 지속적인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24년 9월 6일 평안북도 위원군 봉산면 고각동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신용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