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신완근(辛完根) || || '''생년월일''' || [[1966년]] [[2월 14일]] ([age(1966-02-14)]세) || || '''국적''' || [[대한민국]] || || '''학력''' || [[전주고등학교 야구부|전주고]]-[[원광대학교 야구부|원광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88년]] [[태평양 돌핀스]] 2차 지명 1라운드 || || '''소속팀''' || [[태평양 돌핀스]] (1988~1993) || [목차] == 개요 == 태평양 돌핀스에서 뛰었던 선수. 1988년 혹사로 인해 데뷔 시즌 이후 부상에 시달리느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 선수 생활 == 고등학교 시절 1학년부터 대회에 뛰었을 정도로 기대받던 선수였다. 그의 피칭은 두뇌피칭이라 평가받았으며 ~~즉 구속이 느리다~~ 주 무기는 기사에 따라 다른데 낙차 큰 슬로우커브 or 낙차 큰 슬라이더. ~~기자가 슬라이더와 커브를 구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졸업 후에는 원광대에서 뛰었으며 졸업 후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 2차 1라운드로 지명 받아 뛰게 된다. [[여태구]]와 함께 태평양에서 픽한 자원 중 실전 투입이 바로 가능한 선수로 분류됐었다. 이때 한 기자는 [[양상문]], [[임호균]]을 제외하면 적당한 투수가 없으니 감독이 계투작전위주로 게임을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고 불행히도 그 예상은 사실이 되었다. 신완근은 입단한 1988년 기록적인 혹사를 경험하는데 숫자로 보면 37출장, 4선발, 139이닝. 이는 1982~2020 KBO에서 선발 등판 5회 이하인 선수 중 최다이닝 10위이며 144G 환산을 하게 되면 9위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출장이 적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해 신완근의 완투는 1회이니 이 1회를 9이닝으로 가정하고 나머지 3회를 8이닝을 뛰었다고 가정해도 선발이닝은 33이닝. 불펜으로 뛴 이닝은 106이닝으로 구원 등판은 33회이니 구원으로 등판한 뒤 평균 3이닝 이상을 뛰었다는 소리가 된다. 안 좋은 의미의 중무리로 뛰었던 셈. 데뷔시즌이니 [[버두치 리스트]]에 당연히 못 들어가지만 부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그 후 부상으로 신음하게 되며 신통찮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40이닝, 60이닝을 뛰며 ERA+ 100이상을 찍은 시즌도 있긴 있었지만 클래식 성적으로 보면 이후 5년간 3승 0세이브밖에 거두지 못했다. 패 역시 7패에 불과하니 중요한 순간에 안 올렸다는 소리. 결국 1993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신완근은 쓸쓸히 은퇴하게 된다. == 트리비아 == 사회인야구단에서 활동할 때인 2020년에는 제2회 양구자연중심배 전국사회인야구에 참여한 최고령 프로선수 출신으로 이름을 올려 기사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기사에서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이라 하는 헛소리를 했다~~ 통산 5승을 거뒀는데 이중 3승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거둔거라 [[기나쌩|해나쌩]]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마구마구]]에서는 신찬근이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1966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태평양 돌핀스 은퇴/이적]][[분류:전주고등학교 출신]][[분류:원광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