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관련 정보]] [include(틀:조선의 부원군(국구))] ---- ||<table align=center><bgcolor=#7e2f22><table bordercolor=#7e2f22><table width=100%> '''{{{#FFC224 신수근 관련 틀}}}''' || ||<bgcolor=#fff,#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조선의 역대 집권세력)] ---- }}} || ----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7e2f22><bgcolor=#7e2f22> {{{#gold '''조선 중종의 장인 | 단경왕후의 부친'''[br]{{{+1 '''익창부원군 신수근[br] 益昌府院君 慎守勤'''}}}}}} || ||<-2><bgcolor=#7e2f22> '''[[군호|{{{#gold 군호}}}]]'''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 ||<-2><bgcolor=#7e2f22> '''[[시호|{{{#gold 시호}}}]]''' ||신도(信度) || ||<-2><bgcolor=#7e2f22> '''[[|{{{#gold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2><bgcolor=#7e2f22> '''[[본관|{{{#gold 본관}}}]]''' ||[[거창 신씨|거창]](居昌)[* 장성공파 16세.] || ||<-2><bgcolor=#7e2f22> '''[[이름|{{{#gold 이름}}}]]''' ||수근(守勤) || ||<-2><bgcolor=#7e2f22> '''[[자(이름)|{{{#gold 자}}}]]''' ||근중(勤仲) / 경지(敬之) || ||<-2><bgcolor=#7e2f22> '''[[아호|{{{#gold 호}}}]]''' ||소한당(所閒堂)[* 장인 권람의 호와 같다.] || ||<-2><bgcolor=#7e2f22> '''{{{#gold 생부}}}''' ||신승선 || ||<-2><bgcolor=#7e2f22> '''{{{#gold 생모}}}''' ||정경부인 중모현주[br]증 흥안부부인 [[전주 이씨]](全州 李氏)[* [[세종대왕]]의 4남 [[임영대군]]의 딸이다.] || ||<-2><bgcolor=#7e2f22> '''{{{#gold 부인}}}''' ||영가부부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br]청원부부인 [[청주 한씨]](淸州 韓氏) || ||<-2><bgcolor=#7e2f22> '''{{{#gold 자녀}}}''' ||4남 2녀 || ||<-2><bgcolor=#7e2f22> '''{{{#gold 묘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 ||<|2><bgcolor=#7e2f22> '''{{{#gold 생몰[br]기간}}}''' ||<bgcolor=#7e2f22> '''[[음력|{{{#gold 음력}}}]]''' ||[[1450년]] ~ [[1506년]] [[9월 2일]] || ||<bgcolor=#7e2f22> '''[[태양력|{{{#gold 양력}}}]]''' ||[[1450년]] ~ [[1506년]] [[9월 18일]] || [목차] [clearfix] == 소개 == [[조선]]의 인물. 자는 경지(敬之) 또는 근중(勤仲, 勤中), 호는 소한당(所閑堂). [[단경왕후]]의 아버지이자 연산군의 아내인 [[폐비 신씨]]의 오빠이다. == 생애 == 신수근은 1450년 경상도 진주목 거창현(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영의정]]으로 거창부원군에 봉해진 아버지 신승선(愼承善)과 [[임영대군]]의 딸인 어머니 중모현주(中牟縣主) [[전주 이씨]] 사이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종(조선)|성종]] 때 1475년에 수조관을 지내고 1484년에 [[음서]]로 통훈대부 행 사헌부 장령에 임명되었으며, 1492년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 통정대부 좌부승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통정대부 호조참의를 지냈고 1493년에 귀의 종기를 치료했다. [[연산군]] 때 1495년에 좌부승지를 지냈고 공이 없는데도 외척이라 중직에 등용되었다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으며, 1496년에는 우승지, 1497년에는 가선대부 좌승지, 승정원 도승지, 자헌대부 행 승정원 도승지를 지냈다. 1498년에 숭정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1500년에 병으로 사직했다가 판돈녕부사, 우찬성을 지냈다. 1506년에 훗날 [[중종(조선)|중종]]이 되는 신수근의 사위인 진성대군을 옹립하는 반정을 일으키자는 [[박원종]]의 제의[* 야사에서는 이 때 박원종이 신수근에게 '당신은 누이([[폐비 신씨]])와 딸(중종비 [[단경왕후]]) 중에서 누가 더 중요합니까?'라고 물었다고 나온다. 여기서 신수근은 누이를 선택했다.] 를 "[[폐세자 이황|세자]]가 총명하니 믿어보자."라고 거절했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 3형제가 [[유자광]](柳子光) 일파에게 살해되었다. 사후 영조 때 딸인 [[단경왕후]]가 왕후로 복위 되면서 익창부원군에 추증된다. == 평가 == 신수근에 대한 평가는 연산군일기 및 중종실록에는 매우 부정적이나, 영조실록과 국조인물고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가 남아있다. 연산군일기에는 도승지가 되자 시기심이 있어 남을 해치는 일이 많고 세력을 빙자해 제 뜻대로 행동해 겉으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자기를 좋지 않게 하는 사람에게는 암암리에 중상하고 도승지가 돼서는 승정원의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서 동렬의 사람들이 그가 하는 짓을 비웃었다고 한다. 중종실록에는 [[폐비 신씨|중전 신씨]]의 오빠로 총애를 받고 상당한 뇌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신수근에 대해 "신수근의 마음은 괴로왔고 신수근의 뜻은 확고하였다. 훈척에 연연하지 않고 섬기는 바를 바꾸지 않으며 순박하고 강개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았으니, 만약 포장(褒奬)하지 않으면 어떻게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다운 도리를 바루겠는가? 대신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라." 라고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 8월 24일 기해 2번째기사에서 영조가 "신수근은 '''[[정몽주|포은]]'''과 함께 충의가 같다"며 그 정몽주에 신수근을 비견한 발언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비록 정몽주가 고려의 충신이라도 조선왕조에서 그가 받았던 대우나 입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찬사다. 또 국조인물고에는 신수근이 외척임에도 재산이 없어 노비 수도 매우 적었다고 적고 있다. 중종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을 편찬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대의 평가가 더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게다가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신 중 상당수가 오히려 연산군에게 총애를 입었던 자들[* 당장 [[박원종]] 본인부터가, 연산군과 매우 친한 사이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의 동생이었고 그 본인도 연산군에게 대단한 신뢰를 얻었었다.]인데 반해 신수근의 행동은 좀 더 신의가 있는 편. 굳이 비판을 하자면 왕실과 매우 가까운 외척이자 힘있는 관료이면서도 연산군에게 간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당시 신수근이 제대로 간언했어도 연산군이 이를 들었을지는 미지수. 차라리 반정군 측에 붙었다면 누이 신씨의 폐위까지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딸인 단경왕후는 폐위되는 일 없이 왕의 외척이자 부원군으로써 목숨을 지키고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줄 잘못 서서 파멸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사극에서 == * [[장녹수(드라마)|장녹수]] - [[임병기]] * [[왕과 비]] - [[최상훈]] *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 - 김상원 * [[7일의 왕비]] - [[장현성]] [[분류:조선의 국구]] [[분류:좌의정]] [[분류:우의정]] [[분류:이조판서]] [[분류:조선/인물]][[분류:살해된 인물]] [[분류:거창 신씨]][[분류:거창군 출신 인물]] [[분류:1450년 출생]] [[분류:150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