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산군 출신 인물]][[분류:1904년 출생]][[분류:194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신선균(申善均) || || 생몰 ||[[1904년]] [[11월 8일]] ~ [[1949년]] [[6월 25일]] || ||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서봉면 범안리 || || 사망지 ||[[경상북도]] [[영주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선균은 1904년 11월 8일 황해도 평산군 서봉면 범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누천리 장터에서 최헌영, 이대성, 이원영, [[민홍식]]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시위대열이 헌병분견소 앞을 지날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해 강제로 해산시키려 들자, 그는 분노해 군중과 함께 분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했다. 그러나 경찰이 무차별 발포를 가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군중을 해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수사를 피해 은신하면서 치료를 받다 1920년 7월 만주로 피신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3월 31일 서흥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평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북한이 급격한 공산화로 치닫자 월남했고, 1949년 6월 25일 경북 영주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신선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