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center><table width=500><width=50%> '''[[일제강점기]] 시절''' ||<width=50%> '''[[월북]] 이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 || [[파일:external/www.bluetoday.net/3124_4935_3517.jpg|width=1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EC%8B%A0%EB%B6%88%EC%B6%9C.jpg|width=100%]] || [[파일:external/img4.daumcdn.net/20161005230516306bydu.jpg]] 왼쪽부터 신불출, 나품신, [[신일선]], 성광현 申不出 (1905년 3월 25일 ~ 1976년 8월 2일, 향년 71세) [목차] == 소개 == >"만담은 웅변(연설)도 강연도 아니고 재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장난은 더더욱 아니올시다. 말의 [[예술]]인 만담에는 사람의 가슴을 찌를 만한 그 어떤 진실이 필요하외다." >"모란봉에 올라 돌을 던지니 장에 맞더라. 두번째도 장, 세번째도 장, [[간장]] · [[고추장]] · [[청국장]]을 빼면 무슨 장(長)이 남나?" [[일제강점기]] 유명한 [[만담]]가이자, 연극인, 독립운동가이다. [[개성특급시|개성]] 출신으로 본명은 '''신흥식'''[* 혹은 남한에서는 본명은 신영일로 알려졌고, 북한에서는 본명이 신상학으로 알려져 있다.]이며, 일본식 이름은 구로다 규이치(玄田牛一)[* 玄(검을 현)과 田(밭 전)을 합치면 畜(가축 축)이 되고, 牛(소 우)와 一(한 일)을 합치면 生(날 생)자가 된다. 즉, 일본의 욕설인 '[[칙쇼]](畜生)'를 [[파자]]한 것이다.] 혹은 에하라 [[노하라]](江原野原). [[창씨개명]] 때 에헤라 놀아라 투로 '''일본에 항의하기 위해 일부러 엉터리로 지은 이름이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창씨개명]]을 구로다 규이치(玄田牛一)로 이름을 정한 일화를 보여주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O43AFv7eF3c|#]] == 생애 == 예명인 불출은 ‘이렇게 일본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세상에 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의미의 불출(不出). 데뷔 초기에 실수가 많아서, 삶에 고난이 많다는 의미의 단어를 딴 신난다(申難多)라는 예명도 있었다. 불출이란 이름도 난다와 같은 의미에서 [[팔불출]]의 패러디[* 이 때문인지 야인시대에서 자기 이름인 불출을 가지고 개그를 치는 모습이 나온다.]로 그래서 나왔다는 소수설도 있다. [[조선]] 말기 명창 재담가 박춘재의 공연을 보고는 만담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일본]]에 [[유학]]을 가서 연극을 배웠다. 배우 [[심영(배우)|심영]]과 달리 일제강점기에 풍자극으로 고초를 많이 겪은 케이스다. "'''[[왜#s-1|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므로 우리는 '''[[왜#s-2|왜]]'''(倭)를 없애버려야 한다"[* 조사 "왜"와 한자 "왜(倭, 즉 왜구)"를 이용한 말장난 ~~솔직히 지금 봐도 웃기다~~]라는 드립이 대표적. 주로 [[SP(음반)|SP]]판에 녹음한 만담 음반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1930년대]] "노들강변"이란 유행곡을 작사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30년대]] 말에는 아예 대놓고, [[도조 히데키]],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를 풍자한 <[[망둥이]] 3형제>를 발표해 금지처분을 받기도 했다. [[좌익]]계열 만담가로 활약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였다. >[[태극기]] 중앙의 붉은빛은 [[공산주의]]이고, 파란색은 [[파쇼]]이며, 그 주변의 4괘는 [[소련]], [[미국]], [[중화민국|중국]], [[영국]]의 4개 [[연합국]]입니다. 이 국기를 만들 때부터 우리 민족은 남북이 갈리고 숙명적으로 4개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어 있었죠.… 우리 속담에 ‘큰 코 다친다’는 말이 있는데 [[반미|코가 더 큰 미국이 결국 쫓겨나게 될 겁니다.]] [[1946년]] [[6월 10일]]부터 3일간 조선영화동맹과 예술통신사가 주관한 [[6.10 만세 운동]] 20주년 기념주간 행사에서 태극기의 4괘를 강대국으로 묘사하면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만담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 [[김두한]]과 그의 부하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왼쪽 어깨와 왼쪽팔, 옆구리에 총을 맞았으며 도망을 가다가 과다출혈로 쓰러졌고, 김두한과 부하들은 쫓아가 쓰러진 신불출을 죽이려고 했으나, 목격자들 때문에 김두한 일행들은 신불출을 죽이지 못했다. 신불출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후 신불출은 치안 교란, [[연합군]] 비방 등으로 [[미군정]]에게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고, 2만원의 [[벌금]] 또는 징역 1년 형을 받게 된다. [[1947년]]엔[* [[홍명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있다.] [[월북]]해 남한의 [[이승만]] 정권을 비난하는 만담을 해댔고[* [[여담]]이지만, 시대가 정확히 겹쳐서 이승만은 대놓고 신불출의 주된 조롱거리가 된다. '나라 판 돈 꿀떡, 하는 짓은 [[개떡]], 동포들이 미워하니 먹을 것은 양(洋)떡, 나자빠질때는 모두 벌떡벌떡'.], [[6.25 전쟁]] 때 대남 선무 방송에도 참여하였다. [[1955년]] [[8월 13일]]에 인민배우 [[최승희]]에 다음가는 공훈 배우의 칭호를 받았으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를 거쳤고, [[1961년]]에는 신불출 만담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에 취임하였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으나, [[1967년]]에 [[뇌출혈]]로 안면마비가 와서 [[1969년]]에 사망했다는게 북한 당국의 공식 기록이다. 신불출이 [[8월 종파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북한의 경직된 관료체제[* '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이가 너무 많은 북한의 관료체제.]를 비판하고, 대본을 사전검열하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게 여겨서 특별히 무검열을 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하간 본명과 생몰년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도 있다. [[탈북자]]인 김영순[* [[최승희]]의 제자, [[성혜림]]의 동기.]의 말에 따르면 정치적인 이유[* [[남로당]] 잔당.]로 [[1962년]]에 [[숙청]]을 당하여 [[요덕 수용소]]를 거쳐 [[1976년]]경에 사망했다고 한다. 김영순이 그를 본 것은 죽기 직전인 [[1972년]]으로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도 만담으로 동료 수감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정도였지만, 결국 [[영양실조]]로 [[아사]]했다. 그 외에도 수감 당시에 [[납북]] 어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같은 시대를 지낸 정상진 전 북한문화선전상 제1부상의 증언도 비슷하다. 그러나 북한에서 숙청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그러하듯, 확실히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다. 일례로, [[김정일]]과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김영주(북한)|김영주]]의 경우도 오랫동안 "숙청 후 [[탄광]]행" 설이 있었지만 단순히 한직으로 물러났을 뿐 '''아직도 살아있다'''. 다만 [[김정일]]도 그의 만담을 좋아하여, [[1995년]]에 그의 만담집을 출간하는 등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숙청이 알려지지 않고, 격하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http://www.culppy.org/bbs/board.php?bo_t&wr_id=567|#]] 정말 입담 하나는 대단했던 인물.[[http://blog.naver.com/nox990/10134142392|#]] [[지식채널 e]]에도 나왔다. == 대중매체에서 == === 드라마 [[야인시대]] === [[2002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선 희극인 [[김종국(코미디언)|김종국]]이 신불출 역을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신불출(야인시대)]] 참조. 정작 배우 본인은 신불출과는 [[극과 극]]으로, [[유오성]][* 작은형이 [[유상범]] 現 [[미래통합당]] [[국회의원]].]과 함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연예인이다. === 그 외 작품 === [[2013년]], [[매카시즘]]으로 인해 미국에서 추방당한 [[찰리 채플린]]이 꿈속에서 검열없는 나라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미군정기 한반도에 들렀다가 신불출을 만난다는 내용의 [[희곡]]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24022001|레드 채플린]]'이 발표되었다. 영화 '[[동주(영화)|동주]]'의 제작자인 신연식 감독은 '동주'를 시작으로 20세기 한국 예술인들의 삶을 영화화한 '예술인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할 계획인데, 3편으로 신불출의 젊은 시절을 영화화한다고 한다. [[분류:북한 남배우]][[분류:1905년 출생]][[분류:1976년 사망]][[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개성특별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