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평산 신씨]][[분류:홍성군 출신 인물]][[분류:1862년 출생]][[분류:191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신보균(申輔均) || || 호 ||미호(眉湖) || || [[본관]] ||[[평산 신씨]] || || 생몰 ||[[1862년]] [[1월 18일]] ~ [[1912년]] [[3월 1일]] || ||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군|홍주군]] 금동면 왕지리 || || 사망지 ||[[충청남도]] [[홍성군|홍주군]]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보균은 1862년 1월 18일 충청남도 홍주군 금동면 왕지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5월 [[민종식]] 의병장이 홍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서천, 보령을 거쳐 홍주로 입성하자, 그는 신현두(申鉉斗)·김상덕(金商悳)과 함께 합세하고 유병소 서기에 임명되었다. 1906년 5월 20일에서 5월 31일 사이에 홍주성 전투를 치렀으나 끝내 홍주성이 함락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남규진(南圭振)·문석환(文奭煥) 등 9명과 함께 일본의 대마도에 유배되어 억류생활을 하였다. 이때 억류중에도 [[최익현]]과 10명의 의사(義士)간에 우국충절에 관한 시를 많이 지었다. 1906년 12월 17일 최익현이 유배지인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유배중이던 신보균을 포함한 10명의 의사 [[임병찬]]·남규진(南奎振) 등 모두가 흰 두건을 쓰고 장례집사가 되어 존제(尊祭)를 지내고 반구(返驅)를 따라 귀국했다. 이후 홍주에서 은거하다가 1912년 3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신보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