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평산 신씨]][[분류:평산군 출신 인물]][[분류:1889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신문칠(申文七) || || 본관 ||[[평산 신씨]] || || 생몰 ||[[1889년]] [[11월 12일]] ~ ? || ||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덕촌리[* 인근의 광평리·생금리·운봉리·응촌리와 함께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도희]]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문칠은 1889년생이며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덕촌리 출신이다. 그는 대한독립주비단에 가담한 뒤 단장 [[유상렬(1885)|유상렬]] 등과 함께 1920년 12월부터 평산, 신계, 금천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1년 7월 1일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細谷面) 광평리(廣坪里) 산중에 숨어 있던 중, 호리오(堀尾) 순사부장 등 2명과 격투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독립주비단원 김면제(金冕濟) 외 54명이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1년 1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신문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