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회양군 출신 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1896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강원도(북한) 출신 인물]] || 성명 ||신무섭(申懋燮) || || 생몰 ||? ~ [[1896년]] [[8월 10일]] || || [[출생지]] ||[[강원도]] [[회양군]] || || 사망지 ||[[함경남도]] [[함흥시|함흥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무섭은 강원도 회양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896년 1월 [[민용호]] 의병장의 의병대가 강원도 원주에서 통천을 거쳐 회양에 이르자 이정재(李正宰) 등과 함께 군사 130여 명을 모아 의진에 참여하여 총독장(總督將)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896년 2월 6∼7일 안변의 선평전투에서 원산(元山)으로 북진 중이던 적군을 맞아 130여 명을 부상시키고, 일본군 장교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1896년 3월 8일에는 후군장(後軍將)직을 맡아 강우서(姜禹瑞)·[[민동식]]·전치운(全致雲)[*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전치운]]과 동명이인이다.] 등과 함께 의진을 이끌고 묵호에 나타난 일본군 선박 3척을 격침시켰고, 동년 4월에는 [[성익현]]·박봉구(朴鳳九)·[[민동식]] 등과 함께 인제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1896년 8월 10일 함흥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18명의 의병들과 함께 체포된 뒤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신무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