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무주군 출신 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1908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신명선(申明善) || || 생몰 ||? ~ [[1908년]] || || [[출생지]] ||[[전라북도]] [[무주군]] || || 사망지 ||[[전라북도]] [[무주군]] 칠연계곡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명선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07년 대한제국군이 강제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문금서(文今西)와 함께 부하 150명을 거느리고 무주와 경상남도 안의 일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1907년 11월 30일 [[황덕화]]·황이만(黃二萬) 등 부하 8∼9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라북도 금산군에 사는 음대보(陰大甫)와 김내삼(金來三)의 집에 들어가 의병운동을 위한 군자금으로 금 23냥을 모금하였다. 1908년 4월 10일에는 [[문태수]]와 함께 장수읍을 습격했다. 마침 주재소의 일경들은 모두 의병 토벌작전에 동원되어 나가고 한인순사 1명만 있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별다른 저항 없이 주재소의 기물을 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학교·군청 등의 부속물의 건물, 그리고 일인가옥 13동을 불태우고 무주 방면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일본군 토벌대의 추격을 받은 그는 무주의 칠연계곡에서 기습을 받아 의병 100여 명과 함께 전사했다. 1975년 지방민들은 이 의로운 유해를 모아 묘소를 정화하고 7연백의총(七淵百義塚)이라 명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명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