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아주 신씨]][[분류:의성군 출신 인물]][[분류:1927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분류:경주고등학교 출신]]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신두수(독립운동가).jpg|width=300px]] || || 성명 ||신두수(申杜洙) || || 본관 ||[[아주 신씨]] || || 생몰 ||[[1927년]] [[12월 15일]] ~ [[1986년]] [[12월 9일]] || ||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아주 신씨]] 집성촌이다. [[신진욱]]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두수는 1927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주군 경주면(현 [[경주시]]) [[황남동]]으로 이주하였다. [[경주고등학교|경주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4월, 그는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였다. 명성회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개탄하고 이정선(李貞善)·권태염(權泰琰)·정현모(鄭賢模)와 함께 정세를 틈타 무장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비밀결사이다. 신두수는 명성회의 기관지 「새벽」의 논설주필로서 일제가 [[연합군]]에 의해 곧 패망한다는 논조의 논설을 써서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새벽」잡지를 일본어와 한글로 간행하여 [[대구사범학교]]·경주중학교·안동농림학교 등의 학생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11월에는 조선회복연구단과 연합하여 1945년 2월 17일 무장봉기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자금조달과 동지규합에 진력하였다. 신두수는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지령에 따라 비밀리에 파견된 이회술(李會述)과 안동농림학교 학생 [[손성한]] 등과 함께 [[학병]] 및 징용을 거부하고 돌격대를 조직하여 후방교란 작전의 일환으로 일본군 무기고 기습작전 등을 계획하던 중에 그해 3월 초 대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에 신두수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5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다음날인 1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해방 후에는 의성군 봉양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1986년 12월 9일 별세하였다. 200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