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제8대 국회의원]][[분류:제9대 국회의원]][[분류:제10대 국회의원]][[분류:제12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7년) 국회의원]][[분류:신한민주당 국회의원]][[분류:1922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영월 신씨]][[분류:의성군 출신 인물]][[분류:신한민주당 총재]][[분류:메이지대학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 [include(틀:신한민주당의 총재)] [[파일:external/rokps.or.kr/641.jpg|width=150]] 辛道煥 [[1922년]] [[5월 25일]] ~ [[2004년]] [[3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신(성씨)|영월]](寧越)[[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444|#]], 호는 창범(滄帆)이다. 1922년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 태어났다[[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20425.00000015.000200|#]]. 대구 달성보통학교, [[계성고등학교(대구)|계성고등학교]]와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과 국제법연구실 3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 때부터 [[유도]]인으로 유명하였다. 이후 모교인 계성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을 맞아 [[국민방위군]] 소령으로 입대하여 참전하였다. 종전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3년간 국제법을 연구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선 후 [[자유당]]에 입당했다. 1958년 [[대한체육회]] 회장서리를 거쳐 이듬해인 1959년에는 대한반공청년단(정치깡패조직) 단장직에 취임한 후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개입하게 되었다. 같은 해 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혁명재판]]에서 20년형을 언도받고 8년 3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정치정화법에 의해 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정치규제에서 풀리고 1970년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재기하였다. 이후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시 [[동구(대구)|동구]]-[[남구(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효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 때 자신의 계보인 신우회를 만들었는데 소속 의원으로는 [[신상우]], [[이기택]], [[이상신]], [[김종기(정치인)|김종기]] 등이 있었다. 1976년 신민당에 [[이철승]] 대표 체제가 자리잡을 때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1979년 5월의 신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측으로부터 은밀히 이철승 체제가 유지되게 해 달라는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 밑에 있던 이기택이 독자 계보를 마련하여 나가고 이기택이 2차 결선투표에서 [[김영삼]]을 지지하여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되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려나고 이듬해인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남구-수성구 선거구에 [[신한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치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이민우(1915)|이민우]]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총재]]권한대행이 되었으나 그 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체육인으로서 활동하여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1979년), 범태평양유도연맹 회장(1980년), 유도고단자회 회장(1993년), 대한체육회 고문(1993년), 체육인동우회 이사장(1993년)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한국의 유도발전에 힘쓴 공로로 유도 명예 10단증을 받았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짧게 등장한다. 배우는 1부에서는 스즈끼 대위를 연기한 [[김선동]]. 이때는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가 동대문 조직에서 물러나고 이기붕이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1959년에 불렀고 내년 선거를 위해 새로운 주먹조직인 반공청년단을 조직하여 여러 주먹조직들을 가입시킨다. 유지광, 도꾸야마, 독사 등은 이에 반발하지만 임화수는 자유당을 도와 정계에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입한다. [[3.15 부정선거|물론 그 대선 에서 무슨일이 일어난지는...]] 참고로 생몰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실존인물은 이 드라마가 방송할 당시에 아직 살아있었다. [[분류:계성고등학교(대구) 출신]][[분류:메이지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