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거창 신씨]][[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875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 성명 ||신계선(愼啓善) || || 일본식 성명 ||眞本啓善 || || 본관 ||[[거창 신씨]][* 참의공파 28세손.] || || 생몰 ||[[1875년]] [[12월 6일]] ~ [[1950년]][* 거창신씨족보에는 1949년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6월 14일]] || || [[출생지]] ||[[전라도]] 제주목 신좌면 신촌리[br](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추서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신계선은 1875년 12월 6일 전라도 제주목 신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아버지 신천규(愼千奎)와 어머니 [[전주 이씨]] 이학손(李鶴孫)의 딸 사이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고 신촌리의 서당 훈장을 지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구우면 저지리(현 [[한경면]] 저지리)의 서당 훈장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55562|박세현]](朴世賢)과 낙천리(樂天里)의 훈장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61247|김여석]](金汝錫)·[[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961693|조무빈]](趙武彬) 등은 의기투합하여 거사 전에 항일의거의 '[[고사#s-3|고사]](告祀)'라는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일본을 타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서당 생도들을 비롯한 전 도민들의 궐기를 촉구하게 하는 격문을 작성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격문을 붙이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구류되었다가 1919년 10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위 [[정치범|정사범]] 혐의로 징역 1년형, 집행유예 2년 6개월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6825&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12267&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0년 6월 14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