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웹코믹 Homestuck의 등장인물, rd1=시녀(Homestuck))] [[파일:attachment/1395_Velazquez1.jpg|width=450px]]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마르가리타 테레사[* [[펠리페 4세]]의 7녀이자 [[카를로스 2세]]의 친 누나. [[합스부르크 왕조]]의 [[왕녀]]다. 합스부르크 일족은 오랜 [[근친혼]]으로 인해 [[주걱턱]] 및 각종 질병에 시달렸지만 다행히도 마르가리타 왕녀는 주걱턱만 제외하면 유전질환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녀는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가 되었지만 잦은 임신으로 건강을 해치고 말아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왕녀와 그 시녀들을 그린 그림.[* 그림의 제목은 <시녀들>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 중. [[파블로 피카소]]가 이걸 그 특유의 큐비즘 화풍으로 모사한 피카소의 시녀들 역시 유명하다.] [목차] == 개요 == 侍女. Ladies-in-waiting / Maiden.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가문에서 왕족/귀족을 곁에서 모시는 일을 맡은 [[여성]]들. [[동양]]으로 치면 [[궁녀]]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르다. [[궁녀]]는 공노비 출신이 많지만 시녀는 높은 지위의 귀족 여성[* 일례로 [[영국]]의 [[마거릿 로즈]] 공주를 측근에서 모신 시녀는 남작부인.]이고, 승은을 입지 않는 한 평생을 홀몸으로 살아야 하는 궁녀와 달리 시녀는 모시는 윗사람의 허락만 받는다면 [[결혼]]도 가능하다. 또한 궁녀는 여관이기 전에 왕의 예비 신부였지만 시녀는 왕의 여자가 아니었다.[* 물론 [[앤 불린|시녀였다가 왕의 정부, 심지어 왕비까지 되었던 사례]]도 있었는지라 백 퍼센트 아니라고 하긴 어렵지만 궁녀처럼 왕의 여자인 것이 당연시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는 얘기. ] 궁녀가 '하인'의 성격이 좀더 크다면 시녀는 '직원'의 성격이 좀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시종이나 시녀 등의 '시'는 한자로 모실 시 자를 쓰는데, 이걸 일본어로 음차하면 사무라이가 된다. 경우가 좀 다르지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응되는 [[남자]]는 [[집사]]가 아니라 [[시종]]이다.[* 물론 집사도 그렇게 낮은 직책은 아니다. 어지간한 집에서도 집안 살림을 총괄하는 위치이며, 주인이 높은 귀족이라면 집사도 비서실장 수준에 해당하는 고위직이고 왕실 집사장쯤 되면 [[내무부장관]]과 동급이다.] 물론 시종 역시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쓰지 않았으며, 왕이나 왕자 등 왕족의 시종은 후작이나 백작 등 역시 꽤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이어야 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들어 [[환관]]과 개념이 섞이기 전인 고려시대만 해도 [[내시]]는 지체 높은 집안의 학식 있는 문관이 맡아하는 명예로운 직책이었다. 현대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의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을 연상케하는 자리.][* [[영국 의회]] 개원식에서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망토를 정돈하는 4명의 시종들은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공주의 친손자(즉 여왕의 조카손자)인 차기 스노든 백작 후계자, 그의 고종사촌, 스코틀랜드 후작 가문 후계자, 여왕의 모후였던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친정 자손(즉 여왕의 외가쪽 조카손자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상세 == 시녀라는 말을 들어보면 하는 일이 [[메이드]]하고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중세 [[유럽]]의 시종과 종자들이 단순한 하인이 아닌 [[보좌관]]이자 수행원이었듯이, 시녀도 단순한 하녀가 아닌 귀부인들의 수행원에 가까웠다. 우선 시녀는 하층민이나 평민들이 맡던 직책이 아니라 '''매우 지체 높은 가문'''의 부인이나 영애가 맡던 직책이다. 예컨대 왕권이 끝판왕으로 강했던 [[루이 14세]] 시기 [[프랑스]] 궁정 법도에 의하면, 궁중 시녀장은 최소 [[백작]]부인 이상의 신분을 가진 귀부인만이 맡을 수 있었다. 이처럼 [[왕]]이나 [[왕비]], [[태자]] 등의 시녀는 대[[귀족]] 가문의 부인이나 영애, 심지어 왕의 서녀가 맡았고[* 왕실이 어지간히 콩가루 집안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공주|정부인에게서 태어난 적통 왕녀]]가 시녀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영국의 [[메리 1세]]가 이복동생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가 되어야 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아버지 [[헨리 8세]]가 그녀를 왕녀에서 사생아로 격하시켜버렸기 때문.], 귀족의 시녀는 그보다는 하급 귀족 가문의 부인이나 귀공녀가 맡는 식이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평민도 하녀 같은 복장을 하고 시녀를 하기도 하고 하녀가 시녀의 위치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급상으로는 하녀보다 높은 건 변함없었다. [[영국]] [[헨리 8세]]의 2번째 [[왕비]]가 된 [[앤 불린]]과 그녀의 언니 [[메리 불린]], 앤 이후로 헨리 8세의 왕비가 된 [[제인 시모어]]와 [[캐서린 하워드]]도 시녀 출신이었다. 특히 불린 자매는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시녀로 일했는데, 당시 유행과 사교의 최첨단이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지내며 여러가지를 배우고 높은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불린 자매가 배웠다는 교양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예법과 지식은 물론, 남자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은근슬쩍 가슴 노출하기, 넘어지는 척하며 다리 노출하기 등, 헌팅 기술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고귀한 신분의 여인들이니만큼 청소, 빨래, 바느질, 불 때기, 장작 패기, 물 긷기, 설거지 등등의 잡다한 노동은 모두 일꾼들이 했다. 시녀들은 놀이를 같이 해주고 말동무 상대가 되어주며, 옷과 장신구 등에 대해 조언, 외출이나 접견 시에 수행, 그 외에 궁정의 행정 업무를 맡아 했다. 시녀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존재했던 개념이기에 그 동안 변화가 있긴 했지만, 본질적인 정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동양과 달리 [[유럽]]의 시녀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 인맥을 쌓고 교양을 익히는 것, 미혼 귀족 여성에게는 혼사를 물색하는 [[신부수업]]이나 마찬가지였고, 기혼 귀족 여성에게는 자녀들 사이의 인맥이나 정보 교류를 위한 장이 되었다.[* 시녀의 혼인 여부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달랐다. 미혼 여성만 시녀로 두고 결혼하면 은퇴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혼인 여부 무관한 경우도 있었다.] [[기사(역사)|기사]]들이 들이는 [[스콰이어]]와 같은 개념. 왕족 여성, 특히 [[왕비]]나 [[왕녀]] 등의 시녀가 되는 것은 귀족 여성으로서 명예 중의 명예였고, 이로 인해 생기는 인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녀나 그 남편, 부모 등에게 떡고물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연줄을 대가며 자기 아내, 누이, 딸을 시녀로 들이려 혈안이 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시녀의 급여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신 수많은 청탁(!)이나 [[뇌물]]이 오갔고, 그것으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성인#s-2]](聖人)을 섬기지는 않았으나[* [[종교개혁]]에 의해 [[가톨릭]]적인 색채를 배제하려는 당시 [[영국]]의 분위기를 감안하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영국국교회(현재 [[성공회]]의 전신)의 공식적인 입장은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인에게 전구(傳求)를 청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서, 실제로 [[성모 마리아]]나 성 [[제오르지오]] 같은 성인들을 인정한다. 웬만하면 성인을 굳이 거칠 필요 없이 신자 개개인이 직접 [[야훼|하느님]]께 고하길 더 권할 뿐... 장로교인이나 침례교인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 목사님이나 장로님께 기도를 부탁하듯이, 죽은 자들에게도 그렇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성공회 내의 분위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 성공회에서 새로이 성인으로 인정한 인물이 전무하다. 저 말은 에드워드 시절의 [[청교도]]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대신 시녀에게 기도를 올렸다.'라고 어떤 귀족이 말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당시 왕궁 시녀로 들어간다는 것은 권력에 직접 연결되는 일이기도 했기에, 영국의 많은 귀족의 딸들이 [[여왕]]이나 [[왕비]]의 시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도 총애하는 시녀들에게는 몇 가지 은전을 내렸고, 또한 어린 시녀들에게 좋은 혼처를 물색해 주는 한편, 시녀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할 상황에서 제지해 주기도 했다. 대신 시녀들은 여왕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었다. 여왕은 시녀들의 후견인이나 다름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당시 왕궁 시녀가 된다는 것은 좋은 혼처를 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한 시녀가 그만두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즉시 12명의 신청자가 몰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학구파였기 때문에 시녀들 역시 내로라 하는 학식을 보유한 귀족 여성들이 대부분이어서, 엘리자베스 1세 재위 시절 [[잉글랜드]] 궁정을 방문한 사절들은 "마치 [[대학교]]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세]] 신학자이자 [[도미니코회]] [[수도자|수도]][[사제(성직자)|사제]]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풀이해보면 "[[종교]]가 짱이니 [[철학]]은 종교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섬겨라!"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돌과 [[매니저]] 관계--종교와 철학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에 더 가깝다. 굳이 시녀라는 단어를 써서 종교의 우위를 나타내긴 했지만. 그래도 시녀가 [[메이드]]와 완전히 연관이 없지는 않다. 시녀가 메이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메이드]]의 기원은 [[부르주아]] 계급이 옛 대귀족 계급이 시녀를 두던 관행을 흉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보다 한 단계 아래 계급인 하층민들을 고용하는 것. 메이드 역시 단순 가정부보다는 급이 조금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제복을 풀세트로 차려입는다는게 노동력만큼이나 과시성이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사복입은 알바와 정장 입은 직원의 사회적 직위가 다르다. [[분류:역사]][[분류: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