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민주진보당 주석)] {{{+1 施明德(시명덕) / Nori Shih Ming-teh }}} [[파일:ZeBoGyO.jpg]] * 출생 : [[1941년]] [[1월 5일]] ~ * 출신지 : [[일제강점기]] [[대만]] [[가오슝|타카오]]주 [[가오슝|타카오]]시 (현 [[가오슝]] [[직할시]] 옌청 구) [목차] == 개요 == [[대만]]의 [[정치인]]. [[대만]]의 [[민주화]] 투사로, [[민주진보당]]의 창당멤버 중 하나였으나 [[2000년]] 탈당하여 [[무소속]]이다. == 상세 == [[대만]]이 [[장제스]] 치하의 [[중국 국민당]]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당시에는 국민당 이외의 [[정당]]이 불법이었기때문에 '당외'활동가로 분류되었다.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때 1급 주동차로 체포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나 [[민진당(대만)|민진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민주진보당]] 창당 이후 [[1996년]] 대만 대선 당시 [[리덩후이]] [[총통]]에 맞서는 후보로 [[펑밍민]]을 내세웠으나 리덩후이로 표가 쏠리는 바람에 참패했고, 동시에 치러진 국민대회 선거에서 개헌저지선 확보에 살패하면서 민진당 주석(대표)지에서 사임하였다. 그 이후 [[천수이볜]] 정권이 수립하자 민진당을 탈당, 천수이볜 사퇴 100만인 운동 등에 가담하는 등 반 천수이볜 진영에 서게 되었다. 또한, [[2002년]]에 [[무소속]]으로 [[가오슝]] [[시장(공무원)|시장]] 후보에 출마했으나 1%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 그러나 대만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기에 [[민진당(대만)|민진당]]의 준 원로로 대접받고 있었는데... == [[2016년]] 대선 출마 == [[파일:7j5QOEX.jpg]] [[2015년]] [[5월 21일]], [[2016년]] [[1월 16일]]에 있을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1/0200000000AKR20150521069900009.HTML|기사]] 원래 민진당의 [[원로]]였던 만큼 [[차이잉원]] [[민진당(대만)|민진당]] 후보 측에서는 많이 긴장하였다. 하지만 출마 선언 초기에만 지지율 두자릿수였지 [[무소속]]으로 약한 조직력이 결점이 되어 [[2015년]] [[8월]] 말 기준으로 지지율은 2% 남짓에 불과하다. 한때 [[쑹추위]] [[친민당]] 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했으나 결렬됐는지 [[8월]]부터 쑹추위 까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소속일 경우 27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데 이 서명부조차 [[http://kor.theasian.asia/archives/143312|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되고 있다. 결국 9월 15일 총통선거 출마에 필요한 서명 확보에 실패했음을 시인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8KU8D05V4pA|출마를 공식 철회했다.]] === 관련 문서 === *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 저서 == [[파일:getImage2.jpg]] * [[http://www.books.com.tw/products/0010343914|囚室之春(죄수실의 봄)]] : [[2006년]] 작 [[파일:s9107142.jpg]] * [[http://book.douban.com/subject/10428335/|常識:一個台灣人最好知道的事(상식 : 대만인이라면 알아두는 게 좋은 것들)]] : [[2011년]] 작 == 기타 == * [[대한민국]]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매우 유사하다. 재야 시절에는 수차례의 위험을 겪으면서 민주 투사로 활약했지만, 제도권 정치인으로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것에 따른 평가. [[중화권]]에서도 '대만의 김근태'로 소개된 적 있다. * 2015년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에게 [[레즈비언]]이 아니냐며 뜬금없이 [[성적 지향]]을 밝힐 것을 요구해 [[호모포비아]]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만 그는 개인적으론 [[성소수자]] 권익증진을 지지해왔다. [[분류:1941년 출생]][[분류:가오슝 출신 인물]][[분류:당 대표/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