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려 국왕)] ||<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f9d537><tablebgcolor=#ffffff,#1f202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고려 제12대 대왕[br]{{{+1 順宗 宣惠大王[br]순종 선혜대왕}}}'''}}} || ||<bgcolor=#f9d537> '''{{{#670000 묘호}}}''' ||<-2>'''[[순종]](順宗)''' || ||<bgcolor=#f9d537> '''{{{#670000 시호}}}''' ||<-2>정헌영명선혜대왕[br](靖憲英明宣惠大王)[* 고려사 순종 세가 마지막 조 기준.] || ||<bgcolor=#f9d537> '''{{{#670000 절일}}}''' ||<-2>장흥절(長興節)[* 태자 시절의 [[절일]].] || ||<bgcolor=#f9d537> '''{{{#670000 성씨}}}''' ||<-2>왕(王) || ||<bgcolor=#f9d537> '''{{{#670000 휘}}}''' ||<-2>휴(烋) → 훈(勳) || ||<bgcolor=#f9d537> '''{{{#670000 자}}}''' ||<-2>의공(義恭) || ||<bgcolor=#f9d537> '''{{{#670000 왕후}}}''' ||<-2>정의왕후(貞懿王后), [[선희왕후]](宣禧王后) || ||<bgcolor=#f9d537> '''{{{#670000 부왕}}}''' ||<-2>[[문종(고려)|문종(文宗) 인효대왕(仁孝大王)]] || ||<bgcolor=#f9d537> '''{{{#670000 모후}}}''' ||<-2>[[인예태후|효목성선순덕인예태후]][br](孝穆聖善順德仁睿太后) || ||<bgcolor=#f9d537> '''{{{#670000 능호}}}''' ||<-2>[[성릉]](成陵) || ||<bgcolor=#f9d537> '''{{{#670000 사망지}}}''' ||<-2>고려국(高麗國) 개경(開京) 개성부(開城府) [[만월대|본궐]](本闕) 상차(喪次)[* 상차는 상이 치뤄지는 곳을 의미한다. 당시 상이 치뤄지던 문종의 빈전은 선덕전(宣德殿)이었으니 상차는 선덕전으로 보인다.] || ||<|2><bgcolor=#f9d537> '''{{{#670000 생몰연도}}}''' || 음력 ||1047년 12월 9일 ~ 1083년 10월 23일 || || 양력 ||1047년 12월 28일 ~ 1083년 12월 5일 (35세)[* [[세는나이]] 작성금지.] || ||<|2><bgcolor=#f9d537> '''{{{#670000 재위기간}}}''' || 음력 ||1083년 7월 18일 ~ 1083년 10월 23일 || || 양력 ||1083년 9월 2일 ~ 1083년 12월 5일 (3개월 3일) || [목차] [clearfix] == 소개 == [[고려]]의 제12대 임금. 묘호는 순종(順宗), 시호는 정헌영명선혜대왕(靖憲英明宣惠大王). 휘는 훈(勳), 자는 의공(義恭)[* [[고려]] [[태조(고려)|태조]]의 후계자이자 2대 국왕인 [[혜종(고려)|혜종]]의 [[시호]]와 똑같다.]. [[고려]]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문종(고려)|문종 인효대왕]]의 [[장남]]이며 공인된 [[태자]]였다. == 생애 == ||<-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9d537><tablewidth=100%><bgcolor=#f9d537> '''{{{#670000 등극한 문종 인효대왕(文宗 仁孝大王)의 아들}}}''' || ||<bgcolor=#f9d537> '''{{{#670000 12대}}}''' ||<bgcolor=#f9d537> '''{{{#670000 13대}}}''' ||<bgcolor=#f9d537> '''{{{#670000 15대}}}''' || ||<bgcolor=#ffffff> [[순종(고려)|순종 선혜대왕]] ||<bgcolor=#ffffff> [[선종(고려)|선종 사효대왕]] ||<bgcolor=#ffffff> [[숙종(고려)|숙종 명효대왕]]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9d537><tablewidth=100%><bgcolor=#f9d537> '''[[태자|{{{#670000 고려의 역대 왕태자}}}]]''' || ||<width=30%><bgcolor=#ffffff> [[덕종(고려)|왕흠]] ||<bgcolor=#ffffff> {{{+1 ←}}} ||<width=30%><bgcolor=#f9d537> '''{{{#670000 왕훈}}}''' ||<bgcolor=#ffffff> {{{+1 →}}} ||<bgcolor=#ffffff><width=30%> [[헌종(고려)|왕욱]] || 고려사 순종 세가 총서에 따르면 아버지인 문종 8년 2월 계묘일에 왕태자에 책봉되었다.[* 순종은 문종 원년에 태어났으니 8살에 태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태자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지라 이래저래 부왕과 신하들의 걱정을 많이 산 듯. 아니나다를까 문종이 죽자 너무 슬퍼한 것이 탈이 되어 안 그래도 원래 병약한 몸이 악화되면서 즉위한지 고작 3개월만에 결국 부왕의 뒤를 따라간다. 태자로서 28년이나 있었으나 왕으로는 3개월 뿐이었으며 [[조선]]의 제12대 임금인 [[인종(조선)|인종]]보다도 재위기간이 5개월이나 짧다. 그래서 문종의 조문을 위해 [[요나라]]의 사신이 고려로 오다가 다시 되돌아가 순종의 조문까지 준비하고 다시 오기도 하였다. 한편 고려 입장에서는 순종이 3개월만에 죽자 요나라가 이를 정변이라 트집잡아 외교 문제로 번질까 우려하기도 했다. [[강조의 정변]]으로 거란과의 2번째 전쟁이 시작된 것을 생각해본다면 당시 고려 조정의 우려대로 순종의 죽음을 알리러 갔던 외교관 [[이자인(고려)|이자인]][* 경원군 개국공 [[이자연]]의 아들. [[이자겸]]의 친척이다.]이 [[요도종]]의 힐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자인은 요나라를 설득해 요나라와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 별다른 업적 없이 붕어하여 그의 동생인 [[선종(고려)|국원공 왕운]]이 왕위에 오른다. 자식에게 물려준 것도 아니고 자식에 대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봐서 병약한 몸 때문에 후사도 낳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사도 엄청 짧다. * 8월 * 갑신일. 문종을 경루에서 장사지냈다. * 경자일. 왕이 신봉루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했다. * 겨울 10월 * 초하루 계유일. 회경전에서 사흘동안 도량을 열고 승려 3만 명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 갑신일. 왕이 자신의 동생인 왕운을 수태사 겸 중서령으로 올려주고 식실봉 1천 호를 덧붙여주라고 지시했다. * 왕은 젊어서 지병이 있었는데 선왕의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병이 더욱 심해졌다.(王小有疾 居廬哀毁 疾益篤) * 을미일. 친동생 국원공 왕운으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맡아보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짐(朕)은 [[문종(고려)|군부(君父)]]의 유언(遺言)을 받들어 [[고려|방가(邦家)]]의 중기(重器)를 손에 쥐었다. 매사에 조심하여 부탁받은 권한을 조심히 살폈다. > >군공(群公)과 장구(長久)의 책략을 세우고, 조종(祖宗)의 경사를 누리고, 조상의 공로를 빛나게 하고자 했다. > >그러나 상을 치루던 중 너무나 슬퍼하니, 걱정이 병이 되었다. 때가 흘러 계속 누적되니,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 이번 겨울 초에 대참(大漸)에 이르렀다. 바람 앞 등불같은 몸이 어떻게 환기(幻期)[* 대참(大漸), 대기(大期)와 같은 뜻으로 죽음의 때, 죽음의 시기를 의미한다.]를 견더낼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사직]]의 도(社稷之圖)는 반드시 예속에게 이어져야 한다. 지금 모제(母弟)[* 순종과 선종은 모두 [[인예태후]]의 자식이다.]인 수태사(守太師) 중서령(中書令) 국원공(國原公) 운(運)은 다능하고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다. 성덕(盛德)이 날로 갈수록 커지고 농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형정(刑政)의 이로움과 병폐를 마음 깊히 알고 있으니, 구오지존(九五之尊)[* 유교 서적 [[주역]]에서 나오는 표현으로 '올바른 제위(帝位)'를 의미한다. 순종의 4대조인 태조 또한 자신의 옥좌를 '구오통림의 극(九五統臨之極)'으로 표현했다.]에 오른다면 억조(億兆) 명의 소망을 채울 것이다. > >그러니 구소(柩所)[* 관을 안치한 곳. 여기선 빈전(殯殿)을 의미한다.] 앞에서 군권(君權)을 가지도록 하라. 무릇 국조(國朝)의 상벌대사(賞罰大事)는 모두 사군(嗣君)의 뜻을 따르라. 밖에 있는 주진(州鎭) 관원(官員)들은 본군(本郡)에서 거애하고 자신의 관사를 떠나지 마라. 상복의 제도는 하루를 달로 계산하고, 산릉의 제도는 검약하게 하라. > >오호라(於戱)! 생에는 굴곡이 있으니, 아무리 험난해도 대의를 좇아야 한다. 사람 중 누가 사라지지 않는가, 다만 슬픈 것은 내 삶이 짧다는 것이다. > >오로지 몇몇 고굉(股肱)과 중외(中外)의 문무(文武)들이 충력(忠力)을 다하여 내 [[선종(고려)|친왕(親王)]]을 보좌하고, 보력(寶曆)이 무궁(無窮)하도록, 환구(環區)[* 바다로 둘러쌓인 곳. 여기선 고려를 의미한다.]를 잇는다면 짐(朕)이 눈을 감아도 어떤 유감이 있겠는가? >---- > - 고려사 순종 세가 중. 순종의 유조(遺詔). ||<tablealign=center><table width=450><table bgcolor=#fff,#1f2023> [[파일:고려 순종 성릉.jpg|width=100%]] || || 무덤인 성릉의 모습 || == 가족관계 == 부인으로 정의왕후 왕씨, 선희왕후 김씨, 장경궁주 이씨가 있다. 정의왕후 왕씨는 [[평양공|정간왕]]의 딸로 순종과 사촌지간으로 보통 이렇게 가까운 친척이면 혼인할 때 외가의 성씨를 택하는데 그녀는 왕씨로 적혀 있다. [[선희왕후]] 김씨에 대한 정보는 문서 참조. 장경궁주 이씨는 이호의 딸이다. 이호는 [[이자겸]]의 아버지기도 하니 이자겸과 순종은 처남 매부지간이 되는 셈. 순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후궁이 되었다. 하지만 순종이 승하하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이후 외궁에 거처하였고 장경궁주에 봉해졌으나 자신의 노비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궁주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그 이후 복권되지 않았다. 이 때 이자겸도 그녀의 오빠란 이유로 축출되었다. == [[태묘]] 악장 == [[고려]] [[성종(고려)|성종]]이 태묘를 만든 뒤, 태묘에 배향된 [[제왕]]들에게 바치는 악장, 즉 칭송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예종 11년에 예종 기준 구묘(九廟)의 제왕에게 새로 바친 노래가 고려사 악지에 남아 있다. [[예종(고려)|예종]] 대 순종 왕훈의 찬가 제목은 "익선(翼善)"이다. 네글자 운구이다. >생각컨데 왕께선 하늘을 받들고[* 보통 하늘을 받들었다고 하면 군주의 업무를 잘했다는 뜻이지만 여기선 하늘은 부왕 문종을 뜻한다.] 공손하고 순리에 따르는 것을 우선하였습니다. >무군(撫軍)하고 감국(監國)하시니[* 태자가 부왕을 보좌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십여년 동안 행했습니다.[* 태자로서 30년 넘게 있었다는 뜻.] >밝게 빛나는 촛불을 잇고 더 흥하게 하신지 얼마 안되어 구름을 타고 멀리 가셨습니다. >그러나 큰 덕이 형성되어 노래와 악기에 흘러들어갔습니다. > >화목하신 선왕(先王)께선 덕이 으뜸이셨습니다. >따뜻한 문덕(文)은 하늘이 낳았으며 부드러운 은혜는 날로 드러났습니다. >의(醫)로 민(民)을 구했으며 고(考)[* 족보상 아버지를 이르는 말. 즉 문종을 의미함.]를 이어 효를 다했습니다. >때를 맞추어 규범있게 제사를 지내니, 식에 따라 태묘를 우러러 보겠습니다. 왕이 되어서 뭐라도 한게 없으니 찬가에도 왕태자로써 역할을 잘했다고만 한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순종, version=184)] [[분류:1047년 출생]][[분류:1083년 사망]][[분류:고려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