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EDC89><tablewidth=100%><-5><:><#FEDC89> '''[[고려/역대 왕비|{{{#670000 고려의 역대 왕후}}}]]''' || ||<:><#ffffff><width=30%> [[고종(고려)|고종]]비[br][[안혜태후]] ||<:><#ffffff> {{{+1 ←}}} ||<:><width=30%><#FEDC89> '''{{{#black 원종비[br]순경태후}}}'''[br]경창궁주 ||<:><#ffffff> {{{+1 →}}} ||<:><#ffffff><width=30%> [[충렬왕]]비[br][[제국대장공주]][br][[정화궁주]] || ||<tablealign=center><|3><:><#FEDC89><table bordercolor=#FEDC89>'''{{{#670000 시호}}}''' ||<#ffffff>'''원종''' ||<#ffffff>'''정순왕후(靜順王后)''' || ||<#ffffff>'''충렬왕''' ||<#ffffff>'''순경태후(順敬太后)''' || ||<#ffffff>'''원 무종''' ||<#ffffff>'''고려왕비(高麗王妃)''' || ||||<#FEDC89> '''{{{#670000 작위}}}''' ||<#ffffff>경목현비(敬穆賢妃)[br]태자비(太子妃) || ||||<#FEDC89> '''{{{#670000 본관}}}''' ||<#ffffff>[[경주 김씨]](慶州 金氏) || ||||<#FEDC89> '''{{{#670000 사망지}}}''' ||<#ffffff>고려 강도(江都) 강화군(江華郡) 사당리(社堂里) 자택 || ||||<#FEDC89> '''{{{#670000 능호}}}''' ||<#ffffff>가릉(嘉陵) || ||||<#FEDC89> '''{{{#670000 생몰연도}}}''' ||<#ffffff>1222 ~ 1237.07.29 || [목차] == 개요 == [[원종(고려)|원종 순효대왕]]의 1비로 [[충렬왕]]의 모후다. 이름은 김연(金軟). == 생애 == 그녀의 아버지는 [[김약선]]으로 생전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이나 조부인 김태서 대에 [[전주 김씨|전주]]를 관향으로 삼으니 본관은 전주로 바뀌었다. 그녀의 어머니 우봉 최씨는 다름아닌 [[최우]]의 장녀. 그러니까 그녀는 [[최우]]의 외손녀다. 최씨 [[무신정권]]의 권력을 고려 황실과 연을 맺어 사돈으로서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혼인으로 원종이 태자였던 시절에 입궐해 경목현비라 불렸다. >부부의 결혼은 천지양의의 상례(天地兩儀之常)이니, 이보다 중요한 상례는 없을 것이다. 제왕의 자손(帝王垂子孫)이 만세의 통치(萬世之統)를 드리우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생략) >---- > - 고종의 주례사로 태자 원종과 태자비 순경태후가 결혼할 때 내린 칙서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제33권 기록. 고종 22년(서기 1234년)에 정식으로 원종과 혼례를 올려 태자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235년 아들 [[충렬왕]]을 낳고 그 다음 해 [[공주]]를 낳은 뒤 병을 얻어 15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했다.[*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된 애책문엔 16살에 죽었다고 한다.] 이 때 낳은 [[공주]]도 이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려서 죽은 듯. 거기다 충렬왕 때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왕실의 피바람이 그나마 덜 불었을 거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동국이상국집]] 제 36권에 [[이규보]]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쓴 순경태후의 시책문(諡冊文)과 애책문(哀冊文)이 남아있다. == 시호 == 고려의 시호 전통을 지킨 마지막 왕후다. 고려는 [[위숙왕후]] 이래로 국왕의 대표시호와 왕후의 대표시호를 맞췄다. 예를 들어 威숙왕후와 세조 威무대왕, 원종 順효대왕과 順경태후 같이.[* 이 뿐만 아니라 태후 존호를 시호로 사용하는 것도 고려 고유의 시법이다. 원래 태후는 생전의 칭호로 사후엔 붙히지 않는다. [[태후]] 문서의 고려 항목 참조.] 원종 3년(서기 1262년)에 죽자 그 시호를 ''''정순왕후(靜順王后)''''라고 하면서 추증했다. 훗날 1274년 아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자 태후에 추존되어 그 시호를 ''''순경태후(順敬太后)''''라 했다. 충렬왕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려의 전통을 지킨 독자적 시호를 바치고 아버지에게 최후의 묘호 및 시호를 바침으로서 고려의 마지막 '전통적' 태후[* 마지막 태후는 아니다. 고려 마지막 태후는 [[명덕태후]]이며 그외에도 [[제국대장공주]], [[노국대장공주]]와 같이 태후 시호가 올려졌던 왕비도 있다.]와 해동천자에게 예우를 바쳤다. [[동문선]] 29권엔 아들 충렬왕이 어머니를 추봉할 때 쓴 옥책문이 남아있다. 근데 여기선 '''숭崇'''경왕태후라고 했다. 충선왕 때 원 무종이 충렬왕의 어머니라고 하여 고려왕비라 추봉했다. == 가릉 == 그녀의 능인 가릉(嘉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해 있는데, [[희종(고려)|희종]]의 석릉와 [[고종(고려)|시아버지]]의 홍릉, 시할머니인 원덕왕후 유씨의 곤릉과 더불어 [[대한민국]] 내에 위치한 몇 안 되는 [[고려왕릉]] 중 하나이다. == 대중매체 == [[MBC]] 사극 [[무신(드라마)|무신]]에서도 잠깐 등장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외조부 최우의 손에 의해 잃자 외조부를 원망하며 시름시름 앓아가다가 갓 태어난 [[충렬왕|왕손]]을 남긴 채 거의 화병으로 죽는 것으로 연출되며 나왔다. 이 때문에 남편 원종은 무신정권에 극도로 반감을 가지게 된다. [[분류:고려의 왕비]][[분류:전주 김씨]][[분류:1222년 출생]][[분류:123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