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공주]]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효종의 왕녀[br]{{{+1 숙정공주 | 淑靜公主 }}}}}}'''}}} || ||<|2><bgcolor=#94153e> '''{{{#gold 출생}}}''' ||<-2>[[1646년]]^^([[인조]] 23년)^^ [[11월 7일]] || ||<-2>[[조선]] [[한성부]] 동부 숭교방[*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 일대. ] [[어의궁]] || ||<|2><bgcolor=#94153e> '''{{{#gold 사망}}}''' ||<-2>[[1668년]]^^([[현종(조선)|현종]] 9년)^^ [[5월 5일]][br]{{{-2 (향년 24세)}}} || ||<-2>[[조선]] [[한성부]] 동평위궁[* 옛 [[인경궁]] 터에 지어졌다. ] || ||<width=50><bgcolor=#94153e> '''{{{#gold 부왕}}}''' ||<-2>[[효종(조선)|효종]] || ||<width=50><bgcolor=#94153e> '''{{{#gold 모후}}}''' ||<-2>[[인선왕후|인선왕후 장씨]] || ||<width=50><bgcolor=#94153e> '''{{{#gold 부군}}}''' ||<-2>동평위 정재륜[* 본관은 [[동래 정씨|동래]], 자는 수원(秀遠), 호는 죽헌(竹軒), 사후에 받은 시호는 익효(翼孝)이다. ] || ||<width=50><bgcolor=#94153e> '''{{{#gold 자녀}}}''' ||<-2>1남 1녀 ^^(1남)^^ 정효선 ^^(1녀)^^ 김도연의 처 || ||<width=50><bgcolor=#94153c> '''{{{#gold 묘소}}}''' ||<-2>[include(틀:지도, 장소=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243, 너비=100%)] ----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243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효종(조선)|효종]]과 [[인선왕후]]의 적5녀. == 생애 == 1646년(인조 22) 당시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효종(조선)|봉림대군]]이 다음 동궁으로 결정되었으나, 책봉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공주는 봉림대군의 사저인 어의동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산실까지 쫓아가 문안 인사를 올렸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당시 이조 판서였던 이식이 한탄했다.[*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 9월 9일 정사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pa_12309009_001|#]] ] 1652년(효종 3) 8세가 되자 숙정(淑靜)의 작호를 받고, 1656년(효종 7) 12세에 영의정 [[정태화]]의 아들이자, 좌의정을 역임한 정치화의 양자가 된 정재륜과 가례를 올렸다.[* 부마간택시에 정재륜, 원몽린(초명 원몽치), 변광보가 경합했는데 정재륜이 최종 간택되었다. 이후 원몽린은 숙정공주의 동생인 [[숙경공주]]의 남편이 되었고, 변광보는 소현세자의 3녀 [[경순군주]]의 남편이 되었다 ] 정재륜은 고조부가 정유길인데, 정유길은 인선왕후의 외조부인 [[김상용]]의 외조부이다. 즉, 정재륜과 인선왕후는 8촌간이 된다. 언니 [[숙안공주]]와 마찬가지로 안하무인격에 남의 토지와 세금 등을 빼앗는 등 여러 악행을 저질렀다.[[http://sillok.history.go.kr/id/kra_10307013_002|참고 1]] [[http://sillok.history.go.kr/id/kra_10412022_004|참고 2]] 이에 백성들의 원성이 드높았고, 사대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으나, 그녀는 아버지 효종과 오빠 [[현종(조선)|현종]]의 보호를 믿고 계속 비리를 저질렀다. 1668년(현종 9) 2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현종은 여동생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다. 묘지는 본래 [[경기도]] [[광주시]]에 마련되었으나, 현재는 [[군포시]]에 있다. 3남 2녀를 낳았으나 1남[* 정효선(鄭孝先, 1663년 - 1680년)] 1녀[* [[김석주]]의 아들 김도연(金道淵, 1664년 - 1689년)과 혼인. 김석주의 아버지는 김좌명으로 [[대동법]]을 주창한 [[김육]]의 장남이다. 김육의 차남이자 김좌명의 동생이 [[김우명]]으로 그의 딸이 현종 왕비 명성왕후 김씨이다. 김석주와 명성왕후 김씨와는 사촌이며 김도연은 5촌 조카이다. 숙정옹주와 명성왕후는 왕실로는 시누가 되며 시가로는 사돈이 되는 셈이다.]만이 살아남았다. == 여담 == * 부마 동평위 정재륜은 열성지장통기를 증보, 간행하였고, 《공사견문록》 , 《한거만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공사견문록 덕분에 조선 왕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졌다. * 동평위는 물에 밥 말아먹다가 남겼는데, 이를 본 효종이 "다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말아야 한다"고 혼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걸 본인이 《공사견문록》 에 썼다. --흑역사-- * 정재륜은 아내인 숙정공주와 외아들 정효선이 일찍 죽자 숙종에게 재혼 요청[* 정재륜은 작은아버지 정치화가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갔는데, 정작 자신마저도 후사가 끊어졌으니 매우 난처한 입장이었다. ]을 했지만 도리어 부마 재혼 금지법이 더 강화되었다. 결국 종손(從孫)[* 핏줄로는 친형이자 법적으로는 사촌형인 정재대의 손자]인 정석오(鄭錫五)를 양자로 들여 죽은 아들의 후사를 잇도록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ta_10301014_004|#]] 정석오는 이후 [[영조]] 때 [[좌의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