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C23352> {{{#gold '''조선 단종의 후궁'''}}}[br]{{{#gold {{{+1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 ||<width=50> '''{{{#gold 출생}}}''' ||<colbgcolor=#fff,#1f2023>미상 || || '''{{{#gold 사망}}}''' ||[[1525년]]^^(중종 20년)^^ || || '''[[본관|{{{#gold 본관}}}]]''' ||상산(商山) || || '''{{{#gold 부모}}}''' ||부친 김사우(金師禹) 모친 광주 이씨 || || '''{{{#gold 부군}}}''' ||[[단종(조선)|단종]] || || '''{{{#gold 자녀}}}''' ||친자 없음 ^^(양자)^^ 이약빙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단종(조선)|단종]]의 후궁. 아버지는 중추원 동지사를 지낸 김사우이며, 어머니는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의 딸인 광주 이씨이다. == 생애 == 1454년(단종 2) 1월 1일, [[세조(조선)|수양대군]]은 [[양녕대군]], [[효령대군]] 및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등과 함께 [[왕비]]를 맞이할 것을 청하였다. 당시 부왕 [[문종(조선)|문종]]의 국상 중이었으므로 단종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조정의 중론이 한결 같아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왕비를 맞이하여야 한다는 수양대군의 주장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문종의 왕비인 [[현덕왕후]]는 [[세자빈]] 시절에 단종을 낳고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고, 1446년(세종 28)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마저 떠나서 내전에 사람이 없었다. 비록 단종을 대신 키운 [[혜빈 양씨]] 등이 있었지만, 정실 왕비가 아닌 후궁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해 1월 8일 [[창덕궁]]에서 열린 간택에서 세 사람의 처녀가 뽑혔다. 풍저창 부사 송현수의 딸, 예원군사 김사우의 딸, 사정 권완의 딸이었는데 송현수의 딸이 [[정순왕후 송씨|정순왕후]]가 되었다. 권완의 딸은 [[숙의 권씨(단종)|숙의 권씨]]가 되고, 김사우의 딸이 숙의 김씨가 되었는데, 1월 22일 숙의로 책봉한다는 교지를 받았다. 그러나 [[계유정난]] 이후의 시국으로 인하여 김씨는 사가로 폐출되었고, 어렵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권 숙의처럼 노비는 안됐다-- >충청도 관찰사가 진천(鎭川)에 사는 노산(魯山)의 후궁 권씨(權氏)를 혜양(惠養)하도록 청하자, 정원이 이를 가지고 아뢰기를, "듣건대 경성 안에도 노산 후궁 김씨가 있다고 합니다. 금년 80세가 지났으니 권씨의 예에 따라 혜양하도록 하소서." >---- >《조선왕조실록》 중종 14년 1월 26일 이에 조정에서는 해마다 쌀과 소금 등의 물건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1525년(중종 20) 김씨가 충주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중종은 "노산군은 이미 폐위된 사람이고, 그의 후궁은 [[정순왕후 송씨|부인]]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여 일체 부의를 내려주지 않았다.[* 중종실록 53권, 중종 20년 2월 11일 경자 6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002011_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