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련 문서, top1=만주 종족 계보)] [include(틀:숙신계 종족)] [include(틀:만주의 역사/고대)] [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肅愼[* [[상고한어]]: siwk-(d)i(n)-s.] 고대 동아시아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 다만 숙신이라고 불리는 퉁구스계들은 일부 [[니브흐족]]들과 혼혈화되어 나나이, 우데게, 만주(연해주 등 외만주 포함) 지역의 퉁구스 제족들 중 일부는 의상이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니브흐족들과도 비슷하다.] 고대 [[읍루]],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의 조상이기도 했다. 다만 현대의 연구결과 숙신=[[만주족]]이라고 보기 어렵기도 한데, 이는 만주는 한반도와 달리 사면이 열려있는 개방적인 지형으로 외부와의 인적 교류 가 활발했고 시대가 지나면서 여러 유목·수렵 부족들과 혼혈되었기 때문이다. [[만주]]·[[연해주]]에 사는 퉁구스족이었다. 원래 퉁구스족들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 [[예니세이 강]] 상류 및 [[스타노보이 산맥]]과 [[오호츠크 해]] 연안 일부에서 살면서 [[순록]]을 방목했다. 이들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해주]] 등으로 이동한 시기는 3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연해주와 만주로 이주한 퉁구스인들은 순록 방목 및 유목에서 여러 가축들을 목축하거나 소규모의 농업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순록]]을 목축하는 퉁구스 원주민도 있었다. 여진을 뜻하는 "주르첸" 역시 "순록을 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주나라]] 시기에는 숙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앙은 [[샤머니즘]]을 믿었다. [[동예]]나 [[옥저]]처럼 부족국가였기 때문에 이렇다 할 중심지인 수도가 없었다. [[남북조시대]]나 [[수나라|수]], [[당(통일왕조)|당]] 시기에 나중에 읍루·물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대에 따라 이렇게 불렸다고 이들의 혈통이 같았는지는 논란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어쨌든 시대가 지나면서 [[말갈]]로 호칭되었고, 그 중 끝까지 살아남은 흑수말갈은 여진족이 되었으며, 다시 그 중 복속되지 않고 남은 생여진들은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 동진국을 세웠고, 금, 동진 멸망 이후에도 여진족 중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지 않은 여진족들은 훗날 만주족이 되어 청나라를 세웠다. == 한국사의 국가들과 관계 == 한국 역사에서는 [[고구려]], [[부여]]와 접한 외세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침략, 약탈했다가 번번히 나중에 고구려에게 [[역관광]]을 당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 시기에 결국 숙신은 고구려에게 토벌당하여 복속하게 된다. 다만 이후에도 한동안 과도기를 거치며 말갈인을 숙신이라 부르는 용례가 종종 등장한다. 역사적 명칭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에 의하면 676년 [[신라]]에서 [[일본]]으로 사신 김청평을 보냈는데, 김청평은 숙신인 7명을 일본에 데려갔다고 되어있다. 이는 [[나당전쟁]] 와중에 고구려인들이 신라로 망명하면서 고구려에 섞여살던 말갈인도 같이 남하했고 이들이 그 일부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분류:퉁구스]][[분류:숙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