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조선의 후궁]]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3352 0%, #C23352 20%, #C23352 80%, #C23352)" '''{{{#ffd400 조선 문종의 후궁[br]{{{+1 숙빈 홍씨 | 肅嬪 洪氏 }}}}}}'''}}} || ||<bgcolor=#C23352> '''{{{#gold 빈호}}}''' ||<-2>숙빈(肅嬪) || ||<bgcolor=#C23352> '''{{{#gold 출생}}}''' ||<-2>미상 || ||<bgcolor=#C23352> '''{{{#gold 사망}}}''' ||<-2>미상[br]{{{-2 (향년 알 수 없음)}}} || ||<|3><width=50><bgcolor=#C23352> '''{{{#gold 재위}}}''' ||<width=50><bgcolor=#C23352> '''{{{#gold 승휘}}}''' ||[[1431년]] ~ [[1450년]] || ||<bgcolor=#C23352> '''{{{#gold 귀인}}}''' ||[[1450년]] ~ [[1452년]] || ||<bgcolor=#C23352> '''{{{#gold 빈}}}''' ||[[1452년]] ~ ? || ||<-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3px"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C23352> '''[[본관|{{{#gold 본관}}}]]''' ||[[남양 홍씨|남양(南陽)]] || ||<width=50><bgcolor=#C23352> '''{{{#gold 부모}}}''' ||부친 홍심(洪深) 모친 파평 윤씨 || ||<bgcolor=#C23352> '''{{{#gold 부군}}}''' ||[[문종(조선)|문종]] || ||<bgcolor=#C23352> '''{{{#gold 자녀}}}''' ||1녀 ^^(1녀)^^ 딸 ^^(조졸)^^ ||}}}}}}}}} || [목차] [clearfix] == 소개 == [[조선]] [[문종(조선)|문종]]의 간택 후궁. == 생애 == === [[세종대왕]] 시절 ===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한성부윤 홍심(洪深)과 이조참의 윤규(尹珪)[* [[조선]] 초의 문신으로 [[태종(조선)|태종]]의 과거급제동기이기도 해서 많은 후대를 받았다. 형조좌참의로 있을 당시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죄를 엄히 다스리라는 소를 올리기도 했다. [[정희왕후]]의 아버지인 파평부원군 윤번은 그의 남동생이다.]의 딸인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종(조선)|성종]] 대 좌의정을 지낸 응(應)[* [[성종(조선)|성종]]의 누이인 명숙공주의 시아버지이며, 성종의 문묘에 배향되었다.]의 누이이기도 하다. [[문종(조선)|왕세자 이향]]의 세자빈 [[휘빈 김씨]]가 미신 사건으로 쫓겨난 후 들인 [[순빈 봉씨]]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현덕왕후|권씨]], 정씨[* 정갑손의 딸이자 정창손의 조카. 훗날의 소용 정씨]와 함께 세자의 [[후궁]]인 승휘로 간택되어 입궁했다. 그 중 권씨와 홍씨가 총애를 얻었고, 그 중 권씨는 딸 2명[* 큰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고, 작은딸이 훗날의 [[경혜공주]]다.]을 낳았다. 이후 [[순빈 봉씨]]마저 폐출되면서 권씨와 홍씨가 새 세자빈의 후보에 올랐을 때, [[문종(조선)|문종]]은 홍씨를 조금 더 낫게 여겼으나 당시 권씨가 홍씨보다 연상에 품계도 권씨가 더 높았고 이미 딸을 낳았기에 의리상 세자빈에 적합하다는 [[세종대왕]]의 판단으로 새 세자빈은 권씨가 되었다[* 당시 권씨의 품계는 정3품 양원이었고 홍씨는 여전히 승휘였다.]. 이후 홍씨도 딸을 낳았으나 그 딸은 4살에 일찍 사망했다. 이후 [[현덕왕후|권씨]]가 [[단종(조선)|단종]]을 낳고 사망하자 새 세자빈을 뽑자는 논의가 잠시 이루어졌으나 유야무야되었고, 세자궁은 홍씨가 맡아 다스렸다. === [[문종(조선)|문종]] 시절 === [[문종(조선)|문종]]이 즉위하자 종1품 귀인에 책봉되었다. 비록 [[후궁]]이지만 [[왕비]]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내명부는 홍씨가 다스렸다. 후궁이라고는 하나 다른 간택 후궁들과는 다르게 혼자 귀인[* 홍씨 외의 다른 간택 [[후궁]]들은 모두 정3품 소용의 품계를 받았다. 그 중 소용 정씨는 홍씨와 같은 시기에 입궁했고, 당시 [[문종(조선)|문종]]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상태였다.]으로 책봉된 점, 내궁(內宮)이라는 별호를 따로 받고 [[명나라]] 사신이 예궐하여 그녀에게 선물을 바친 점을 볼 때 실질적으로는 왕비의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명나라]] 사신은 [[문종(조선)|왕]]과, [[단종(조선)|세자]], 홍씨에게만 선물을 바쳤다. 게다가 당시의 상황을 실은 기사를 보면 왕과 홍씨, 세자의 순으로 기록되어있는데 보통 실록에서 인명을 기록할 때 신분이나 지위 순으로 기록하는 것을 따져보면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왕비]]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홍씨가 문종의 실질적인 아내 대우를 받았고, [[명나라]] 측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의혹이 있는데, 문종 대에 실질적인 [[왕비]] 역할을 한 인물로 공빈 최씨가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312016_003|영조실록에 등장한다]]. [[현덕왕후]] 권씨를 관련 문헌에 "원비"라고 적었는데, 보통 원비라 함은 뒤에 계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적합한 문헌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의문으로 끝났다. 그리고 [[명사(역사책)]]에는 "조선 국왕과 왕비 '''최씨'''에게 고명과 면복을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빈 최씨 묘비에는 [[예종(조선)|예종]]의 후궁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공빈 최씨의 아버지인 최도일[* [[구성군]]의 아버지 [[임영대군]]의 처남이다.]의 묘비에는 공빈 최씨가 문종의 왕후라고 표기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최도일의 딸을 세자의 [[후궁]]인 소훈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조는 '''공빈 최씨는 문종의 계비가 아니고 명사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2312021_002|영조실록]] 정조 15년에 다시 이 문제가 재차 상소에 올라와 다시 조사한 결과 역시 공빈 최씨는 문종의 계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 정조는 이 결론을 [[조보]]에 반포하여 뒷말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503009_002|정조실록]] 하지만 이 문제는 고종 24년(1887년)까지 끈질기게 상소에 올라오고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2408015_002|고종실록]] === [[단종(조선)|단종]] 시절 === 이후 홍씨는 [[단종(조선)|단종]] 즉위년 정1품 빈의 품계를 받아 숙빈(肅嬪)이 되었다. 단종이 즉위한 뒤에 그의 유모였던 [[세종대왕]]의 [[후궁]] [[혜빈 양씨]]의 궁궐 내 영향력이 커졌는데, 이를 경계한 [[수양대군]]이 양씨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단종(조선)|단종]]에게 홍씨의 품계를 높이자고 청한 강맹경은 [[수양대군]]의 측근이었다.] 귀인이었던 홍씨를 빈으로 높였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세종대왕]]의 많은 후궁들 중 하나였던 승은후궁 양씨와, [[문종(조선)|문종]]의 실질적인 아내 역할을 수행하고 [[명나라]]의 공인도 받았던 간택 후궁 홍씨의 정통성을 비교해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 다만 홍씨가 양씨와 갈등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고, 단종비([[정순왕후 송씨]])의 간택에도 같이 참여한 것을 보면, 양씨와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홍씨가 [[수양대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본인은 물론이고 아들들까지 죽임을 당한 [[혜빈 양씨]]에 비해 말년까지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보면 적어도 중립을 지키며 방관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 여담 == [[문종(조선)|문종]]의 정실이나 [[후궁]]들 중 문종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실록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기록에는 항상 '총애를 받았다'나 '믿고 중히 여기었다'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평소 과묵하고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던 문종이 남들이 다 알 정도로 총애를 드러냈을 정도니 정말 각별히 사랑했던 듯.[* 홍씨가 승휘 시절에 낳은 딸은 작위를 받기 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다른 말이 없이 홍씨의 딸이 죽은 사실만 실록에 따로 기록되어 있다. 이 또한 작위도 받지 못한 세자의 서녀치고는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남편인 [[문종(조선)|문종]]과는 외조부 윤규를 통해 이중, 삼중으로 인척을 형성하고 있다. [[세조(조선)|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는 홍씨의 종이모이고, 문종의 후궁인 소용 윤씨는 윤규의 아들 윤희의 딸로 홍씨와는 외사촌관계이다. 또 다른 문종의 후궁인 숙의 문씨는 홍씨의 5촌 조카다[* 문씨의 어머니는 홍씨의 이종사촌자매이다.]. 애초에 홍씨가 세자의 후궁에 간택될 수 있었던 것도 [[태종(조선)|태종]]의 과거시험 동지였던 윤규의 손녀딸이라는 점이 한 몫 한듯 싶다[* [[남양 홍씨]]는 명문가 중 하나지만, 홍씨가 [[후궁]]에 간택되는 시점에서 증조부 홍유룡은 여러 번 사고를 쳐서 파직을 당하는 등 인품이나 처세에 대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조부 홍덕보는 아예 과거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아버지인 홍심도 딸이 세자의 [[후궁]]이 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