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3352 0%, #C23352 20%, #C23352 80%, #C23352)" '''{{{#ffd400 조선 장조의 후궁[br]{{{+1 숙빈 임씨 | 肅嬪 林氏}}}}}}'''}}} || ||<bgcolor=#C23352> '''{{{#gold 빈호}}}''' ||<-2>숙빈(肅嬪) || ||<bgcolor=#C23352> '''{{{#gold 출생}}}''' ||<-2>미상 || ||<|2><bgcolor=#C23352> '''{{{#gold 사망}}}''' ||<-2>[[1773년]]^^([[영조]] 49년)^^ || ||<-2>[[조선]] [[한성부]] 중부 견평방 전동[* 전동(典洞) 또는 박동(磚洞)이라고 하며, 박석고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양제궁[* 1771년(영조 47) 은언군의 집을 탐문할 때 지명이 언급된다. ] || ||<bgcolor=#C23352> '''[[본관|{{{#gold 본관}}}]]''' ||<-2>부안(扶安) || ||<bgcolor=#C23352> '''{{{#gold 본명}}}''' ||<-2>임유혜 || ||<width=50><bgcolor=#C23352> '''{{{#gold 부모}}}''' ||<-2>부친 임지번 모친 김해김씨 || ||<bgcolor=#C23352> '''{{{#gold 부군}}}''' ||<-2>[[조선]] [[사도세자|장조의황제]] || ||<bgcolor=#C23352> '''{{{#gold 자녀}}}''' ||<-2>2남 ^^(1남)^^ [[은언군]] ^^(1남)^^ [[은신군]] || [clearfix] [목차] == 개요 == [[조선]] [[사도세자]]의 후궁. 아버지 통덕랑 임지번과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한중록]]》에 따르면 이름은 '유혜'이다.[* 한중록에 기록된 덕분에 이름이 전해지는 몇 안되는 후궁 중 한 명이다. ] 사도세자의 [[서출]]인 [[은언군]]과 [[은신군]] 두 아들의 어머니이며, 훗날 [[철종(조선)|철종]]의 증조모가 된다. == 생애 == === 축복받지 못한 임신 === 《한중록》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임씨의 본명은 '유혜'로 1753년 간에 사도세자가 가까이 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러나 [[영조]]의 꾸중을 두려워한 사도세자는 아예 임씨가 임신한 자신의 아이를 [[낙태]]시키고자 하였지만 기어이 [[은언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한때 임씨를 가까이 했을 뿐 총애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삭이 되어가도록 챙겨주지도 않았다. 사도세자의 친모인 [[영빈 이씨]]조차 임씨에 대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후궁을 환영하지 않는 이상 영빈 이씨는 영조와 입장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왕실 인원들이 임씨를 외면하자 보다못한 사도세자의 정실인 [[혜경궁 홍씨]]가 어쩔 수 없이 임씨를 돌봐주었다고 한다. --남편의 첩이지만 불쌍하니까-- === 은언군의 탄생 === 결국 임씨에게서 사도세자의 서장남 [[은언군]]이 태어나자 [[영조]]는 무려 한 달이 넘게 사도세자를 꾸짖었다. 심지어 혜경궁 홍씨에게도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고 남들이 다 하는 투기도 아니한다"'''라며 꾸짖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조는 사도세자가 여자를 가까이하는 일을 알리지 않고 임씨를 돌봐준 혜경궁 홍씨의 행동을 불충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 시대는 여자의 투기를 금기시 여겼지만, 반대로 너무 투기를 하지 않아도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중종(조선)|중종]]도 딸 [[효정옹주]]에게 "부녀자로서 투기가 없을 수가 없다" 라고 나무랐을 정도다. --아니 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 혜경궁 홍씨는 이때에 대해 "엄중한 하교가 그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사실 조선의 국왕뿐만 아니라 세자 역시 후궁을 들이는 건 흔한 일이였다. 조선 전기에 [[세종(조선)|세종]]이 [[문종(조선)|문종]]의 후궁을 간택하고, [[세조(조선)|세조]]가 [[의경세자]]의 후궁을 간택하는 등, 세자도 후궁을 둘 수 있었다. 또한 [[중종(조선)|중종]]도 후사가 없는 당시 세자였던 [[인종(조선)|인종]]을 걱정하여 그의 후궁을 간택하도록 한 적이 있다.[* 중종실록 80권, 중종 30년 11월 16일 계유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3011016_003|#]] ] 하지만 세자가 후궁을 두는 건 자식을 많이 낳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임금과 조정이 판단해서 시행한 일이였지, 사도세자처럼 자의적으로 궁녀를 건드려 임신시킨 사례는 얼마 없다. 이렇게 학문을 가까이하지 않고 [[궁녀]]를 건드려 자식까지 본 사도세자가 영조 입장에서는 매우 못마땅했던 것. 그러나 사도세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인원왕후]]의 침방에서 일하던 궁녀 [[경빈 박씨#s-2|빙애]]까지 건드려 [[청근옹주]]와 [[은전군]]을 얻는다. 은언군이 태어난 뒤에도 임씨에 대한 영조와 영빈 이씨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비록 은언군은 궁녀 소생의 [[서출]]이긴 하지만 영조와 영빈에겐 손자가 되는데도 두 사람은 은언군 모자를 냉대했다. >[[은언군|인]]이 그것이라도 손자라 하시며, 영조나 [[영빈 이씨|선희궁]]께서 약간이라도 봐주시거나 또는 [[사도세자|경모궁]]께서 이것에게 혹하시면, 내 비록 도량이 있다 해도 부녀자의 마음으로 어찌 편안하리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아서 영조와 선희궁께서 알은체 않으시고, 경모궁께서는 겁만 내셔서 어찌할 줄 모르시니, 그 와중에 나까지 투기하면 경모궁께서 황겁하신 중 근심하셔서 병환이 몇 층이나 더하실 줄 알리오. >---- >《한중록》[* 요약하자면 영조와 영빈, 사도세자가 은언군을 비롯한 사도세자의 서자들을 총애했다면 혜경궁도 질투를 했겠으나, 저 세 사람은 사도세자의 서자들을 총애하긴 커녕 외면하기만 했으니 혜경궁마저 사도세자의 후궁들과 서자들에게 동정심이 들었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은언군이 태어나자 탯줄을 태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는 안태(安胎) 의식을 해야 하는데 영조가 허락하지 않아 바로 할 수가 없었다.[* 영조실록 81권, 영조 30년 2월 5일 을유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ua_13002005_003|#]] ] 며칠 뒤에 관상감과 [[영의정]] 김재로가 다시 청하자 그제야 허락해주었다. 이러한 기록만 봐도 영조가 사도세자의 서자들은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가 낳은 자식들과 철저하게 차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 세자의 후궁이 되다 === 임씨는 두 아들을 낳은 후 세자 후궁으로서는 제일 높은 '양제'에 봉해져 양제 임씨라고 불렸다. === 임오화변 === [[임오화변]]이 일어나면서 임씨도 양제의 작호를 빼앗기고, 폐출되어 쫓겨났다. [[정조(조선)|정조]]가 즉위하면서 다시 양제로 복위된다.[* 정조실록 2권, 정조 즉위년 8월 3일 임인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va_10008003_003|#]] ] 한편 강화도에서 잊혀진 왕족으로 살다가 왕이 된 [[철종(조선)|철종]]이 숙빈 임씨의 증손자(장남 [[은언군]]의 손자). 그리고 그녀는 고종 대에 숙빈으로 봉해진다. == 가계 == 남편 : [[사도세자]] * 장남 : [[은언군]][* [[철종(조선)|철종]]의 친할아버지.] * 차남 : [[은신군]] == 숙빈 임씨가 등장한 작품 == || [[파일:한중록 숙빈 임씨.png|width=100%]] || ||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에 나온 숙빈 임씨 || * 1988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 - 채유미[* 후속작 《대원군》에서는 증손자 [[철종(조선)|철종]]의 왕비 [[철인왕후]]로 출연했다. 《한중록》의 [[사도세자]] 역은 [[최수종]]이었는데 《대원군》에서 [[철종(조선)|철종]] 역을 맡은 배우도 역시 최수종이라 두 번에 걸쳐 부부[* 비록 숙빈 임씨의 경우는 세자의 후궁이었지만.]로 만나는 [[배우 개그]]가 성립된다. 거기다 철종은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의 [[증손|증손자]]이다. --증손자로 다시 태어난 증조부와 환생해서 증손자와 결혼한 증조모--] 작 중 이름은 동이. [[사도세자]]([[최수종]] 분) 사후에도 궁에 계속 남아있는 것으로 나오며 [[혜경궁 홍씨]]([[최명길(배우)|최명길]] 분)와는 사이가 돈독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 [[파일:대왕의 길 숙빈 임씨.png|width=100%]] || || 《대왕의 길》에 나온 숙빈 임씨 || * 1998년 MBC 《[[대왕의 길]]》 - [[고호경]] [[분류:조선의 후궁]][[분류:부안 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