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공주]][[분류:1640년 출생]][[분류:1699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효종의 왕녀[br]{{{+1 숙명공주 | 淑明公主 }}}}}}'''}}} || ||<bgcolor=#94153e> '''{{{#gold 출생}}}''' ||<-2>[[1640년]]^^([[인조]] 18년)^^ [[1월 25일]][* 정확히는 윤1월 25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숙명공주 태지석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cultureSeq=00020361CR|#]] ] || ||<|2><bgcolor=#94153e> '''{{{#gold 사망}}}''' ||<-2>[[1699년]]^^([[숙종(조선)|숙종]] 25년)^^ [[3월 17일]][br]{{{-2 (향년 60세)}}} || ||<-2>[[조선]] [[한성부]] 서부 인달방 청평위궁[* 효종이 공주를 위해서 [[인경궁]] 옛 터에 새로 지었다. ] || ||<width=50><bgcolor=#94153e> '''{{{#gold 부왕}}}''' ||<-2>[[효종(조선)|효종]] || ||<width=50><bgcolor=#94153e> '''{{{#gold 모후}}}''' ||<-2>[[인선왕후|인선왕후 장씨]] || ||<width=50><bgcolor=#94153e> '''{{{#gold 부군}}}''' ||<-2>청평위 심익현[* 본관은 [[청송 심씨|청송]], 자는 가회(可晦)이며, 호는 죽오(竹塢)이다. ] || ||<width=50><bgcolor=#94153e> '''{{{#gold 자녀}}}''' ||<-2>2남 ^^(1남)^^ 심정보 ^^(2남)^^ 심정협 || [목차] [clearfix] == 개요 == [[효종(조선)|효종]]과 [[인선왕후]]의 3녀. == 생애 == 1652년(효종 3) 13세의 나이로 이조 참판 심지원의 아들 심익현과 가례를 올렸다. 이듬해 효종은 출합[* 조선 시대 왕자나 왕녀가 가례 후 궁궐 밖의 살림집으로 나가는 일을 말한다. ]하는 딸을 위해서 [[인경궁]] 옛 터에 집을 짓게 하는데 많은 물자와 공역이 들어가서 [[사헌부]]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청평위궁평면도를 보면, 약 160여간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이다. [[http://yoksa.aks.ac.kr/jsp/aa/ImageView.jsp?aa10up=kh2_je_a_vsu_84557_000&aa10no=kh2_je_a_vsu_84557_001|#]] ] >신들이 삼가 듣건대, 전하께서 숙명 공주(淑明公主)를 위하여 인경궁(仁慶宮) 옛터에 집을 지으시는데 제도가 굉장하고 사치하여 공역이 크므로 물역(物役)의 비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아서 석 달 동안에 쓴 것이 군포(軍布) 70여 동(同)과 요미(料米) 4백여 석에 이른다고 하니 앞으로의 비용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 >---- >《조선왕조실록》 효종 4년 8월 19일 효종은 자신의 딸들을 위해서 아끼지 않고 베풀었고, 이는 [[현종(조선)|현종]] 또한 마찬가지여서 공주의 집을 수리하는 일로 비판 받는다. 이렇게 숙명공주가 워낙 [[금지옥엽]]으로 자라서 그랬는지, [[숙종(조선)|숙종]] 대에는 내전에 문안하러 들어와서는 조사석의 임명을 두고 "그 사람이 재주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고 [[자의대비]] 앞에서 말했다.[* 조사석은 자의대비의 사촌 동생이다. ][* 조사석은 본래 당적은 서인이되, 본인이 노선을 또렷하게 하지 않아 노론에게는 소론이라고 비난받고 남인에게는 노론이라고 비난 받았다. ] 숙종은 공주의 이런 말을 노엽게 여겨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암탉이 우는 일]]도 경계하는데, 하물며 공주들이겠느냐?" 라고 말한 일까지 있었다. 이때 사관은 숙명공주가 [[동평군]] 이항과 불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사실 숙명공주, 숙안공주 등은 시가가 [[서인]]이었고, 동평군의 어머니인 숭선군부인과 자의대비의 후원을 받는 [[남인]]인 [[희빈 장씨]]가 싫었던 까닭이었다. 급기야 [[갑술환국]] 때는 "청평(靑平)[* 청평위 심익현과 혼인한 효종의 셋째 딸, 숙명공주. ], 인평(寅平)[* 인평위 정제현과 혼인한 효종의 넷째 딸, 숙휘공주. ], 익평(益平)[* 익평위 홍득기와 혼인한 효종의 둘째 딸, 숙안공주. ] 세 공주를 살해하여 야 남인은 근심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까지 공초에서 나온다. 숙종 대에 언니 [[숙안공주]]의 아들 [[홍치상]]이 처형당할 때, 홍치상은 자신의 사촌이자 같은 동서인 숙명 공주의 장남인 심정보에게 누명을 씌웠는데, 결국 심정보도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된다.[* 심정보는 당대에 주색잡기를 좋아하고, 성품은 용렬하고 식견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 여담 == * 세간에는 소문난 [[고양이]] [[집사]]이자 [[냥덕후]]로 비춰진다. 오죽하면 [[인선왕후]]가 편지로 "[[숙휘공주|네 여동생]]은 벌써 [[임신|회임]] 중인데, 너는 어쩌자고 [[고양이]]만 좋아하니?" 잔소리를 한 적이 있으며 효종도 "너는 시집에 가면 시부모에게 잘 해야지, 왜 고양이만 끼고 사니?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해서 먹어라" 하면서 편지로 잔소리를 해댔다. 또한 숙명공주가 입궁해야 하는 날에 입궁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효종이 "뭐 들어와야 하는데 못 들어온 것도 잘못이겠지. 그런데 그건 분명 전부 네 남편 탓이니까 네 남편 갈궈라"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 효종, 인선왕후, 장렬왕후 등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65통을 모은 숙명신한첩이 있으며, 소장 및 관리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하고 있다. * 숙명공주는 특히 [[연년생]] 남동생인 현종과 사이가 좋았다. 인선왕후는 여러 사위 중에 숙명공주의 남편인 심익현을 가장 총애했는데, 심익현의 이모부가 인선왕후의 오빠인 장선징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