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2><table align=right><bgcolor=#00529c> {{{#fff '''항공사고 요약도'''}}} || || '''발생일''' || [[1949년]] [[5월 4일]] || || '''원인''' || 악천후로 인한 가시거리 미확보 || ||<bgcolor=#fac832><color=#373a3c> '''탑승인원''' || 승객: 27명[br]승무원: 4명 || ||<bgcolor=#fa4b4b> '''{{{#fff 사망자}}}''' || 31명 전원 사망 || ||<bgcolor=#4bfa4b><color=#373a3c> '''생존자''' || - || || '''기종''' || 피아트 G.212 || || '''항공사''' || [[알리탈리아]] || || '''출발지''' || [[리스본]] || || '''경유지''' || [[바르셀로나]] || || '''도착지''' || [[토리노]] || [[파일:external/antoangiaothong.gov.vn/a11.jpg]] 이 흑백사진으로만 봐도 참혹하다. [목차] '''Tragedia di Superga''' == 소개 == '''축구계 역사상 최초의 대형사고.'''[* 선수들이 사고를 당해 팀이 휘청이게 된 사례로는 사상 최초이다. 관중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는 수페르가의 비극 이전에도 [[잉글랜드]]의 번든 파크 참사 등이 있다] 이 사건은 [[1949년]] [[5월 4일]]. [[이탈리아]]의 [[토리노 FC]] 팀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함으로서 일어났다. 당시 비행기가 추락한 언덕인 수페르가의 이름을 따서 흔히 수페르가의 비극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 마지막 경기 == 당시 [[토리노 FC]](이하 토리노)는 '''전쟁 이후 재개된 [[세리에 A]]에서 5연패를 앞두고 있는 강팀'''이었다.[* 전쟁으로 중단된 1943-45년을 제외하고 그 이전 시즌인 1942-43, 그리고 그 다음 3시즌을 내리 우승하고 1948-49 시즌도 우승을 거의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그들의 기량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이는 그들 멤버 대부분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대표팀]]의 멤버였다는 것에서 증명되었다. 이 당시 같은 연고지를 두고있는 토리노와 유벤투스를 비교하는건 "감히 유벤투스 '''따위'''와 그란데 토리노를 비교해?"란 말이 나올정도로 실례되는 일이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당시의 유벤투스도 지금처럼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고 세리에 A에서 우승을 노릴만한 팀 중 하나였지만 그만큼 토리노의 위세가 더 셌다는 말이다. [[파일:external/www.ilgrandetorino.net/4.jpg]] 일 그란데 토리노 당시 [[토리노 FC|토리노]]는 4월 30일 [[인터 밀란]]과의 리그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4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2위와의 승점 차는 4점이었다. 당시엔 1승에 2점을 받았으므로 남은 4경기에서 1승 이상만 거두면 우승이 거의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토리노 FC|토리노]]의 회장 페루초 노보의 요청에 의해 [[벤피카]]의 초청을 받아 [[리스본]]으로 떠났다. 페루초 노보는 벤피카의 수비수 시코 페레이라의 팬이었던터라 그의 기념 경기에 [[토리노 FC|토리노]] 선수들을 보낸 것이었다. 그 경기의 결과는 벤피카의 4:3 승리로 끝났지만 그들의 목적은 승패가 아닌 양팀의 우호였었다. 그렇게 경기를 잘 끝내고 [[토리노 FC|토리노]] 팀 선수들은 [[토리노]]로 돌아가는 [[알리탈리아]] 소속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당시 누구도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 사고 == [[리스본]]에서 9시 40분에 이륙한 Fiat G.212 비행기는 [[바르셀로나]]에서 한 차례 착륙하여 급유를 한 다음 [[토리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토리노]]에는 갑작스런 [[번개]]가 쳤고 그로 인해 [[시야]]가 매우 불량했다. 결국 사고 기체의 기장이었던 피에르루이지 메로니 [[중령]]은 눈으로 보고 비행할 수 있도록 기체를 하강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오후 5시, 이렇게 하강하는 동안 수페르가 언덕 위의 성당을 발견하지 못했고 성당의 뒤쪽 벽에 그대로 충돌해버리고 말았다. == 희생자 == 이 사고로 인해 '''탑승객 31명이 전원 사망'''하였으며, 여기에는 [[토리노 FC|토리노]]의 선수 18명과 감독 및 코치 등 스탭 5명이 타고 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apide_Superga.jpg]] 사고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비 === 희생자 명단 === * [[토리노 FC|토리노]]의 팀 구성원 || 이름 || 나이 || 포지션 || 국적 || 국가대표 || 비고 || || 발레리오 바치갈루포 || 25 || GK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알도 발라린 || 27 || D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디노 발라린 || 23 || DF || [[이탈리아]] || || || || 에밀레 본조리니 || 28 || FW || [[프랑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 에우제비오 카스틸리아노 || 28 || M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루벤스 파디니 || 21 || MF || [[이탈리아]] || || || || 굴리엘모 가베토 || 33 || FW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루게로 그라바 || 27 || FW || [[이탈리아]] || || || || 쥐세페 그레자르 || 30 || M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에지오 로익 || 29 || M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비르질리오 마로소 || 23 || D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다닐로 마르텔리 || 24 || MF || [[이탈리아]] || || || || [[발렌티노 마촐라]] || 30 || M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주장 || || 로메오 멘티 || 29 || FW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피에로 오프레토 || 22 || DF || [[이탈리아]] || || || || 프랑코 오솔라 || 27 || FW || [[이탈리아]] || [[이탈리아 U-20 축구 국가대표팀]] || || || [[마리오 리가몬티]] || 26 || MF || [[이탈리아]]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율리우스 슈베르트 || 26 || MF || [[헝가리]] ||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아날도 아그니세타 || || 매니저 || [[이탈리아]] || || || || 이폴리토 시발레리 || || 매니저 || [[이탈리아]] || || || || 에르네스트 에르브스타인 || 50 || 트레이너 || [[헝가리]] || || [[홀로코스트]] 생존자, [br] 전직 토리노 FC 감독 출신[* 1938년 ~ 1939년] || || 레슬리 리브슬리 || 37 || 감독 || [[잉글랜드]] || || || || 옥타비오 코리나 || || 안마사 || [[이탈리아]] || || || || 안드레아 보나유티 || || 브로커[* [[토리노 FC|토리노팀]]의 경기일정 담당] || [[이탈리아]] || || || * 기체 승무원 || 이름 || 나이 || 국적 || 직책 || 비고 || || 피에루이지 메로니 || || 이탈리아 || 기장 || [[공군]] [[중령]] || || 안토니오 파그라치 || || 이탈리아 || || || || 셀레스티노 디 잉카 || || || || || || 세사르 비앙카디 || || || || || * 기자 || 이름 || 나이 || 국적 || 직책 || 비고 || || 레나토 카사르보레 || 58 || 이탈리아 || 저널리스트 || 투토스포르트의 창립자[* 이탈리아 최대 스포츠 신문중 하나이다.] || || 루이지 카발레로 || || || 기자 || 라 스탐파[* 토리노 지역의 조간지] || || 레나토 토사티 || || || 기자 || 가제타 델 포폴로[* 토리노 지역 일간지] || == 후유증 == 그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추도 인파가 몰려들었다. 토리노는 당시 리그 4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이었으나, 이 사고로 인해 토리노는 당시 베스트 11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유스 선수들을 급히 콜업하였지만 남은 경기에서 1위를 지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는 4경기를 치르지 않아도 시즌 우승은 토리노라고 발표했지만 토리노 구단에서는 유스를 출전시켜서라도 끝까지 시즌을 진행하겠다고 나섰고, 토리노의 남은 리그 4경기에서는 상대 팀도 토리노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같이 유스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유스 선수들로 메운 공백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결국 토리노는 리그의 주도권과 토리노의 대표 클럽 이미지를 라이벌 [[유벤투스]]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토리노는 이 사고 이후부터 세리에에서 그냥 그런 팀으로 사그라들고 만다. 1942-1943 시즌을 시작으로 2차 대전으로 인한 2년간의 공백까지 이겨내고 파죽의 5연패를 이어가던 토리노는 사고 이후 1975-1976 시즌에 우승한 뒤로 40년 넘게 리그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80년대 리그 준우승 및 90년대 코파 이탈리아 우승도 해봤으나 이후 2부리그로 강등당하며 2000년대 와서 우승컵을 들어본게 고작 2부리그 우승컵 하나뿐이다. 2000년대 승격한 1부 리그에서도 겨우 강등을 모면하거나 10위권대에서 맴돌 정도. 당시 이 비행기 안에는 [[발렌티노 마촐라]], 마리오 리가몬티 등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많이 타고 있었던지라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대표팀에게도 큰 손실로 다가왔다. 이탈리아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전력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였고 결국 1차 지역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뮌헨 비행기 참사]]를 겪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차이를 굳이 비교하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뮌헨의 사고에서 감독 [[매트 버스비]]경을 포함하여 [[보비 찰튼]] 등 스쿼드의 일부가 살아남았고 그들을 주축으로 새로 팀을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영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토리노는 선수와 감독 거의 전부를 잃어버렸던 관계로 그 상처가 더욱 컸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 공백을 메우는데 20년 정도의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래선지 자국팀이 졸전을 하면 야유나 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탈리아 팬들도 이 때만큼은 비난을 자제했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 사고가 없었더라면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서 3연패를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등 남미팀과 상당히 좋은 시합을 펼쳤을 것이며,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1958년 월드컵]]에서 지역예선 탈락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만약 이탈리아가 1958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더라면 독일의 18회 연속 본선 진출을 뛰어넘는 19회 연속 본선 진출도 가능했다.) 이 사고 이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가 다시 세계구급 강호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유로 1968|1968년 유로]] 우승과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1970년 월드컵]]에서의 준우승이었다. 이 이전의 이탈리아는 국제대회에서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잉글랜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이 사고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는 에밀레 본조리니를 이 사고로 잃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율리우스 슈베르트를 이 사고로 잃었다. 헝가리는 어네스트 알베스타인을 이 사고로 잃었으며 잉글랜드는 레슬리 리브슬리를 이 사고로 잃었다. 이 사고가 뒤에 [[카테나치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축구의 현재 색깔이 나오는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 사고를 비껴간 사람들 == 원래 경기의 출전 명단에는 있었지만 [[새옹지마|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덕에 목숨을 건진]] 3명의 선수가 있었다. 토리노의 사우로 토마는 부상으로 인해 포르투갈에 가지 못했고, 후보 선수 루이지 줄리아노는 여권 문제로 공항에 묶였다가 화를 면했다. 또한 초청 선수 자격으로 토리노 팀에서 뛸 계획이었던 [[라슬로 쿠발라]]는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리스본에 가지 못했다. == [[리베르 플라테]]와의 자선경기 == 1949년 5월 26일 이 사고로 인한 유가족들을 돕고자 하는 의미로 자선 경기가 개최되었고 상대는 아르헨티나의 [[리베르 플라테]]로 낙점되었다. 이 경기에는 [[라 마키나]]의 멤버였던 [[앙헬 라브루나]]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출전했고 경기는 2:2로 비겼다. == 관련 문서 == * [[뮌헨 비행기 참사]] - 1958년 2월 6일 발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를 태운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이 이륙 도중 전복되어 맨유 선수 8명을 포함해 총 23명이 사망한 사고. * [[라미아항공 2933편 추락 사고]] - 2016년 11월 29일 브라질 리그 축구팀 아소시아상 샤페코엔시 지 푸테보우 소속 선수 등 81명이 타고 가던 전세 비행기가 콜롬비아 북서부 메데인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 추락한 사고. [[분류:1949년 항공사고]] [[분류:이탈리아의 항공사고]] [[분류:스포츠 사건사고]] [[분류:악천후로 인한 항공사고]] [[분류:토리노 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