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px-Hidari_mitsudomoe.svg.png]] [br] [[류큐/역대 국왕|'''류큐의 역대 국왕''']][br]'''제2 쇼씨 왕조''' || ||<width=30%><:> 13대 국왕 쇼에이 왕 ||<:> {{{+1 ←}}} ||<width=30%><:> '''14대 국왕 쇼네이 왕''' || {{{+1 →}}} ||<width=30%><:> 15대 국왕 쇼호 왕 || [[파일:external/bt.suitenrou.com/4.jpg]][* [[류큐 왕국]] 국왕의 [[어진]]을 우구이 또는 오고에(御後絵)라고 부르는데, 불교 [[탱화]]의 영향을 받아 임금을 부처님처럼 표현해 위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http://webzine.acc.go.kr/blog/month/0/179|#]]][* 유독 류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유럽의 일부 국가 군주들의 어진들 중에도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있는데, 특히 [[이콘]]을 연상케 하는 [[동로마 제국]] 황제들의 어진이 대표적이다.] 1564년 ~ 1620년 [목차] == 소개 == 쇼네이 왕(尙寧王, 재위 : 1589년~1620년) 류큐 왕국 제2 쇼씨 왕조 제7대 국왕이다. 신호(神號)[* [[류큐어]]로 지은 존호(尊號)]는 테다가스에아지오소이(日賀末按司添 てだがすゑあじおそい)인데 뜻은 [[일제강점기#s-3|해의 마지막]] 임금님이다. 쇼네이 왕은 3대 국왕인 [[쇼신 왕|상진尙眞]]의 현손자, 폐세자 상유형尙維衡의 증손자, 상홍업尙弘業의 손자, 상의尙懿의 아들이며 6대 국왕인 쇼에이 왕의 재종질이자 사위[[근친혼|인데]] 이는 쇼에이 왕에게 아들이 없이 딸만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쇼에이 왕에게는 아우 상구尙久가 있고 상구의 아들이자 친조카인 상풍尙豐이 있었는데도 굳이 재종질을 [[사위]]로 들이는 [[근친혼]]을 해서 물려주었다. 정 아우와 친조카가 싫어서 재종질에게 물려주었다고 해도 [[양자(가족)]]로 들여서 물려주면 되건만 굳이 [[근친혼]]을 한 것은 아직 [[류큐]]에 종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큐]]에도 종법이 받아들여져 중하급 사족은 동족혼을 꺼렸지만 상급 사족과 [[왕족]]은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지키기 위해 혼인의 문호가 좁다 보니 동족혼이 성행하였다. 히가시온나간준(東恩納寬惇)이 소개한 바로는 상온尙溫왕에게 책봉부사冊封副使 이정원李鼎元이 왕과 성이 같은 비妃가 있어서 왜 동족끼리 결혼하냐고 묻자(중국에서 촌수가 멀어도 겨레붙이와의 결혼은 가까운 친척끼리의 결혼처럼 매우 상스럽게 여긴다.) 그 왕비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사실 제1 상씨 왕조의 후손이라고]] 둘러대고 아예 족보를 [[주작#s-1.1|주작]]하였다. --정작 쓰지 않은 게 함정.-- 다나마사유키(多名眞之),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56417384&dir_id=0&page=0&query=%EA%B7%BC%EC%84%B8%20%EB%A5%98%ED%81%90%20%EC%82%AC%EC%A1%B1%EC%B8%B5%EC%9D%98%20%ED%98%BC%EC%9D%B8&ndsCategoryId=10310&library=33|「근세 류큐 사족층의 혼인」]], pp. 37~39, 호남문화연구 50 : 25~43(2011. 12),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쇼네이 왕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류큐 왕국에게도 출병을 요구했으나 쇼네이 왕은 이를 거절했다.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류큐 왕국은 명나라의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가 모두 끝나고 [[일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천하가 된 이후인 1609년, 명나라가 망해가고 있자 이 틈을 노린 사쓰마 번의 시마즈 가문이 류큐 왕국을 침공하였고, 이에 쇼네이는 시마즈 씨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류큐 왕국은 사실상 비독립국인 채 사쓰마 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일본과 명나라 모두에 양속(兩屬)하게 되었다. 추후 명나라가 멸망하자 형식상으로는 그 후신인 청나라에게도 조공을 바쳤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에 소속되었다. 쇼네이 왕은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에도로 압송되어 이 당시의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였고, 나중에 류큐 왕국으로 돌아갔다. 1613년에는 종전조약을 맺었지만 그 대신 아마미 열도를 할양하고 엄청난 양의 공물을 감당하게 했다. 류큐 왕국은 이것을 인두세로 충당케 했는데, 이로 인해서 각 마을에서는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을 죽이거나 먼 곳까지 나가서 하루종일 일만 하게 하였다. 이 가혹한 조치는 메이지 정부 때 일본 영토로 공식 편입된 지 30년이 지난 1900년에서야 폐지되었다. == 평가 == 사실상 류큐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쇼네이 왕 이후에도 왕조는 이어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괴뢰국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유신]]까지 왕조가 지속된 이유는 왕을 몰아내면 그곳의 주민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는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형식상으로 류큐 왕국을 살려놓으면 중국과 조선의 관계처럼 형식적인 사대외교를 통해 [[조공]]무역을 2배로 할 수 있고, 일본의 상품을 중국 등지나 조선에 팔아먹기 딱 좋기 때문이다.[* 애초에 류큐의 지리학적인 특성상 중국과 조선, 일본을 연결하는 무역 경유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류큐 왕국의 역사상으로는 굉장히 치욕적인 왕이자 최악의 [[암군]]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일본, 그것도 일개 번에 싸워보지도 않고 힘없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 매체에서의 등장 == [[마에다 케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꽃의 케이지]]란 만화에서 주인공의 연적으로 후반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여기서는 나름대로 현명한 국왕으로 나오지만... 1993년 NHK에서 23부작 대하드라마[* 기존 NHK의 대하드라마가 1년동안 방영하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경우. 1993년은 유일하게 NHK가 반년씩 대하드라마를 방영한 해이다. 상반기에는 '류큐의 바람', 하반기는 오슈 후지와라씨의 몰락을 그린 '불타오르다(炎立つ)'.][* 특이하게도 오프닝곡이 관현악이 아니라 일반 가요풍의 가사가 있는 곡이다.]로 방영한 '류큐의 바람 (琉球の風 DRAGON SPIRIT)'이 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진순신]]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며 일본인으로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형과 류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쓰는 동생의 갈등과 향토애를 그린 작품이다.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서 류큐의 사신으로 등장한다. [[분류:류큐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