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必滿 1890년 ~ 1978년 7월 15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법학자, [[정치인]]이다. 호는 명고(鳴皐)이다. 본관은 [[여산 송씨|여산]]이다. 1890년 [[경기도]] 음죽현(현 [[이천시]] [[장호원읍]] 풍계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북도]] [[진천군]]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일본]] 세이소가쿠엔고등학교, [[주오대학]] 법과,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부터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1923년 한국독립동지회 중앙부 총무로 [[태평양잡지]]를 발행하였다. [[8.15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충청북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대한민국 참의원|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 발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제헌 국회의원/충청북도)] [[분류:이천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제헌 국회의원]][[분류:초대 참의원의원]][[분류:한국민주당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1890년 출생]][[분류:1978년 사망]][[분류:여산 송씨]][[분류: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