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파일:external/rokps.or.kr/359.jpg|width=150]] 宋邦鏞 1913년 2월 18일 ~2011년 9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3년 [[전라북도]] [[김제시|김제군]]에서 태어났다. 5년제 [[배재학당|배재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 문과 과정을 졸업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김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조한백]]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1955년)|민주당]] 조한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 말기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9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대한민국 참의원|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초 [[3.15 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공민권 제한 대상자에 속하지는 않았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서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장경순(1922)|장경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이재형(정치인)|이재형]]의 정민회 계보에 속하였다. 171년 초 신민당을 탈당하였다. 그리고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겸 장기자원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말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신정우회]] 제3기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임명되었다. [[분류:1913년 출생]][[분류:2011년 사망]][[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초대 참의원의원]][[분류:제10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유신정우회 국회의원]][[분류:김제시 출신 인물]][[분류:배재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