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 bordercolor=#00001b><bgcolor=#ffffff> [[파일:/image/001/2012/08/02/PYH2012080200780001300_P2.jpg|width=100%]] || ||<bgcolor=#131230> '''{{{#white 이름}}}''' ||<bgcolor=#ffffff> 송대남(宋大南, Song Daenam) || ||<bgcolor=#131230> '''{{{#white 국적}}}''' ||<bgcolor=#ffffff>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bgcolor=#00001b> '''{{{#white 출생}}}''' ||<bgcolor=#ffffff> [[1979년]] [[4월 5일]], [[충청북도]] [[청주시]] || ||<bgcolor=#00001b> '''{{{#white 학력}}}''' ||<bgcolor=#ffffff> 금오초등학교[br]경민중학교[br][[경민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 ||<bgcolor=#00001b> '''{{{#white 종목}}}''' ||<bgcolor=#ffffff> [[유도]] || ||<bgcolor=#00001b> '''{{{#white 체급}}}''' ||<bgcolor=#ffffff> -90kg || ||<bgcolor=#00001b> '''{{{#white 신체}}}''' ||<bgcolor=#ffffff> 177cm, 81kg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유도]] 선수이자 現 유도 코치다. 미남이고 우직함으로 남자팬도 많다. 한 때는 대한민국 올림픽 도전 역사상 '''개인 종목 최고령 금메달리스트'''였으며 그 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갑내기 [[사격(스포츠)|사격]]선수 [[진종오]]에 의해 깨졌다. == 선수 경력 == === 어린 시절~[[2003년]] === 소년체전 입상 등 유도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지만, [[경민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슬럼프에 빠지며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유도계의 빅 3 대학교인 [[용인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 때 당시 [[청주대학교]] 유도부를 이끌던 박종학 감독의 눈에 들어오면서 [[1998년]] [[청주대학교]]에 입학했다. [[청주대학교]]에 입학한 후 1999년 춘계전국대학 연맹전(66kg급) 우승, 2000년 전국체전(73kg급) 준우승, 2001년 추계전국대학 유도연맹전 73kg급에서 우승하며 조금씩 다시 이름을 알렸다. === [[2004년]] === 그러나 번번히 부상과 불운이 겹치며 올림픽에 계속 나가지 못했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권영우[* 1981년생. 2001년과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낸 유망주였다.] 에게 밀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 [[2005년]]~[[2007년]] === -81kg급의 국가대표로 군림해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랭킹 1위에도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 [[2008년]] ===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는 -73kg급의 [[이원희(유도)|이원희]] VS [[왕기춘]]의 경쟁에서 밀려 81kg급으로 체급을 올린 [[김재범(유도)|김재범]]의 대두로 인해 치열한 선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연장 접전 끝에 김재범에게 최종 선발전 결승에서 판정패하면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김재범은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동 체급의 강자로 떠올랐고, 이어 2010년과 2011년 세계선수권 우승 등으로 최강자의 입지를 굳히게 되면서 졸지에 송대남의 입지는 묘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 [[2010년]], [[2011년]] === 2010년 11월 무릎 부상을 당해 무릎 십자인대를 잇고 연골 봉합 수술을 받아 재활하게 되면서, 4개월 넘게 유도판을 떠났다.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에게 밀려난 송대남은 처음에는 방황했지만, [[정훈(유도)|정훈]] 감독의 지도 아래 방황을 멈췄다. 대신 동 체급의 강자로 부상한 김재범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90kg으로 또 한 번 체급을 올렸다. 하루에 스테이크를 12개를 먹는 강행군 끝에 증량을 시도해서 자리를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80kg과는 달리 세계 무대에서 초강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체급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자동 시드 배정자가 없었고, 결국 이규원[* 2009 세계선수권 이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과의 대표 선발전 끝에 [[2012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 [[2012년]] ===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만 33세의 나이로 일종의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지만, 본선에서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경기를 선보이면서 8강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의 [[일본]] 선수를 누르면서 4강 진출에 성공하더니, 4강에서는 [[브라질]] 선수를, 결승에서는 [[쿠바]] 선수를 연장 접전 끝에 끝내기 안뒤축 기술로 극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 은퇴 이후 == 남자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재직 중이다. 2015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남자 유도가 금메달 2개를 따내고 곽동한, [[안바울]], [[안창림]] 등 많은 유망주들이 등장하면서 코치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 수상 기록 == ||<-3><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1230><table width=350><bgcolor=#131230> {{{#white 올림픽}}}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2012 런던 올림픽|2012 런던]] ||<bgcolor=#ffffff> -90kg || ||<-3><bgcolor=#131230> {{{#white 동아시안 게임}}}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2010 마카오 ||<bgcolor=#ffffff> -73kg || ||<-3><bgcolor=#131230> {{{#white 실내 무술 아시안 게임}}}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2009 방콕 ||<bgcolor=#ffffff> -90kg || ||<-3><bgcolor=#131230> {{{#white 세계군인체육대회}}}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2003 카타니아 ||<bgcolor=#ffffff> -73kg || == 기타 == *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인 [[정훈(유도)|정훈]] 감독은 송대남과 동서 사이, 즉 [[정훈(유도)|정훈]] 감독의 처제가 송대남과 결혼했다. [[정훈(유도)|정훈]] 감독이 사람 좋고 성실한 모습에 처제를 소개시켜 줬다고 한다. [각주] [[분류:유도 선수]][[분류:청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79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