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경성군 출신 인물]][[분류:1883년 출생]][[분류:193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송관섭.png|width=300px]] || || 성명 ||송관섭(宋瓘燮) || || 이명 ||송권섭(宋權燮) || || 생몰 ||[[1883년]] [[5월 6일]] ~ [[1930년]] [[6월 3일]] || || [[출생지]]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읍 승암리 || || 사망지 ||[[함경북도]] [[경성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송관섭은 1883년 5월 6일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읍 승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중순경 승암리 장날을 이용해 주민 200명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리고 1919년 7월 초순 동지 이상호(李相鎬) 등 8명과 함께 [[송윤섭]]의 집에서 비밀리에 회합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 연통제(聯通制) 조직을 적극 호응, 가담키로 결의했다. 그는 재무 일을 담당하여 군내 유지 부호들로부터 독립 성금을 수백원씩 거출해 임정의 조직을 통해 송금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윤태선, [[전재일]] 등과 함께 13도 통감부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1920년 3월 초 경성군 자택에서 미행하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7년 2월에 [[신간회]]가 조직되자 함경북도의 신간회 함북지부를 조직하고 회장에 취임,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6월 3일 경성군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송관섭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