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분류:1976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 == 개요 == '''손정탁'''(孫禎鐸, 1976년 5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인이다. 1999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데뷔하여 [[상주 상무|광주 상무]],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 삼성]] 및 [[창원시청 축구단|창원시청]]에서 공격수로 뛰었으며,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어 현재는 [[WK리그]] [[보은 상무]]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196cm에 달하는 장신으로 2000년대 초중반 K리그 최장신 스트라이커로 활동했다. 장신을 이용한 공중볼 다툼에 능해서 일세를 풍미...해야 했는데 자세한 것은 후술. == 선수 경력 == [[현대고등학교(울산)|울산현대고등학교]]와 [[울산대학교]]를 거쳐 1999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울산 현대에 지명되었다.[* 당시 제도에서 1995 시즌에는 연고 고교 우선지명이 없었으며, 울산대는 연고 대학으로 우선지명이 가능했으나 1999년에 우선지명된 선수는 미드필더 [[김도균(축구)|김도균]]이다. 우선지명은 형식상 4순위 취급.] 울산에서는 주로 주전 투톱이던 김종건 혹은 장철민, [[안홍민]] 등의 윙어와 교체하여 경기 막판 공중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졸 신인으로서 1순위 드래프티들이 흔히 첫해부터 주전으로 발탁되는 데 비하면[* 1999년의 경우 [[부천 SK]]의 [[이성재(1976)|이성재]]가 유명한 사례.] 소소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2002년에 상무로 입대를 하였고, 2003 시즌에는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함으로써 프로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조재진]]과 [[이동국]]이 부동의 투톱을 꿰어찼기 때문에 상무에서도 교체로 출전하거나 간혹 2군[* 이천 상무 명의로 [[한국 내셔널리그|K2리그]] 참가.]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제대 후 전북에 입단했다가 2005년 여름 시즌에 수원 삼성으로 입단했다. 문제는 이 해의 수원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빈공 속에 하위권으로 처졌다는 것으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센터백인 [[마토 네레틀랴크]]였던 데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판 골잡이 [[나드손]]이야 부상이다 치고, 복귀한 [[산드루 카르도주 두스 산투스|산드로]]도 삽을 푸는 상황. 그 중에서도 아예 득점이 없는 손정탁이 묘하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 손정탁 클럽 === [[https://footballk.net/mediawiki/%EC%86%90%EC%A0%95%ED%83%81_%ED%81%B4%EB%9F%BD|풋케위키 문서]] 이후 [[디시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나 [[사커월드]] 등 국내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손정탁과 같이 빈약한 득점 생산력을 자랑하는(?) 장신 공격수들을 묶어서 까는 '손정탁 클럽'[* 물론 [[레프 야신|야신]] 클럽 등 뛰어난 선수를 묶어내는 가십을 따온 것이다.]으로 꼽았다. 시즌별로 부진한 선수, 그것도 출장이 많으면서 득점이 적은 선수를 꼽기 때문에 전통적인 단골 멤버(?) [[박성호(축구선수)|박성호]], 삼동현[* [[김동현(범죄자)|김동현]], [[서동현]], [[양동현]].]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나 [[이동국]]도 걸리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국축갤이 타 커뮤니티에 밀려 뜸해지면서 요새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손정탁은 2006년 수원에서 방출된 후 창원시청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은퇴했다. 역대 기록은 K리그(컵대회 포함) 106경기 출장(88경기 교체) 11득점 7도움으로, 34출장 4득점을 올린 광주 상무 2003 시즌이 커리어 하이다. == 지도자 경력 == 은퇴 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다가 [[청주대성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2017년에 보은 상무 코치로 부임했다. 신분은 군무원 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