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안양 KGC인삼공사/선수단)]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bgcolor=#e31736> '''{{{#ffffff 손규완의 우승 경력}}}'''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3><tablealign=center>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 ||<bgcolor=#0000cd> '''[[1999-2000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00[br](선수)}}}]]''' ||<bgcolor=#00a495><color=#373a3c> '''[[2007-08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08[br](선수)}}}]]''' ||<bgcolor=#e31736> '''[[2016-17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17[br](코치)}}}]]''' || }}} || ||<-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e31736><tablebgcolor=#e31736> {{{+1 [[안양 KGC인삼공사|{{{#ffffff '''안양 KGC인삼공사 코치'''}}}]]}}} || ||<-3><height=40><bgcolor=#000000> {{{#ffffff '''ANYANG KGC'''}}} || ||<-3><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손규완코치.png|width=80%]]}}} || ||<-3><height=40><bgcolor=#000000> '''{{{+2 {{{#ffffff 손규완}}}}}} [br] {{{#ffffff 孫圭完}}}''' || ||<colbgcolor=#e31736><-2><height=40> {{{#ffffff ''' 출생 ''' }}} ||<colbgcolor=#ffffff,#191919>[[1974년]] [[12월 12일]] ([age(1974-12-12)]세) || ||<-2><height=40> {{{#ffffff ''' 신체 ''' }}} ||[[키(신체)|키]] 186cm || ||<-2><height=40> {{{#ffffff ''' 직업 ''' }}} ||농구선수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 ^^은퇴^^)[br][[코치(스포츠)|농구코치]] || ||<-2><height=40> {{{#ffffff ''' 학력 ''' }}} ||전주초등학교 {{{-2 (졸업)}}}[br] 전주남중학교 {{{-2 (졸업)}}}[br][[전주고등학교]] {{{-2 (졸업)}}}[br] [[경희대학교]] {{{-2 (졸업)}}} || ||<-2><height=40> {{{#ffffff ''' 프로입단 ''' }}} ||1996년 [[서울 SK 나이츠|진로 농구단]] 연고지명 || ||<-2><height=40> {{{#ffffff ''' 현역시절 등번호 ''' }}} ||10, 1 || ||<-2><height=40> {{{#ffffff ''' 병역 ''' }}} ||[[파일:attachment/sangmu.png|width=30]] [[상무 농구단]] (2000~2002) || ||<|2><width=15%><height=40> {{{#ffffff ''' 소속 ''' }}} ||<width=15%> {{{#ffffff ''' 선수 ''' }}} ||<width=70%>[[서울 SK 나이츠|진로 농구단]] (1996~1997) [br] [[파일:서울 SK 나이츠의 초창기 로고.png|width=30]] [[서울 SK 나이츠]] (1997~2003) [br] [[파일:부산 KTF 매직윙스 로고.png|width=30]]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 (2003~2005) [br] [[파일:동부 프로미 로고.png|width=30]] '''[[원주 동부 프로미]] (2005~2009)''' || ||<height=40> {{{#ffffff ''' 코치 ''' }}} ||[[파일:external/s20.postimg.org/kt_sonicboom.png|width=30]] [[부산 kt 소닉붐]] (2009~2015)[br][[파일:KGC_Basketball.png|height=30]] [[안양 KGC인삼공사]] (2015~)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주고-경희대 출신의 순혈 3점슈터로, 짧은 팔에 시원찮은 운동능력까지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 커리어 10시즌 내내 게임당 1.58개의 [[3점 슛|3점]]을 꽂으며(통산 성공률 39.6%) 어느팀에서도 키맨 역할을 톡톡히 했던 선수였다. == 선수 시절 == === 아마추어 선수 시절 === 전주고 시절 팀 전력이 약해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으나 이때부터 슈팅능력 하나만큼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90년대 초반 대학 4강권 전력이던 경희대에 진학한 손규완은 탁월한 슈팅능력을 바탕으로 4년간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위로 [[최명도]], [[장창곤]], 김광운, 후배로 [[윤영필]], [[강혁(농구)|강혁]], [[김성철]] 등 쟁쟁한 멤버들이 있었음에도 늘 팀의 주득점원이었다. 4학년이던 [[1996 대학농구연맹전|1996년도 시즌]]에는 연일 득점포를 뿜어대며 경희대의 '''자줏빛 돌풍'''을 이끌었고, 1,2차연맹전에서 연속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이때 우승팀은 [[서장훈]]이 미국에서 돌아온 연세대였다. 그래도 경희대의 2차례 준우승은 [[현주엽]]이 이끌던 고려대를 두번다 이기고 거둔 결과였다.] [[1996-97 농구대잔치]]에서도 4강에 오르며 농구부 창설 이래 최고 성적[* 전국체전 우승 제외]을 거두게 된다. 대학 4년내내 경희대의 주포로 활약했음에도 불구, 하드웨어가 너무 빈약해 수비가 약했고 슛감에 다소 기복이 있었던 데다, 같은 시기 대학무대에 [[우지원]](연세대), [[양희승]](고려대), [[추승균]](한양대) 등 차세대 국가대표 슈터/포워드 들이 너무 많다보니, 그 흔한 대학 선발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했던 비운의 선수였다. === 프로 시절 === [[파일:external/news.kbs.co.kr/8038057.jpg|align=center]] KBL 신생팀이던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가 공들여 스카웃한 선수로 계약금 2억원을 받고 합류했다. 하지만 청주 SK가 93학번 졸업반 중 [[서장훈]]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스카웃을 하지 못한데다[* 서장훈과의 협상에만 너무 올인하다가 대학 최고 포워드 [[추승균]]은 물론 [[박성배(농구)|박성배]](경희대, G), [[이세범]](중앙대,G), 김정인(단국대,G/F) 등 쏠쏠한 93학번 자원들을 눈뜨고 뺏겨버렸다. 1년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동양제과]]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대우증권]]이 고려대-연세대 외 92학번의 쓸만한 선수들을 대거 스카웃했던 것에 비해 너무도 어설픈 대처였다. 이는 팀의 전신인 진로 맥카스가 자금난에 시달린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서장훈의 졸업이 1년 연기되면서, 팀에 제대로 된 국내 멤버라곤 명지대 출신 동기 [[윤제한]] 뿐이었고 팀은 개막전 승리 이후 11연패를 달리는 등 창단 첫 시즌 최하위로 떨어졌다. 손규완은 팀의 토종에이스로서 평균 14점을 넣으며 홀로 고군분투했고 10연패를 당하던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선 3점슛 7개 포함 36점을 꽂는등 맹활약했으나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97-98 시즌 손규완은 상대수비의 집중 마크 속에서도 게임당 2.78개의 3점을 꽂으며 이부문 전체 4위[* [[문경은]](수원 삼성)-[[정인교(농구)|정인교]](원주 나래)-아도니스 조던(광주 나산)가 1, 2, 3위.]에 올랐다. 98-99 시즌 [[서장훈|국보급 센터]]와 [[현주엽|매직 히포]]가 가세하며 단숨에 우승후보가 된 청주 SK에서 손규완은 이들 원투펀치의 외곽 지원사격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서장훈]]-[[현주엽]]의 볼소유권 다툼속에[* 이는 현주엽의 플레이 스타일이 대학 시절에 달라지면서 둘의 롤이 겹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현주엽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규완의 슈팅시도 마저 급감(7.0개 → 3.1개)해렸고 우승후보로 꼽혔던 청주SK는 고작 8위에 그쳤고, 이 바람에 [[안준호|안어벙]] 감독이 짤리고 [[최인선]] 감독이 시즌중 부임하게 된다. 99-00 시즌, 크리스마스 빅딜[* 청주 SK get: [[조상현]] ↔ 광주 골드뱅크 get: [[현주엽]]]로 국대슈터 [[조상현]]이 합류하면서 같은 슈터롤이었던 손규완의 비중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줄어드는 출장시간 속에 소속팀의 창단첫 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보며 쓸쓸히 상무 입대를 선택한다. 상무에서의 2년간 [[현주엽]], [[신기성]], [[황성인]] 등 특급선수들과 함께 뛸대도 손규완의 3점슛은 상무의 주요 공격옵션이었고, [[2000 농구대잔치]] 준우승 및 [[2001-02 농구대잔치]]에서 상무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할때도 결정적 한방을 꽂아넣곤 했다. 하지만 제대후 복귀한 02-03 시즌, [[서장훈]]이 FA로 떠나면서 팀 컬러가 완전히 바뀐 [[서울 SK 나이츠|서울 SK]]에서 시즌 초반엔 [[김영만(농구)|사마귀 슈터]]에 밀렸고, 후반엔 트레이드로 합류한 [[조성원|캥거루슈터]]에 루키 [[이한권]]에게도 밀리며 여전히 식스맨에 머물고 만다. 03-04 시즌에는 [[조성원]]과 쌍포를 이루며 반짝 주전으로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딸리는 하드웨어로 인해 수비 매치업에서 문제를 노출했고 이바람에 최하위를 달리던 서울 SK는 03-04 시즌 중반 수비강화를 위해 손규완을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의 [[황진원]](188cm,G)과 트레이드[* 2:2 트레이드였다. 부산 KTF get: 손규완, 리온 트리밍햄 ↔ 서울 SK get: 황진원, [[아비 스토리]]]해 버린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6938495.1.jpg|align=center]] 부산 KTF 합류 직후 주전슈터로 활약하며 평균 11.4점(3점슛 2.6개)을 올렸으나, 이듬해 FA 계약으로 합류한 [[조동현(농구)|조동현]]에게 밀려 다시 벤치신세가 되고 마는데, 이때도 원인은 역시 수비였다. [[파일:손규완_동부에서 첫 시즌.jpg|width=310&align=center]] [[파일:손규완_동부에서 두번째 시즌.jpg|align=center]] 05-06 시즌을 앞두고 32세의 노장이 된 손규완은, FA로 합류한 [[신기성]]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하게 된다. 신기성의 환영회식 자리에서 다음 시즌 선전을 함께 다짐한 후 이루어진 트레이드라 큰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수비의 팀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로의 이적은 손규완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김주성(농구)|김주성]]-[[자밀 왓킨스]] 트윈타워의 위력에, 백코트의 [[표명일]]-(외인 [[스윙맨]])까지 꽉 짜여진 팀 디펜스 덕분에, 손규완은 오랜만에 수비부담을 덜고 경희대 시절과 같이 그저 순혈 3점슈터로서의 역할만 맡게 되었고, 주전과 벤치를 넘나들며 맹활약하며 노장 투혼을 불사른다.[* 손규완과 비슷한 수혜자로, 같은 시기에 뛰었던 [[강대협]]이 있다. 수비부담이 없었던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에선 2쿼터의 사나이로 불리며 주전급 식스맨으로서 맹활약했지만, [[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시절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수비 허점이 만천하에 드러난데다 3점 성공률까지 추락.. 출장시간이 급감해버렸다.] 주전급으로 뛴 두 시즌 후, [[이광재(농구)|이광재]]에게 주전을 내주고 식스맨으로 돌아선 07-08 시즌엔 마침내 커리어 두 번째 우승트로피까지 들어올린다. 이후 한 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은퇴시즌인 08-09 시즌에 손규완은 12분이 넘는 출장시간에 경기당 1.1개의 3점을 꽂고 '''3점 성공률 48.15%'''를 기록, '''시즌 3점슛률 1위'''에 오르며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 지도자 생활 === [[파일:external/news.jumpball.co.kr/news_20170225183131_DP.jpg|align=center]] 08-09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 [[전창진]] 감독이 [[부산 kt 소닉붐]] 감독으로 옮길 때 전창진 사단의 일원으로 부산 kt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전창진]] 감독, [[김승기]] 코치와 함께 [[안양 KGC인삼공사]]로 옮겼고, 전창진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김승기]]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서 활동중이다. 전문슈터 출신답게 선수들의 슈팅 메커니즘 지도에 열성이라고 하는데, [[양희종|아무리 해도]] [[문성곤|안되는 선수]]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16-17 시즌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 레고손목, 양무록으로 불리던 [[양희종]]이 [[3점 슛|3점]] 8개를 꽂으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손규완 코치의 슈팅 지도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기타 == * 경희대 1학년 1학기 때 [[최부영]]식 스파르타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소풍[* [[농구]] 등 단체 프로스포츠에서 팀을 이탈하는 것.]을 간 적이 있다. [[부산광역시|부산]]으로 도망갔다가 돈이 떨어져 김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안습...~~ * 대학 시절 매일 팀 훈련을 마치고 1500개씩의 3점슛을 던지며 슛감을 키웠다고 한다. * 05-06 시즌 [[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의 외국인 선수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201cm, C)와 경기 중 주먹다짐을 벌여 둘 다 1게임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때 알렉산더가 긴 팔로 손규완이 얼굴을 잡았는데, 손규완의 팔이 짧아 주먹이 알렉산더에 닿지 않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603170507_00.jpg]]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 [[서울 SK 나이츠/선수단]] * [[부산 kt 소닉붐/선수단]] * [[원주 DB 프로미/선수단]]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74년 출생]][[분류:1996년 데뷔]][[분류:2009년 은퇴]][[분류:슈팅 가드]][[분류:스몰 포워드]][[분류:서울 SK 나이츠/은퇴, 이적]][[분류:부산 kt 소닉붐/은퇴, 이적]][[분류:원주 DB 프로미/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