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 [include(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C23352> {{{#gold '''조선 숙종의 후궁'''}}}[br]{{{#gold {{{+1 '''소의 유씨 | 昭儀 劉氏'''}}}}}} || ||<width=50> '''{{{#gold 출생}}}''' ||<colbgcolor=#fff,#1f2023>미상 || || '''{{{#gold 사망}}}''' ||[[1707년]]^^(숙종 33년)^^ [[4월 8일]] || || '''[[본관|{{{#gold 본관}}}]]''' ||강릉(江陵) || || '''{{{#gold 부모}}}''' ||알 수 없음 || || '''{{{#gold 부군}}}''' ||[[숙종(조선)|숙종]] || || '''{{{#gold 자녀}}}''' ||자녀 없음 || || '''{{{#gold 묘소}}}''' ||[include(틀:지도, 장소=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너비=100%)] ----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후궁묘역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숙종(조선)|숙종]]의 후궁. 본래 [[궁녀]]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부모와 집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생애 == 1698년(숙종 24) 종4품 숙원이 되었다. 당시 숙종은 새로 후궁으로 삼은 유씨를 위해서 큰 돈을 썼는데, 은 4천 냥, 콩 1백 석에 따로 저택을 살 값으로 은 2천 냥을 들였다. 이에 사람들이 나라의 저축이 고갈되고, 민생이 곤궁한데 후궁에게 과하게 베푼다고 근심하였다.[* 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8월 2일 계묘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408002_002|#]] ] 그 이후에도 그녀는 안 좋은 일로 입에 오르내렸다. 1699년(숙종 25)에는 [[숙안공주]] 궁방과 유 소의의 궁방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마구잡이로 걷어 들여 문제가 되자 대신들이 이를 비판하였고, 1707년(숙종 33)에는 [[삼각산]] 북쪽 산기슭을 훼손하는 바람에 [[사헌부]]로부터 비판 받았다. 그러나 숙종이 매번 비호하면서 논란을 덮어주었다. 1699년(숙종 25) [[단종(조선)|단종]] 복위를 기념하여 종2품 숙의가 되고, 1702년(숙종 28) 정2품 소의가 되었다.[* 이때 다른 후궁들과 함께 품계가 올랐는데, 귀인 김씨가 [[영빈 김씨|영빈]], 귀인 박씨가 [[명빈 박씨|명빈]]이 되었다. ] 그녀는 자식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궁 밖에 신주를 두고 [[노비]]의 봉공을 받았다. 훗날 [[정조(조선)|정조]]가 즉위한 다음 왕실의 근검절약을 위해 일체 국고로 이속되었고, 신주는 [[수진궁]]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