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ъезд КПСС Congress of the CPSU 소련 공산당대회 ||<-6><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dcdcdc> [[소비에트 연방]]의 3대 국가기관 || || '''소련 공산당대회''' || [[소련 최고회의]] || [[소련 장관회의]]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5px-RIAN_archive_851899_Pioneers_and_schoolchildren_greet_delegates_and_guests_of_XVII_convention_of_trade_unions_of_the_USSR.jpg]] 공산당대회가 개회되던 [[크렘린]] 국가궁전(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 내부. [[1961년]]의 22차 당대회부터 이 곳에서 개회되었다. 이 건물은 [[http://photos.wikimapia.org/p/00/00/01/33/16_big.jpg|매우 현대적인 건축 양식으로 크렘린의 다른 고전적 궁전들과는 이질감이 크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넓고 잘 지은 것은 사실이라서 지금도 대규모 공연장, 혹 극장이나 [[러시아 연방]]의 [[전당대회]] 장소로도 계속 사용된다.][*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 근처에 있는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Hall_of_the_People|중국인민대회당]]과 비슷하다.] [목차] == 개요 == 간단하게는 [[소련 공산당]]의 [[전당대회]]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최고기관이자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의 진정한 '''권력의 핵심'''이다. [[소련 최고회의]]나 최고법원, [[소련 장관회의|장관회의]]와는 달리 [[헌법기관]]은 아니지만 '''소련 공산당 규약'''에서 공산당의 최고 기관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당의 노선(국가운영방침)을 정하고''', '''중앙위원회 의원을 선출'''한다는 점 때문에 [[헌법]]상의 국가권력의 최고기관 소련 최고회의, 공산당 규약상 당권의 최고기관 소련 공산당대회는 '''소련의 2부'''에 해당한다. 실제로도 [[아웃사이더|공산당대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물]]이 최고회의 의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련은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소련 인민대표대회'가 창설되기 이전까지 '''당권이 바로 국권이자 정권'''이었고, 공산당원이 아니라면 국가권력에 다가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헌법]]에 명기된 [[헌법기관]]보다는 당내 권력이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며 공산당대회의 지도자는 초기에는 행정수반인 수상 레닌이 명목상으로[* 실제로 규정된 당수직은 없었다.], 후에 가서는 '''[[서기장]]'''이 맡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공산당 내의 권력체계 때문인데, [[소련]]은 [[크고 아름다운]] 나라라서 공산당원도 많아서 그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통제할 지도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공산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선출''' → '''당중앙에서 정치국원 선출''' → '''정치국원 중에서 서기국 구성 및 서기장 선출'''의 [[트리]]를 타서 최종적으로 [[민주집중제|한 정점으로 몰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시대 이후의 일로, [[블라디미르 레닌|레닌]] 시절에는 서기장이 당수가 아니었다. 이는 현재 [[한국]] [[정당]]에서의 직책도 마찬가지인데, 당수는 '''총재'''(總裁)이고 서기장(Генеральный секретарь)[* 엄밀히는 '''총서기'''가 맞다. [[러시아어]]에서 서기장이라는 단어는 없다. [[서기장]] 항목 참고.]은 단어 그대로 '''사무총장'''에 해당한다. 그러나 의원의 공천을 관리하는 등 사무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총장직은 한국의 정당 내에서도 매우 주요직책으로 꼽히는 자리인데,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이 혼란기에 이 자리에서 권력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탈린 시대 이후에는 '''서기장이 곧 당수'''이다. 엄밀히 따지면 서기장이라는 직책은 [[한국]] 기준으로 당 총재 + [[원내대표]] + 대표최고위원 + 사무총장 + 공천관리위원장 정도 되는 위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 이후에는 '''국회의장이 추가'''된다. ~~간단히, '''소련의 [[끝판왕]]'''이다.~~[* [[서기장]] 항목에서도 설명되어 있으나, 사실 [[러시아어]] 'Генеральный секретарь'를 서기장으로 번역하는 것은 [[국어]]의 어휘론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오역]]이라 볼 수 있다. '''사무총장'''이 가장 확실한 번역이지만 [[이사장]], [[총재]]로 번역되어도 틀린 것이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현대중국]]의 경우, 소련과 이런 시스템이 마찬가지라서 [[소련 최고회의|최고회의]]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의 [[중화인민공화국 주현|국가주석]]'보다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총서기]]'가 실제적 권력이다. 이는 '''[[조선로동당]]이 곧 국가'''인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은 시스템이 [[소련]]과는 약간 틀어져서 실제로는 각각 [[군사력]]을 좌지우지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국방위원장이 실질적 최고지도자로 보아도 상관없다.] 보통 소련의 경우에는 1977년 헌법개정 이후에는 국가원수직(최고회의 의장), 당수직(서기장)을 겸임하였다. 사실 [[소련 최고회의]] 의원들도 다 공산당원이었므로 이 쪽이 정통성 면으로 보나 권력서열로 보나 오히려 무난하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는 [[원수(계급)|원수]]계급으로 [[소련군]] 총사령관까지 3관왕!~~ 실제로도 소련이 건재할 당시 [[구미]]에서는 [[소련 최고회의|최고회의]]의 결과보단 오히려 소련 공산당대회의 결과에 더 집중했다. 정식명칭은 소련 공산당대회(Съезд КПСС)이지만, 이 명칭은 1952년 '소련 공산당(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으로 당명이 바뀐 이후의 명칭이다. [[소련 공산당]]은 시기별로 많은 당명 개칭을 겪었고, 그에 따라서 당대회의 명칭도 계속 변화했으나 그 형식은 전부 동일하다. 당대회는 1898년 3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1차 당대회부터 1990년 6월 2일 부터 13일까지 열린 28회 당대회까지 총 28회 개회되었다. 초기 [[러시아 제국]] 시절에 [[공산당]] 활동은 불법이었고,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망명중이었기 때문에 [[브뤼셀]], [[런던]], [[스톡홀름]] 같은 [[서유럽]] 도시를 오가며 개회되었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2월 혁명]]이 발발한 이후에는 러시아로 돌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페트로그라드]]에서, [[러시아 혁명|10월 혁명]]이 완수된 1918년부터 최후까지는 [[모스크바]] [[크레믈린]]에서 개회되었다. 초기에 [[블라디미르 레닌|레닌]] 시절 당대회가 거의 매년 소집되었는데 그만큼 '''정세가 불안정했다는''' 반증이다. 또한 [[1907년]] 5차 당대회부터 [[1917년]] 6차 당대회까지는 10년이라는 텀이 있는데, 이 때는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분열, [[제1차 세계대전]], 국제공산당 (인터내셔널), 유럽의 공산주의자 탄압 등으로 소집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며 레닌 자신도 이 당시에는 '''망명 다니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1917년|2월 혁명 이후]]에는 매년 정상적으로 개회되었다. 당대회는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회 빈도는 점차 줄어들다가, 스탈린이 절대권력을 차지한 이후에는 '''아예 열리지 않게''' 되었다. ~~[[왼손은 거들 뿐|당원들의 의견은 거들 뿐]]~~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이유도 있으나 본질적인 이유는 [[1937년]] '''[[대숙청]]을 감행한 후에는 공산당대회 없이도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가 없었다. 이 영향으로 [[1939년]] 18차 당대회 이후부터 '''17년 동안''' 당대회가 열리지 않다가 [[1952년]]이 되어서야 19차 당대회가 개회되었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 시기 초반에도 혼란 속에 약간 비규칙적으로 개회되던 당대회는 [[1961년]] 이후 소련의 정세가 안정권에 든 이후에는 1991년이 아니라 1990년에 개회된 마지막 28차 당대회만 빼고 정상적으로 5년에 한번 개회되었다. 당 중앙위원회 의원의 임기도 5년이다. == 구조 == 소련 공산당대회는 [[소련 최고회의]]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와 마찬가지로, 평시 상무를 전담할 실제적 권력을 지닌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КПСС)' 위원을 선출하며, 이 중앙위원회에서 대부분의 당조직이 관리된다. 실제로 권력은 바로 이 '''당 중앙위원회에 집중'''되어 있으며, 보통 [[국어]]로는 '''당중앙'''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Политбюро) ===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Секретариат) === == 역대 공산당대회 == == 역대 공산당 서기장 == [[서기장]] 문서 참조. == 관련 문서 == * [[공산당]] [[분류:소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