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터키의 세계유산]][[분류:모스크]][[분류:오스만 제국]] [include(틀:터키의 세계유산)] [[파일:7536663476_fe535075f6_b.jpg]] 실외 전경 ||<-3><table align=right><bgcolor=#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bgcolor=#fff>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3> 이름 || 한국어 || 셀리미예 사원 복합 유적 || || 영어 || Selimiye Mosque[br]and its Social Complex || || 프랑스어 || Mosquée Selimiye[br]et son ensemble social || |||| 국가·위치 || [[터키]] [[에디르네]] 도 || ||<-3> [include(틀:지도,장소=Selimiye Camii,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11년]] || |||| 등재기준 ||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1366|1366]] || [[파일:attachment/Selimiye_Mosque-inside.jpg|width=550]] 실내 전경 >'''셰흐자데는 내가 견습생 시절에 만든 작품이고,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쉴레이마니예]]는 내 최초의 작품이며, 셀리미예는 내 걸작이다''' >- 미마르 시난(Hoca Mimar Sinan)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 {{{+1 Selimiye Mosque}}} [목차] [clearfix] == 개요 == [[터키]] [[에디르네]]에 있는 모스크. 1574년에 지어졌다.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2011년에 터키의 10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큰 [[돔]]이 특징적이다. == 특징 == [[미마르 시난]][* '미마르(Mimar)' 는 이름이나 성이 아니라 건축가라는 별명이며, 시난(Sinan)만 이름이다. 오스만 시대에는 [[고관대작]]이라고 해도 본래 성이 없는 사람이 다수였으며, 미마르 시난처럼 특기가 별명이 되거나 출신 지역, 경력 등이 별명이 되어 성처럼 쓰였다.]의 작품. 쉴레이만 대제의 명으로 시난이 세웠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이후 [[셀림 2세]]의 명으로 세워진 것으로, 6세기에 지어진 [[동로마]] 최고의 건축물이었던 [[하기아 소피아]]와 맞먹으려 했던 이슬람 건축의 또 다른 야심작이다. [[하기아 소피아]]와 크기나 외형적으로 다소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유사한 것도 특징이며, 특히 돔의 직경이 거의 일치한다.(돔 직경 31.22m. 하기아 소피아의 돔이 찌그러져 있는 탓에 어떤 방향(31.87)에서는 미세하게 작으며, 어떤 방향(30.87)에서는 더 크다.) 다만 건축물의 높이 자체는 다소 작다.(43m)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차이가 좀 있으며 하기아 소피아에 비해 안정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하기아 소피아보다 명성이나 건축학적 중요성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년 [[콩라인]] 건축물 중 하나. 돔 직경도 미세하게 작은 편이다. 그러나 구조적, 외형적인 면에서는 보다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둥근 돔을 네모난 평면의 외벽과 연결시키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기아 소피아는 둥근 돔을 네 개의 기둥위에 세워진 네개의 아치로 받치고 아치의 사이를 매꾸는 펜던티브(Pendentive)를 이용하였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각종 버팀목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셀리미예는 둥근 돔을 여덟개의 기둥과 아치로 받치고 그것을 정사각형 외벽으로 부드럽게 연결시켰다. 이 덕분에 셸리미예는 반원형의 돔에서 네모난 외벽으로 외형이 부드럽게 연결되며, 구조적으로 안정되어있고, 훨씬 많은 창을 통해 밝은 실내를 만들 수 있었다. 타 모스크에 비교하더라도 건물의 규모에 비하면 돔의 비율이 큰 편인데, 이러한 것은 [[미마르 시난]]이 의도한 것이다. 그는 다른 모스크들이 적당한 돔을 만들고 남는 공간에 네 면의 작은 반구형 돔과 통로로 공간을 분산시키 것을 거부하고 대형의 돔으로 압도적인 공간감을 보여주는 모스크를 기획한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국 계획에서 보여지듯 서구 건축가들이 '중앙 집중형 건축물'에 매료된 것과 유사해 흥미롭다. 셰흐자데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쉴레이마니예]] - 셀리미예로 이어지는 시난의 건축물들은 고전 오스만 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건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시난의 시대 이후에 세워진 [[이스탄불]]의 유명 모스크인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블루 모스크)와 비교하면 셀리미예는 면적은 작지만 건물의 높이는 동일하며 돔의 직경은 더 크다. 또한 구조 역시 시난의 초기작인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인근에 위치한 셰흐자데 모스크의 구조를 응용해서 더 크게 지은 모스크다. 문화사적 의미에서 셀리미예 모스크는 저 먼 중앙아시아의 유목집단들로 출발하여 10~12세기에 걸쳐 아나톨리아로 대거 이주하며 [[동로마 제국]]의 문화를 흡수해나간 [[오우즈]] 튀르크계 국가들의 역량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건축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역사|오스만]]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기 한참 전부터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고 박살낸 것과 별개로 그 문화, 제도, 경제적인 요소들은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차용했다. 건축 방면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1399년에 [[바예지드 1세]]의 명으로 지어진 [[부르사]]의 대모스크(Ulu Cami)[* 1396년의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프랑스와 헝가리의 십자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1396년에 착공하여 1399년에 완공했다.]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파티흐 모스크인데, 이들은 작품성에서는 다소 뒤떨어질지 몰라도 동로마 특유의 돔 양식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절만 하더라도 기술적, 경제적 한계로 인하여 [[하기아 소피아]]를 축소하여 모방한 느낌이 짙었지만, 점차 동로마 제국의 문화적 내력을 통체로 집어 먹고. 지중해권 전반의 르네상스와 더불어 문화적 기량과 이를 뒷받침할 국력이 끝물에 차면서 마침내 한층 더 발달된 구조적 안정성을 이룩하여 동로마 제국의 건축 기술마저 능가하는 수준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미마르 시난의 작품들이다[* 마침 미마르 시난은 미켈란젤로에 비견되는 건축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즉 미미르 시난의 업적은 그가 그리스계라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가 활약한 시기보다 훨씬 이전인 14~15세기부터 오스만이 동로마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온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 매체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는 [[오스만 제국|투르크]]의 [[불가사의]]로 나온다. 역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대우라 볼 수 있다. == 관련 문서 == * [[오스만 제국]] * [[모스크]] *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 [[하기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