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성주관광10선)] [[파일:D9424BA79B734FA2AB9467280A3BB178.jpg]]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444호}}}''' || ||<bgcolor=#315288> {{{+1 {{{#fff '''세종대왕자 태실'''}}}}}} {{{-1 {{{#fff 世宗大王子 胎室}}}}}} {{{-1 {{{#fff }}}}}}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 8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 || || '''{{{#fff 면적}}}''' ||<bgcolor=#fff> 5,950㎡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2003년 3월 6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조선시대]]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세종대왕 왕자 태실, 너비=360)]}}}}}}}}} ||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의 태봉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태실이다.[*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s-2.4]]를 넣어 두는 곳을 말한다.] [[세종(조선)|세종]]의 왕자들 중에서 [[문종(조선)|문종]]을 제외한 18명의 왕자와 원손 [[단종(조선)|단종]]의 태실 등 19기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444호. == 역사 == 1438년(세종 20년)에서 1442년(세종 24년)에 조성되었다. 19기의 태실 중 5기는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명의 왕자들[* [[안평대군]],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의 태실이며 수양대군이 즉위하면서 다섯 명의 태실을 파괴하라 명했기 때문에 훼손되어 있다. 즉위 후 [[세조(조선)|세조]] 태실에는 별도의 가봉비를 태실비 앞에 세웠다. == 기타 == 매년 5월 중순 성주생명문화축제가 열릴 때 쯤 [[성주군]]에서는 세종대왕자 태실을 테마로 [[경복궁]]에서 태봉안 의식 재현과 [[광화문광장]]을 돌고 성주로 오는 태봉안 봉송 행렬을 재현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왕족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조선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데다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한국의 생명 존중 문화를 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러한 점으로 [[성주군]]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성주군|성주]]는 세종대왕자 태실 외에도 용암면에 [[태종(조선)|태종]]태실과 가천면에 [[단종(조선)|단종]]태실[* 본래 세종대왕자 태실에 같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문종(조선)|문종]] 대에 [[가야산]] 뒤쪽의 법림산으로 옮겼다.]이 있어 태실의 고장이라 평가받을 정도의 명당이었다. [[분류:성주군]][[분류:대한민국의 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