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right><-5> [[파일:external/tv.pstatic.net/201112201824401911.jpg|width=50%]] || || 이름 ||성혜림(成蕙琳)|| ||<|2> 출생 ||[[1937년]] [[1월 24일]]|| ||<(>경기도 경성부 계동정[br](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본적은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로, 인근의 모산리· 창산리·효정리와 함께 [[창녕 성씨]] 집성촌이다.[[https://news.joins.com/article/3222202|#]]]|| ||<|2> 사망 ||[[2002년]] [[5월 18일]] (65세)|| ||<(>[[러시아]] [[모스크바]]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0002460|#]]]|| || 본관 ||[[창녕 성씨]]|| || 가족 ||[[아버지]] 성유경, [[어머니]] 김원주, [[오빠]] 성일기, [[언니]] [[성혜랑]] || || 남편 ||[[김정일]], 이평 || || 자녀 ||[[김정남(북한)|김정남]], 이옥돌 || || 손자 ||[[김한솔]]|| || 조카 ||[[이한영]], 이남옥||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의 [[배우]] 출신이며, [[김정일]]의 [[아내]]들 중 하나. 김정일과는 [[불륜]]을 통해 가까워졌다. ||[[파일:645435345.jpg]]|| || 젊은시절의 성혜림. || == 생애 == 대대로 [[갑부]]였던 아버지 성유경(成有慶)과 어머니 김원주의 1남 2녀 중 막내딸로 경기도 경성부 계동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에서 태어났다. 창녕 성씨 홍양공파 26세손으로 22세조인 아석공 할아버지 때 가세가 흥하여 '아석공파'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도 창녕군 일대는 창녕 성씨 집성촌이다. 아버지인 성유경은 1906년 [[차남]]으로 태어나 대가 끊긴 종가에 3대 독자(아석공의 손자)로 입양되어 만석꾼의 종가의 대를 이어 매우 부유하였다. [[보성고등학교(서울)|보성고보]] 16회 졸업생으로 좌익 활동을 하며 해방 후 남로당 중앙위원으로 있다가 46년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후 재정부장을 지냈다. 어머니는 1907년 진남포에서 태어나 서문여고(평양여고)를 졸업하고 1920년대 민족주의 잡지인 <개벽>의 기자까지 했던 김원주였다. 역시 좌익활동을 하여 해방 후 '남조선 민주 여성동맹' 문화부장을 지냈다. 이들도 말하자면 불륜 관계인데 만석꾼 집안으로 조혼했던 성유경이 신여성이였던 김원주를 만났다. 도저히 안 되는 사이였지만 두사람이 일본 유학 중이던 1933년 장남인 '성일기'를 출산하였다. 대가 워낙 귀한 종가집이라 두 사람의 결합이 인정되었다. 나중에 아버지인 성유경은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 제1기 졸업생이 되었고, 학원 내에 강사로도 뛴 것 같다. 이후 아들 성일기를 불러들여 강동정치학원에 수학 시켰는데 이것을 다룬 작품이 정원석의 장편 소설 <북위38도선>이다. 이후 성일기는 그 유명한 빨치산 [[남도부]] 부대의 일원이 되어 남하하였다가 토벌대에 쫓겨서 함께 도심 침투를 시도한다. 이후 성일기가 53년 12월 31일 고향인 창녕군에서 체포된 후 회유 끝에 대장인 남도부가 대구의 친척집에 있다고 신고하여 그가 체포되게 하고, 그 공로로 재판없이 석방된다. 일설에는 이과정에서 유일하게 고향인 창녕 집에 남은 그의 누이인 성혜분이 성일기에게 자수를 권유하였다고 한다. 결국 성혜림의 부모는 북한에서 몽땅 숙청된 [[남로당]]원이자, 공산당이 가장 싫어하는 대지주이며, 오빠는 배신한 후 괴뢰국가 남한에서 목숨을 구걸하여 살고 있는 반동분자이다. 오빠인 성일기는 알아주는 수재였으나 좌익 사상 때문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로 성일기가 재학 중이던 [[일제강점기]] 학제에서는 대부분이 5년제 공립중학교였다. [[예과생]] 참조.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는 해방 후 미국식 학제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이들 구제 중학이 분리된 것들이다.] 면접에서 떨어져서 [[보성중학교]]에 입학했고, 언니 [[성혜랑]]은 진명여자중학교[* 현재의 [[진명여자고등학교]]로, 진명여자중학교는 1987년 폐교.]에 다니다니가 동맹휴학을 선동하여 퇴학당하고 이화여자중학교[* 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중학교는 1971년 폐교되었고, 1992년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신설됨.]에 편입하는 등, 부모부터 형제들까지 죄다 공부를 잘했다. 성혜림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를 거쳐서 [[풍문고등학교|풍문여자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녀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성유경은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인 50년 9월에 두 딸 성혜랑과 성혜림을 데리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이후 성혜림은 북한에서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에는 1960년에 만들어진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대표작으로 <백일홍>, <온정령> 등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혜림의 부모는 [[공산주의]]가 증오해 마지 않는 대지주이다. 게다가 그들의 배경인 남로당은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3일후에 [[미국]]의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지도부 전원 사형당하였다. 이때 성유경도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전전하다가 60년에 추방되어 소몰이꾼으로 전락했다. 어머니인 김원주 역시 당 기관지 로동신문 부장에서 평양신문으로 좌천되고, 얼마 뒤에 그 자리마저 잃었다. 성혜림에게 [[김정일]]은 첫 결혼이 아니였다. 소설 <땅>으로 알려진 [[월북]]작가인 [[이기영(소설가)|리기영]]의 아들 리평과 결혼했다. 딸 리옥돌을 낳은 애엄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부녀]]인 성혜림은 시동생인 리종륜의 죽마고우인 김정일 집에서 자주 드나들다가 김정일과 [[불륜]]관계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성혜림은 공훈배우로 입당하게 되었고, 이후 아예 김정일과 살림까지 차렸다.(언제 리평과 이혼했는지는 불명) 그리고 1971년 5월 10일에 [[김정남(북한)|김정남]]을 낳았다. 친어머니 [[김정숙(북한)|김정숙]]을 일찍 여의고 편부 슬하에서 자란 김정일은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고, 김정일보다 5살 연상인 성혜림은 그런 김정일의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성혜림 역시 리평과의 결혼이 애정이 없는 중매결혼이었던 반면, 김정일과는 예술이나 취미생활에서 여러모로 죽이 잘 맞았기에 그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게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라 [[불륜]]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행여 이 사실이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때문에 김정일과 성혜림은 김정남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결국 성혜림은 리평과 이혼하고 김정일과 재혼했다. 아버지 성유경은 한때 [[헝가리]] 통조림 공장 사장을 지나다가 공장 위원장과 다투고 추방되어 성혜림의 집에서 얹혀 살았다. 어머니 김원주도 김정일의 중성동 관저에 들어가서 94년 88세로 사망할 때 까지 그곳에 살았다. 성혜랑은 김정남의 가정교사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중성동 관저에서 함께 살았다. 이 상황에서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북한)|김경희]]가 성혜림에게 참견하여 폭탄선언을 해버린다. > 언니는 우리 오빠보다 나이도 많고 이미 한번 결혼해서 애까지 딸린 여자니까, 게다가 [[불륜]]으로 결혼했으니까 당장 꺼지시오! 물론 정남이는 내가 정성껏 키워주겠고, 언니의 노후는 잘 보살펴 주겠소. 뭐 선택은 알아서 하시오. 단, 내 제의를 거절하면 '''[[김일성|우리 아버지]]한테 [[숙청|일러바칠 거요.]]''' [[시누이]]인 김경희로부터 이런 엄청난 소리를 들은 성혜림은 아들을 빼앗기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경성 질환으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여기에 김정일의 애정은 이미 [[고용희]]에게 넘어간 상태라 성혜림에 대한 관심도 식어 버렸다. 결국 [[모스크바]]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는 사이 김정일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이후였다. 김정일과 사랑을 나눈 지 6년 만에 그 사랑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불륜은 몹쓸 짓이다~~ 그 이후 성혜림은 모스크바와 [[스위스]]를 전전하며 유리방랑을 하다가 2002년 5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향년 65세. == 사후 == 성혜림은 죽은 이후 모스크바의 한 공동묘지에서 이름없는 무덤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조카인 [[이한영]]은 82년 남한으로 망명하였고, 13년 후 이한영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과 극적으로 연락이 닿아 자신이 살고 있는 남한으로 망명하게 한다. 이에 성혜랑은 96년 1월5일 살고있던 모스크바를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한영은 엄마와 만나지 못하고 97년 2월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 당시 이한영이 남한에서 하던 건설사업이 어려워져, 살던 저택과 세간살이를 팔고 대학선배네 집에 더부살이 했다고 한다. 서현동 현대아파트가 바로 그 곳.] 현관 앞에서, 북한 간첩이라고 추정되는 자가 쏜 총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는 남한에 출판한 로열패밀리 일가의 폭로내용에 대한 보복이 연유가 아니라, 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에게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인 측면이 더 높았다.][* 이한영을 살해한 간첩은 육로를 통해 [[평양]]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즉, 잡는데 실패했다.] 이에 성혜랑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남한으로 오지 않고 어디선가 숨어 살고 있다. 오빠인 성일기는 남한에서 석방 후 고향 창녕의 부동산을 처분해서 단국대 영문과와 성균관대 사학과를 다니는 등 평범한 생활을 살았다. 가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성혜림 등 일가의 이야기를 밝히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대외 활동도 없다. 1995년엔 모스크바를 직접 방문해서 성혜랑과 만난 적도 있다고.[[https://news.joins.com/article/3221785|#]] 이후 남한에 잔류한 성씨 문중은 '''"[[김정일]] 마누라가 우리 집안에서 나왔다는 것이 알려지면 끝장이다!"'''라고 오랫동안 [[금지어|성혜림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현재도 [[경상남도]] [[창녕군]]에 가면 성혜림의 생가가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성씨고가'로 불린다고 한다. 그 집이 생가인 사람이 성혜림 한명도 아니고.[[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0942&docId=1336651&categoryId=33080|창녕 석리 성씨고가]] [[http://blog.daum.net/mylovemay/15534654|#]] [[분류:창녕군 출신 인물]][[분류:창녕 성씨]][[분류:김일성 가문]][[분류:주체사상가]][[분류:1937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