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성충(백제).jpg]] || 이름 || 성충(成忠), 정충(淨忠), 선중(善仲)[* [[일본]] 등씨가전의 기록.] || || 성씨 || 미상[*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백제 왕족과 같은 부여씨로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사료와 교차되지 않는 부분이라 불명. 다만 좌평에 오른 점을 볼 때, 왕족 혹은 대성팔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 생년 || 미상 || || 몰년 || 656년 || || 관등 || 좌평(佐平) || || 국적 || [[백제]] || [목차] == 개요 == [[백제]]의 관료이자 임종 직전까지 오로지 백제만을 생각했던 [[충신]]. 정충(淨忠)이라고도 하며 [[일본]] 등씨가전에서는 선중(善仲)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 생애 == 기록에는 백제의 당시 최고 관직이었던 좌평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656년 봄 3월 [[의자왕]]이 정사는 멀리한 채 사치 및 향락에 빠지자 적극적으로 말렸으며 이에 의자왕이 분노해 끝내 투옥되면서 조정에서 의자왕에게 충언을 하는 자가 사라졌다. 28일 동안 [[단식]]했고 끝내 옥중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피]]로 의자왕에게 [[혈서|마지막 간언을 지어 올리게 된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말씀 아뢰고 죽겠습니다. 신이 항상 형세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반드시 전쟁은 일어날 것입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형을 잘 살펴 선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병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이조차 듣지 않았고 충신 [[흥수]]도 옥중에서 비슷한 간언을 했지만 이 또한 의자왕이 듣지 않아[* 완전히 무시했다기보다는 투옥되어 나라에 앙심을 품은 자의 의견이라 믿을 수 없다는 다른 대신들의 상소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게 늦어져서 저렇게 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실제 [[사료]]에서 흥수가 간언을 하자 무시하기는커녕 성충과 똑같은 얘기 아니냐면서 빨리 저대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의자왕이 다급해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자기 나라에서 손꼽히는 [[브레인]]이자 충신 2명이 제시한 작전을 결국 못 써먹었다는 거다.] 결국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험한 지형에서 방어하는 대신 벌판에서 막으려다 끝내 패배했고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탄식했다. 당시 일본의 [[역사서]] 등씨가전(藤氏家傳)에서 등장한 평가를 보자면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 [[당나라]]에는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라는 언급이 있다. [[계백]] 등 유명한 다른 장수를 넘어 성충이 백제 최고의 장수로 기억되었다는 것. 다만 장수로서의 활약은 별로 보여주지 못한 위징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장수로서가 아닌 [[정치가]]로서 유명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비교적 묻혀서 그렇지 당대 [[네임드]]와 어깨를 견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기타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성충은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夫餘氏)로 [[윤충]]이 그의 동생이라고 한다. 연개소문에게 편지를 보내 설득시켜 [[태종 무열왕|김춘추]]를 난처하게 하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임자(백제)|임자]]의 참소를 받아 의자왕에게 박대당해 뜻을 펴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선상고사에는 이 사건을 어느 서적에서 인용했는지 자세히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 팩트다. 다만 신채호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사료들(그 시절 범람하던 [[가짜]] 사료 내지는 [[검증]] 안된 사료)을 보고 별 비판없이 출전도 제대로 안달고 인용한 것이 몇몇 곳에서 보이고 있어 그런 사료들에서 인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본적으로 신채호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각각 사대적이고 부정확하다며 불신하는 자세를 보인 인물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조선]] 말 [[청구영언]]에서 성충의 [[시조]] 2수가 나오지만 후대의 위작이라는 견해가 많다. [[김동인]]은 성충에 대한 단편 [[소설]]인 좌평 성충을 저술했으며 현대에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소산]]에 있는 사당인 [[삼충사]]에서 흥수, 계백 등과 함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모셔지고 있다. 그가 막아야한다고 충언하였던 [[기벌포 전투|기벌포]]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쳤다. 그의 작전이 맞았던 셈. == 미디어 == 백제 최후에 활약한 신하이자 마지막 충신다운 모습을 보이고 사망했기에 당대를 그린 작품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성충이 미디어에 최초로 등장한 때는 90년대 중반, [[KBS]] 사극인 [[삼국기]]에서였다. [[김갑수]]가 지금보다 유명해지기 전,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도 당대 귀족답게 칼을 잘 쓸줄 알면서도 백제의 지략가 역할을 잘 표현했고, 연개소문과 직접 만나 여제동맹을 성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김유신이 준비한 미인계와 이간책에 당하며 감옥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으로 묘사된다. 극 후반에 성충이 투옥된 것을 확인하고 군사를 몰고 오려는 [[계백]]([[유동근]])을 말리는 충신의 모습을 보였으며, 그가 옥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의자왕([[길용우]])이 무척 슬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의자왕 역의 [[길용우]]와 성충 역의 [[김갑수]]는 현재 같은 [[후너스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사극 [[대왕의 꿈]]에서도 성충이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회담에서 등장했지만 이 사료에서 보여준 조목조목 단점을 지적해 연개소문이 신라와 결렬시키는 것은 안 나오고 먼저와서 동맹 이야기를 선수를 했지만 말빨이 뛰어난 김춘추에게 정면승부에선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밝혀진 사실과도 많은 괴리가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최수종|상대]]인지라 필연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앞선 드라마 삼국기와는 다른 모습. 드라마 [[계백(드라마)|계백]]에서는 [[전노민]]이 역할을 맡았으며, 극중 비중도 꽤 되는 편이다. 가잠성의 신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있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사택가문과 맞서는 의자왕 친위 그룹의 역할을 감당했으며, 주변 인물들간의 충돌을 잘 조율하는 진중한 성품으로 등장한다. [[은고부인|은고]]의 세작 혐의를 조사하던 중, 그녀가 반역을 도모했다는 것을 밝혀냈으나, 이를 의자왕에게 고하기 전에 살해당하며 퇴장한다. 첫 등장부터 퇴장까지 [[MBC]] 사극답게 실제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멀다. --여담이지만, 대왕의 꿈에서도 계백에서도 의자왕의 잔에 머리를 맞는다. [[지못미]].-- 대체역사물 백제의 이름을 잇다에서는 역시나 무시당하고 사망하는 건 똑같으나 주인공이 신라 당과의 1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2차 전쟁에서 그의 계책을 채택, 당 수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면서 죽어서나마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언급을 보면 몇년 동안의 수위나 장마로 인한 변수까지 싹 다 고려한 철두철미한 방어 계획이었다. 권력 불안이라는 이유로 채택 안한 의자왕과 당시 왕당파들이 한심해 보일 지경.]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성충, version=46, paragraph=2)]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656년 사망]][[분류:백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