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94153E> {{{#FFFFFF '''한성부'''}}} || ||<bgcolor=#fff><:> [[서울 한양도성|한양도성]] ||<bgcolor=#fff><:> [[사대문안]] ||<bgcolor=#fff><:> '''성저십리''' || 城底十里 ||<table width=100%><width=33%> [[파일:attachment/성저십리/조선전기추정치-1.jpg|width=100%]] ||<width=33%> [[파일:attachment/성저십리/조선말기한성부-2.jpg|width=100%]] || [[파일:attachment/성저십리/seoul1910_revised.jpg|width=100%]] || || 조선전기 당시의 경계 추정치. ("성저오리") || '''조선후기''' 당시의 '''일반적인 경계 추정치''' || 1910년 당시 경성부 경계(빨간색).[* 근대적 측량으로 마련된 가장 최후의 성저십리 경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 [목차] == 개요 == [[한성]] [[사대문]] 주변 10[[리]](약 4km) 이내 지역을 말한다. 성외(城外) 지역이라고도 한다. 사대문안인 성내 지역과 다르게 상주 인구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으며, 매장과 벌목 등이 금지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왕릉(성북구 정릉 제외)이나 공동묘지가 성저십리 바로 코앞인 [[구파발]]이나 [[태릉(문정왕후)|태릉]] 등에 있었거나 [[서울/강남|강남]], [[남양주시|남양주]] 등 주변 지역에 있었던 이유다. 이와 같은 이유로 6대 이상 [[서울토박이]]들의 선산(가족묘지)은 [[고양시]], [[양주시]], [[남양주시]], [[용인시]] 등지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저십리를 조선시대의 [[그린벨트]]로 일컫는 사람도 있다. 성저십리와 사대문안을 합치면 그 면적이 현 [[서울특별시]] [[서울/강북|강북]] 지역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강북에서도 노원, 중랑, 광진, 도봉 전부와 은평구, 강북구, 마포구[* 상암동 중 난지도 지역.]의 일부 지역은 제외. 조선 당시에는 농촌 지대로, 사대문안 거주자들에게 식량 제공처와 같은 역할을 했다. 수송 수단이 발전하지 않은 전근대 사회에서 도시에는 항상 거주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평야가 필요했으며, 도시의 인구 규모는 거의 전적으로 해당 도시 근교의 식량 생산력에 의존했다.[* 이건 유럽을 포함한 세계 어디에서든 동일했다.] 한양은 한반도 최대도시로서 막대한 식량을 요구했기 때문에 근교에 넓은 농지가 필요했던 것이고, 어차피 한양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평야였기 때문에 행정구역상으로도 한성부에 편입시켜 놓은 것. 뒤에 또 나오지만, 사대문안이 진정한 한양이고, 성저십리 지역을 비롯한 당시 외곽지역(현 서울특별시에 속한)은 한양이 아닌 경기도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저십리도 조선시대 때부터 엄연히 '''한양'''이었다. 비슷하게 오해를 받는 [[한성부]]를 살펴보면, 한성부를 조선시대에도 경기도 관할이었단 점을 들어[* 사실 한성부가 완전히 경기도와 별개로 분리된 지역이라는 설과, 경기도가 한성부까지 간접적으로 관할했다는 설로 갈린다. 다만, 역으로 경기도도 [[포도청]]의 관할구역이었다.], '한양이 아닌 경기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성부]]는 조선 후기부터가 아니라 조선 초부터 중앙 직할의 행정기관으로 쳤으며,[[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181480&cid=40942&categoryId=33373|출처 : 태종때부터 중앙직할이라 기술.]] 정2품인 한성 판윤은 관찰사(현재의 도지사) 종2품보다 더 높은 직급이었다. 물론 [[여의도]]를 제외한 [[서울/영등포|영등포]], [[서울/강남|강남]]을 포함한 한강 너머 전 지역은 저 때도 경기도 [[시흥군]], [[광주시|광주]]군, [[과천시|과천]]군, [[양천구|양천]]군, [[부평구|부평]]부에 속했다. [[고려]] 초기에는 [[양주시|양주]]의 일부였다가 현 서울 도심일대가 [[남경]]으로 승격되면서 서대문구 일부와 용산구 일대가 그쪽으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양주의 일부로 남았다.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지금의 [[종로]] 일대를 수도를 잡고, 1395년 한성부 행정구역이 획정되면서 사대문안과 사대문안 주변 일부 동부지역이 한성부로 편제되었고, 그 범위가 점차 확장되다가 [[세종(조선)|세종]]때 성저십리의 큰 뼈대가 잡혔다. [[조선]] 조정에서는 한양(서울)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한양 외곽에 금표(禁票)를 여러 개 설치하였으며, 성저십리의 경계이기도 하다. 현재로 치면 [[한강]]([[용산구|용산]]포구)-[[마포구|마포]]-[[불광동]]-[[북한산]]-[[우이천]]-[[미아리]]-[[중랑천]]을 잇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료마다 성저십리의 경계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서, 그 정확한 경계는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성저십리의 경계를 갈랐던 자연하천은 우이천, 중랑천, 한강, [[홍제천]]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전기때 성저십리의 범위와 조선후기의 성저십리 범위, 그리고 [[구한말]]의 성저십리의 범위는 각기 다르다. 조선전기 기준으로 마포-부암동-[[정릉(강북)|정릉]]-종암동-[[청량리]]-[[왕십리]]-[[한남동]]이 경계. 혹은 이들 지역을 성저오리(城底五里)라 칭하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내부순환로]]와 비슷한 것 같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저오리 경계표는 원래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었다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성저오리는 현재 서울 도심인접생활권에 해당한다. '''이 문서에는 조선초기나 구한말이 아닌, 조선후기를 기준으로 작성한다.''' 동부 경계는 우이천과 중랑천이라는 확실한 자연경계로 나뉘어져 있어서 자료마다 별 차이가 없지만 서부 경계는 자료마다 제각기 다르다. 보통은 홍제천과 서대문-불광동 사이에 있는 작은 산맥(?)으로 보기는 하지만, 심지어 [[1949년]] 당시 서울시 서부 경계 혹은 1911년 당시 경성부 서부 경계를 성저십리 서부 경계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수색동과 상암동도 성저십리 추정지역 안에 들어가게 된다고... 네이버 지명사전에 수록된 동(洞) 역사 내용은 이 기준을 따른 듯 하다. 그런데 1911년 당시 경성부 경계는 일제에 의해 근대적인 방법으로 정밀하게 측량된 것이라서 오히려 이쪽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조선후기에 [[김정호]]가 발행한 <청구요람>에 따르면 한성부 서부 경계가 진관동 편입 이전의 서울시 서부 경계와 대체로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http://blog.naver.com/hiomc/20185439073|#]] 최완기 저 <한양>(교학사, 1997)에 따르면 [[영조]] 때 주민들의 요구로 성저십리 서부 경계가 서대문구에 있는 산맥(무악재/길마재?)에서 홍제천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연은방, 연희방, 상평방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의 성저십리 서부 경계는 반송방까지였던 셈. ~~왜 이리 자료마다 제각각인지~~ 1910년(1914년x) 당시 경성부 지도를 참조하면 구한말까지의 한성부 경계의 보다 정확한 윤곽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구한말 갑오개혁 이후 지금의 중곡동 등 일부 지역이 추가로 한성부에 편입되는 등 변동 사항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조선후기의 경계로 추정할 수만은 없는 측면은 있다. 2019년에는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조선시대 성저십리 연구를 집대성한 단행본을 발간했다. [[https://history.seoul.go.kr/m/contents/?u=435AA831-AC4D-52F5-1193-AE66C28BD77D|여기에서 무료로 열람하기]] 해당 단행본에 따르면, 18세기 중반 이전에는 성저십리는 행정상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저십리 주민들은 한성부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조세는 한성부 편입 이전 원 소속 군현(양주목, 고양군)에 납부했던 것. 흥미롭게도 흑석동은 한때 애매하게 성저십리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애매한 모습은 18세기 중반 이후로 성저십리가 한성부 5부 체계에 완전 편입되면서 정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이름에 계가 붙었다.(예: 안암동계, 여의도계) 조선후기 식량난으로 지방출신 이주민들이 한양으로 모여들자 사대문안 지역의 인구수용능력에 한계에 도달하여 현 서울역 주변지역과 현 창신동, 숭인동 일대부터 민락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성저십리 지역 인구 수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 시절은 물론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이러한 무허가 민락의 증가로 주거환경이 악화되자 1930년대부터 성저십리 일부지역에서 오늘날의 신도시개발과 비슷한 형태의 계획적 도시개발이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현재 삼선교(동소문동)-돈암동(동선동)-보문동 지역과 이대 후문 일대 및 영등포역 인근(이곳은 공업지역으로 개발). 총 10여개가 넘는 지역이 개발예정이였으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으로 위에서 언급한 돈암,대현,영등포지구만 완료되고 타 지구는 개발 도중 개발중단, 혹은 아예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고양주면 일부가 한성부에 편입되었다 (지금의 광진구 중곡동 등). [[1914년]]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용산 일부([[서울역]] 인근 포함)와 현 창신동, 숭인동 일대를 제외한 성저십리 전 지역은 '''[[경기도]] [[고양시|고양]]군'''에 모조리 편입되었지만, [[1936년]]과 [[1949년]]에 차례로 서울(경성부)에 다시 흡수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조선시대 한양이라 하면, 대개 '''사대문안'''으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명한 것은 인근 외곽지역이었던 성저십리 지역도 분명히 한양(한성부)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1994년]] 한양600주년 행사로 정부가 서울토박이를 물색하면서 내세운 지역적 조건에는 한양 사대문 안 뿐만 아니라 성저십리 지역도 포함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22500289113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12-25&officeId=00028&pageNo=13&printNo=1770&publishType=00010|기사]] 영문 위키백과에는 성저십리의 영어 의역인 Outer old Seoul이라는 [[https://en.wikipedia.org/wiki/Outer_old_Seoul|표제어로 올라가 있다]]. == 이모저모 == === 오늘날 부동산과의 연관성 (?) === 옛 성저십리는 오늘날 서울 도심지와 접근성, 근접성이 좋기에 몇몇 지역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강북이라고 말하는 지역과는 달리[* 도봉, 노원, 중랑이라던지.. 성저십리에서도 최외곽에 속하는 은평구, 강북구라던지.] 집값이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여의도, 마포([[홍대거리|홍대]], 공덕, 용강), 용산(통칭 동부이촌동인 이촌1동, 한남동 및 서빙고 일대.), 성동(왕십리, 옥수동, [[성수동]]), 성북(성북동, 삼선교 일대의 일부 저택과 아파트.), 서대문(연희동) 등이 있다. 물론 대표적인 부촌인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모두 성저십리 지역에 있다. 하지만 은평구나 강북구, 성북구의 장위-석관[* 장위동과 석관동의 경우 성북 중심가의 생활권과는 거리가 멀고, 동대문의 이문과 강북의 미아와의 교류가 가장 강한 미아-이문으로 이어지는 생활권이다. 실제로 장위동과 석관동의 경우 미아사거리와 이문동 사이의 정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과 같은 비교적 외곽지역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강북 부동산 시장을 달구는 '''[[마포구|마]][[용산구|용]][[성동구|성]]'''은 바로 이 성저십리에 있다. === [[인서울 대학교]] === '''인서울 주요 대학들이 성저십리 지역에 몰려있는 편이다'''. 신학문이 도입되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건립된 고등교육기관의 전신이 대부분 한성부 사대문 안이나 성저십리 일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래의 대학 중 '''굵은 글씨'''는 [[광복]] 이전부터 현재 위치에 자리잡고 있던 학교들이다. * 연희방, 서강방 - '''[[연세대학교]]'''[* 전신 중 하나인 [[연희전문학교]]가 현재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는 [[서울역]] 앞에 위치.],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명지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이화학당]]을 설립학 당시에는 정동에 위치하였다. 그러다가 1935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는 정동에 남고 [[이화여자전문학교]]는 현재의 신촌 캠퍼스로 이전했다. 현재 정동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추계예술대학교]] * 숭신방 -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사대문 안인 수송동에 건립되었다. 현재 위치인 안암동으로 이전한 시기는 김성수가 재단을 인수한 후인 1934년.], '''[[성신여자대학교]]'''[* 1936년 설립 당시에는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하였고, 1944년 현재 위치인 돈암동(동선동)으로 이전했다.], [[국민대학교]], [[한성대학교]], [[서경대학교]] * 인창방 -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1918년에 전신인 경성공립농업학교가 세워졌고, 1937년에 현재 [[서울시립대학교]]의 경농관, 박물관, 자작마루가 세워졌다.] * 용산방 - '''[[숙명여자대학교]]'''[* [[순헌황귀비]]가 1906년에 전신인 [[숙명여학교]]를 세울 당시에는 사대문 안 정동에 있었고,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38년.] * 반송방 - [[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 두모방 - '''[[한양대학교]]'''[* 1939년 설립됐던 전신 동아공과학원은 사대문 내부인 천도교회관(현. 수운회관) 자리에 있었다. 종로경찰서 뒤편. 현재 서울캠퍼스는 53년 휴전이후 조성되었다.],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 건국대, 세종대 부지는 원래는 양주군 고양주면이었으나 갑오개혁 이후로 두모방으로 편입.] * 상평방 - '''[[상명대학교]]'''[* 단, [[상명대학교]]의 전신인 상명여자고등기예학교는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했었고, 상명실천여학교 또한 종로구 사직동에 자리잡았다.]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으로는 * 사대문 내부 -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 [[성균관|여기는 설립된지 '''620년이 넘도록 이 자리에 꿋꿋이 남아 있다.''']]]''',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연건캠퍼스]]'''[* 1924년 개교한 [[경성제국대학]].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 동숭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방송통신대학교]],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이 있다. [[배재학당]]의 경우 정동에 있었으나 [[배재고등학교]]로 바뀌면서 강동구로 이전했다. 그리고 성저십리 바깥, 즉 당시에는 서울이 아니었던 곳에 위치한 [[인서울 대학]]으로는 [[서울대학교]][* 신림동 [[서울대학교/관악캠퍼스|관악캠퍼스]] 기준. 다만 본래는 지금의 [[서울대학교/연건캠퍼스]]([[서울의대]]/[[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대]]/[[서울대학교 간호대학|간호대]]) 인근에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모여 있었다. 괜히 [[대학로(서울)|대학로]]가 아니다.],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영락교회]]와 함께 사대문내 [[을지로]] 쪽에 있었다. 1957년 상도동(당시 영등포구)으로 이전하였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 화양동, 능동 일대가 원래는 [[양주시|양주군]] 고양주면 지역이었으나 [[갑오개혁]]으로 두모방 편입], [[광운대학교]][* [[광운대]]의 경우 간반의 차이로 성저십리 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케이스. 광운대 코앞 우이천만 건너가면 [[성북구]] 장위동, 옛 한성부 인창방 장위리다.], [[삼육대학교]] 등이 있다.[* [[중앙대]], [[숭실대]] 자리는 1936년 경성부 편입, [[건국대]], [[세종대]] 자리는 1949년 [[서울시]] 편입, 나머지 인서울 대학들 자리는 1963년 서울시 편입.] === [[서울토박이]] 거주지 === 서울토박이 상당수가 종로구 뿐만 아니라 도봉구, 성북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여의도, 압구정 및 강남, 과천, 분당 등지로 이주한 서울토박이도 드물지 않다는 점은 유의해둘 것. === 서울시 분할론(?)의 경우? === 만일 서울시가 분할/축소된다면 서울시의 범위가 이 성저십리까지 축소될 개연성은 있다.[* 이때 마포구 상암동, 은평구 진관동, 성동구 성수동 등의 성저십리 자치구 소속이지만 성저십리가 아니었던 곳들은 분리시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불일치해서 그거대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서울시에 존치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기존 서울 강북 상당부분은 서울직할시로 남게되고 노원/도봉/의정부는 양주시 편입, 중랑/광진/구리는 남양주시 편입 --본격 구 [[양주시|양주군]] 부활--, 한강이남은 영등포광역시[* 이 경우 기존의 경기 광명은 신설 영등포시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본격 구 [[시흥군]] 부활-- 그리고 강서구 일부는 김포시에 편입.]와 '''강남광역시'''[* 다만 강동구와 송파구 남부는 하남시와 성남시에 편입될 수도 있다. --본격 구 [[광주시|광주군]] 부활--]로 분할될지도. === 기타 === 성저십리 지역의 명칭들은 현재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용산방은 오늘날 "용산(구)"으로, 두모방은 두모교(교량)으로, 숭신방과 인창방은 "숭인동"과 "창신동", "숭인초등학교"으로, 연희방은 "연희동", 서강방은 "서강대교", "서강대학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연'''은'''방과 상'''평'''방은 "은평(구)"로 살짝이나마 유추할 만한 흔적을 남겼다. 연세대학교의 교명에서 연은 연희동 내지는 연희방을 의미한다.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합병된 학교이기 때문. 서울 상공에 지정된 비행금지공역(RK P73)[* 이곳에서 드론을 함부로 날렸다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가 출동한다(...). 수방사 사령부 작전처와 [[제1방공여단]]이 매의 눈으로 초소형 비행체의 불법 비행을 감시하기 때문. 무시하고 날렸다간 진짜로 대공포 날아온다.]이 성저십리와 유사하다. 성저십리 지역을 논할 때 [[닭한마리]]라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지역을 자주 왕래하는 외국인들에게 매우 유명하다. 오히려 서울에서 태어나고 평생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성저십리에 살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 === 자료마다 제각각인 경계 === 성저십리 또는 옛 한성부의 구체적인 경계는, 구한말 이후를 기준으로 하자면 일제가 근대적인 측량법으로 제작한 지도로 정확한 경계를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까지의 경계는 자료마다 제각각이다. [[파일:attachment/성저십리/서울역사박물관지도.jpg]] 서울역사박물관에 걸려있는 지도. 이 문서 상단에 있는 지도는 이 지도를 많이 참조하였다. 그런데 [[여의도]]가 빠져있다는 점이 다른 점. [[파일:attachment/성저십리/강남변천사책지도.jpg]] [[서울특별시]]에서 발간한 강남 변천사 관련 단행본에 실린 지도. [[은평구]] 일부와 [[마포구]] 일부 일대가 1911년에 경성부로 편입되었다고 나와있는데, 그 이전에 갑오개혁 이후 현재의 [[광진구]] 일부가 한성부 두모방에 편입된 내용이 누락된 오류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강북구]] 북서부 지역에 대한 해명이 보이지 않는다. [[파일:attachment/성저십리/구한말한성부.jpg]] 구한말 당시 한성부 지도. 출처 불명. 지금의 [[광진구]] 일부가 두모방에 편입되어 있는 상태이다. [[여의도]]가 빠져있다. [[파일:attachment/성저십리/경성부초기.jpg]] 1914년 대개편 이전의 초기 경성부 지도로, 출처 불명. 앞서 살폈다시피 상당수 자료에서 [[여의도]]가 빠져 있는데, "너나 가져라" 라는 의미에서 '너의 섬'이란 뜻으로 '여의도'란 이름이 붙었다는 [[썰]](...)에 걸맞게 사실상 [[무주지]]나 다름없는 곳으로 신경 안 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이버 지명사전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여의도도 한성부의 일부로서 관리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금천구|시흥군]]이나 [[강서구(서울특별시)|양천]][[양천구|군]]에서 관리했다는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구한말부터 [[1914년]] 이전까지 [[강북구]] 북서부, [[은평구]] 서부, [[마포구]] 서부(상암동 등), 광진구 일부가 한성부에 추가 편입되었을 정황이 보인다. 하지만 광진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추가 편입에 대한 내용이 거의 언급이 안된 상태이다. == 당시 산하 행정구역 == 조선시대 내내 사대문안, 성저십리 막론하고 방(坊)이 수십 개 있었으며, 사대문안에 있는 방들은 각 방의 면적이 오늘날의 동과 맞먹을 정도. 성저십리 지역은 방이 6~8개 정도 있었다.[* 사대문안의 방은 동, 성저십리의 방은 면으로 보면 쉽다. 즉, 이 당시의 서울은 도농복합도시였다.]아래는 조선 후기 기준으로 한다. === 조선후기 === 정조때 기준으로 한다 * 숭신방: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부[* 지금의 성북(갑) 선거구 지역과 얼추 일치한다.], 강북구 일부 * 인창방: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일대(장안동 제외), 성북구 동부[* 지금의 성북(을) 선거구 지역과 얼추 일치한다.] * 두모방: 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일부 * 용산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상당부분 * 한강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 일부 * 서강방: 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일부 * 상평방: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외 북부지역, 은평구 일부, 고양시 효자동 및 북한동[* 1755년 고양군 읍지에서는 고양군 하도면 청담리 소속으로 나와 있지만, 이 이후의 기록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소속(훈창계)으로 나와있다. 조선후기 북한산성 축조 이후로 한성부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 연희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대, 마포구 일부(홍제천 동쪽), 영등포구 여의도 * 연은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은평구 일부 * 반송방[* 면적이 상당히 좁았다. 그런데 반송방은 특이하게도 사대문안 일부 지역또한 포함되었다. 사대문안 지역까지 포함하자면 지금의 충정로 일대까지. 아까 그 경성부 초기 지도에서 도성내 5부 중 서부 관할지역이 반송방 지역이라고 보면 될 듯.]: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마포구 일부 === 구한말 === 굵은 글씨 처리된 곳은 [[갑오개혁|1895년에 한성부에 편입된 곳]] * 숭신방: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부, 강북구 일대 * 인창방: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일대, 성북구 동부 * 두모방: 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일부(중랑천 이동지역)''', '''광진구 일부(중곡동, 군자동, 능동, 화양동 및 자양동 일부[* 구 노유동 영역])''', '''중랑구 면목동'''[* 양주군 고양주면이 1914년 대개편때 고양군에 편입된 이유로는, 원래의 고양주면 영역의 상당부분이 이미 한성부 두모방에 편입된 상태인데, 옛 성저십리 지역이 고양군에 편입되면서 곁따라 넘어간 것이다.] * 용산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일부, 여의도 * 서강방: 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남부 일부 * 상평방: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외 북부지역, 은평구 일부, 고양시 효자동 및 북한동 * 연희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부분, 마포구 서부 * 연은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은평구 일대 (진관동 제외) * 한강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부분 * 둔지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일부, 성동구 일부(중랑천 이서지역) == [[한양]] 성저십리에 해당했던 현 서울특별시 지역 == (조선말기 기준)[* '''당연하지만 [[종로구]], [[중구(서울)|중구]]에서 여기 서술되지 않은 동네의 경우 전부 다 [[사대문안]]이다.'''][* 지금은 명동, 남대문이 속한 중구 일대가 도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종로구, 중구 일대 거의 대부분이 사대문이었긴 해도 종로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성저십리가 아닐 것 같은 강북구(미아,수유), 은평구(연신내,불광,수색) 일대까지 대부분 성저십리에 들어가 있다.] 구한말에 성저십리로 신규편입된 지역은 성저십리로서의 역사가 짧기에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 * '''[[종로구]] : 부암동, 평창동, 창신동, 숭인동 등 종로구 중 성곽 외부지역''' * '''[[중구(서울)|중구]] : 신당동, 황학동, 중림동 (즉, 성곽 외부지역)''' * [[동대문구]] 대부분 (장안동 제외) * [[성북구]] 전역 * [[용산구]] 전역 * [[서대문구]] 전역 * [[강북구]] 대부분[* [[우이천]] 이남. 현 수유동까지는 성저십리였고 우이동 일부의 우이천 이북 지역은 성저십리가 아닌 양주목이었다.] * [[성동구]] 대부분. 성동구 중에서 광진구와 맞닿아있는 성수동 일부지역은 성저십리 지역이 아닌 양주목이었다. * [[마포구]] 대부분[* 상암동 중 월드컵로 이남(난지도 포함)은 성저십리가 아니고 고양군에 속했다.] * [[여의도]](!)[* 아래 송파구 항목과 비슷하게 조선 초기에는 여의도지역이 한강 남쪽보다는 북쪽에 더 가까왔다. 이후 물길의 변화로 지금과 같이 된 것.][* 하지만 조선 건국 이전 여의도는 [[잉벌노]]→곡양→금주로 이어지는 [[시흥시/역사|영등포, 금천, 광명 일대와 동일한 행정구역]]이었다. 여의도의 옛 이름인 '잉화도'의 명칭 자체가 잉벌노에서 유래되었다.] * [[은평구]] 대부분[* 1973년에 서울 편입된 현 진관동(옛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 제외. 앞의 지역은 양주목이었다. 1394년에는 녹번동, 불광동, 응암동만 성저십리였고 조선 후기에는 진관동을 제외한 은평구 전역이 성저십리로 편입된다.] == 한양 성저십리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대문안 지역인 종로구, 중구 대부분 지역은 제외] 현 서울특별시 지역 == 여기서 행정구역 명칭은 조선 후기가 기준. 부, 목, 군, 현은 1896년(구한말)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전부 '군'으로 치환. * [[고양시|고양군]][* 1914년에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 대부분이 고양군에 편입.] 지역 : 마포구 상암동 일부[* 구 [[난지도]] 지역]. 다만 세부 사항은 자료마다 다름에 유의. * [[양주시|양주목]] 지역 : [[노원구]], [[도봉구]], [[중랑구]], [[광진구]] 전역, [[강북구]] 일부, [[성동구]] 일부(성수동, 송정동), [[송파구]](!) 일부(잠실)[* 위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잠실 일대는 원래 본류였던 송파강(1970년대 잠실 개발로 매립되고 일부 흔적이 석촌호수가 됨)의 북쪽에 있던 강북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홍수로 신천강(지금의 본류)이라는 지류에 둘러싸인 잠실섬이 된 것.], 은평구 진관동[* 구파발 일대. 구한말까지는 신혈면이 양주에 속했으나 1906년에 고양군으로 이관되었다.] * [[시흥군|시흥(금천)현]] 지역 : [[구로구]] 안양천 동부(구로동, 신도림동, 가리봉동), [[금천구]] 전역, [[영등포구]] 대부분(여의도, 양화동 제외), [[관악구]] 일부(신림동, 봉천동), [[동작구]] 일부(대방동, 신대방동, 상도동) * [[과천시|과천현]][* 1914년에 시흥군에 통폐합] 지역 : 동작구 일부(사당동, 노량진동, 동작동, 흑석동), 관악구 일부(남현동), 서초구 대부분(내곡동, 염곡동, 신원동 제외) * [[부평구|부평도호부]][* 1914년에 부천군으로 개편] 지역: 구로구 안양천 서부(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수궁동),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일부(오곡동, 오쇠동) * [[양천구|양천현]][* 1914년에 김포군에 통폐합] 지역 : [[양천구]] 전역, 강서구 대부분(오곡동, 오쇠동 제외), 영등포구 일부(양화동) * [[광주시|광주부]] 지역 : [[서초구]] 일부(내곡동, 염곡동, 신원동), [[송파구]] 대부분(잠실 제외), [[강남구]], [[강동구]] 전역 == 옛 성저십리 지역내 주요 동네 == * '''[[성북동(서울)|성북동]]''', [[안암동]], [[삼선교]] * '''[[청량리]]''' (+[[전농동]]) * '''[[미아리]]''', [[수유리]] * '''[[마포]]''' * '''[[신촌]]''', '''[[홍대거리]]''' * '''[[용산구]]''', '''[[이태원동]]''', (동부) [[이촌동]], [[한남동]] * '''[[신당동(서울)|신당동]]''' * '''[[왕십리]]''', '''[[답십리]]''' * [[여의도]] == 같이 보기 == * [[경기도]] * [[고양시]] * [[서울/강북]] * [[서울특별시/역사]] * [[양주시]] (조선시대 한양 천도 이전) [[분류:서울특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