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창녕 성씨]][[분류:창녕군 출신 인물]][[분류:1925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 || 성명 ||<(> 성일영(成一永) || || 일본식 성명 ||<(> 成田一永 || || 이명 ||<(> 성일영(成壹永) || || 본관 ||<(> [[창녕 성씨]] || || 생몰 ||<(> [[1925년]][* [[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738&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1703&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1945년 당시 판결문]]에는 당시 51세로 기재되어 있어 이견을 보인다.] [[2월 7일]] ~ [[1986년]] [[7월 20일]] || || [[출생지]]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인근의 외부리와 함께 [[창녕 성씨]] 집성촌이다.] || || 추서 ||<(>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성일영은 1925년 2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면(현 창녕읍) 직교리에서 태어났다. 1942년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곽태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전쟁이 확산되던 그해 3월경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비밀결사대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77304&cid=51931&categoryId=54239|호의단]](護義團)을 조직하였다. 곽태진은 호의단 총수가 되어 경상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종표(都鍾杓)를 비롯한 10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는데, 성일영은 1943년 고향인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이에 포섭되어 호의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들은 일제가 [[내선일체]]·[[일선동조론]] 등의 [[식민사관]]을 동원해 한국 민족의 정통성을 부인한 것을 응징하려는 목적으로 당시 [[달성군]] [[현풍읍|현풍면]]에 있던 현풍[[신사(신토)|신사]]를 불사르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또한 독립운동 방안으로 무장투쟁을 전망하여 고령과 [[청도군|청도]] 등지의 경찰서에 보관 중인 무기를 탈취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자의 밀고로 더 이상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였고, 1945년 6월경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금되었다가 곧 [[8.15 광복]]을 맞아 대구지검에서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아 출옥하였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738&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41703&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이후 [[대구광역시|대구부]]로 이주하여 [[대봉동]]에 거주하다가 1986년 7월 20일 별세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