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28370149.jpg|width=150]] 成元慶 1894년 2월 14일 ~ 1975년 7월 30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1894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경제과를 졸업했다. 이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취체역, 호서은행 천안지점장, 충남제사회사 사장, 예당수리조합장 등의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충청남도 도의회 의원, 면협의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1930년대부터 시중회와 배영동지회,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반민족 단체에 꾸준히 가담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예산군지부 운영위원장과 반탁독립투쟁위원회 예산지부장을 지내는 등 [[우익]] 운동에 뛰어들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여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민주당이 창당되던 1955년 중앙상무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윤병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제9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발하여 탈당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분야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서는 친일단체 부문에도 중복 선정되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정치]][[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중추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친일단체]][[분류:예산군 출신 인물]][[분류:주오대학 출신]][[분류:1894년 출생]][[분류:197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