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width=600><:><-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529C, #B30000)" {{{+2 {{{#FFFFFF '''선진과 창조의 모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ews1217902639_120928_1_m.jpg|width=100%]]}}} || ||<:>'''결성일'''||<colbgcolor=#fff,#1f2023> 2008년 8월 6일 || ||<:>'''해산일'''|| 2009년 9월 1일 || ||<:>'''교섭단체 대표'''||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2008년),,, [br][[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2009년),,, || ||<:>'''국회의원'''|| 20석[* [[자유선진당]] 18석, [[창조한국당]] 2석.][* 총 의석수는 3석이었으나, 후술할 교섭단체 합류 거부 문제로 2명의 의원만 참여했다.] / 300석 || [목차] == 개요 == 6대 국회의 삼민회에 이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 공동 교섭단체'''.[* 사실 정당들끼리 만든 공동교섭단체로야 두번째지, 무소속 의원들이나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끼리 만든 공동교섭단체는 대한민국 역사에 엄청 많았다. 정당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인 제1~2공화국 시절에는 신정동지회, 민정구락부, 민우회 등 [[무소속]] 의원들이 모여 만든 교섭단체가 셀 수 없었고, 제3~5공화국에서도 있었다. 심지어 제6공화국에서도 있었다. 제17대 국회 때 [[중도개혁통합신당|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 제20대 국회의 [[민주통합의원모임]] 등.] 2008년 8월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공동교섭단체를 출범시켰다. 창조한국당의 비례대표 2번인 [[이한정(정치인)|이한정]] 의원은 당내에서 당선 무효 소송을 건 상황이라 참여하지 않았고, 그가 당선 무효 된 후 비례 3번 유원일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해서 활동했으나 그 역시 교섭단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유원일 의원이 2012년 연초 자진 탈당하면서 선경식 당 대표가 비례대표를 승계하였다. 원내교섭단체라는 한 배를 타고 있었지만, 사실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를 들어 2008년의 [[박왕자 씨 피살사건]] 때 창조한국당은 청와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자유선진당은 이 기회에 북한의 해상에 쳐들어가야 한다고 논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가 장관 3명 임명을 강행하자 선진당은 인사청문 시한을 넘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치를 비난하며 대통령은 할 일을 했다고 두둔했지만 창조한국당은 대통령의 독단이라고 비난했다. KBS [[정연주(언론인)|정연주]] 사장의 해임 문제에 대해서도 선진당은 정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반면, 창조한국당은 대통령을 공격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군 재파병 문제도 선진당은 찬성, 창조한국당은 반대였다. 성향이 전혀 다른 두 당이 머릿수만 간신히 맞춘 교섭단체라 거대양당을 견제하는 제3세력 역할은 고사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혼란만 더하는 야합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최후 == 짝수년은 자유선진당 의원(권선택 의원 4개월)이, 홀수년은 창조한국당 의원(문국현 의원 7개월)이 교섭단체 대표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결국 가까스로 20석으로 유지되다가 2009년 8월 [[심대평]] 의원의 탈당에 이어 교섭단체를 탈퇴하며 공중 분해, 심대평 의원이 탈당 된 다음날 유원일을 가입시키려 애썼으나 요구가 맞지않아 그 다음날 결렬됐다. == 관련 문서 == * [[교섭단체]] [[분류:대한민국 국회]][[분류:자유선진당]][[분류:창조한국당]][[분류:2008년 설립]][[분류:2009년 해체]][[분류:나무위키 정당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