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박성훈 감독\, 봉태규 주연의 한국영화, rd1=썬데이 서울, other2=록밴드 중식이가 부른 노래, rd2=Sunday Seoul)] [[파일:attachment/sdseoul1.jpg|width=300height=400]] 1990년 10월 14일 제1130호의 표지. 표지의 모델은 [[김혜수]]이다. [목차] == 개요 == >어둠의 색깔은 총천연색이다. >나는 너무 빨리 까졌다. > >여섯 살 때 좀도둑질을 해 봤고 >전주 남부시장통 지하다방 레지 누나의 종아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 >나는 그때 미취학 아동이었다. >바른생활 책이나 월말고사 우등상보다 >현란한 싸구려 화보가 나를 성장시켰음을 고백한다. > >부르는 소리도 없었는데 >나는 왜 접근금지인 세상을 꿈꾸었을까. >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상 >깊은 구멍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이 >왜 내 生을 상기시켰을까. > >선데이 서울. > >내 生에 총천연색 욕망을 칠해놓고 >그것이 어둠임을 가르쳐주었다. >한때 내 經이었던. > >- 황규관의 시 <선데이 서울> 1968년 9월 22일 창간하여 1991년 12월 29일 제1192호를 끝으로 폐간된 [[서울신문]] 계열의 성인용 주간 잡지다. 당시 이러한 황색 잡지의 [[대명사]] 격으로도 쓰일 정도의 [[네임밸류]]가 있었다. 당시 서울신문이 [[문화체육관광부|공보처]]의 감독을 받던 관영 언론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우민화 정책|정부에서 간접적으로 성인잡지]]를 펴낸 셈이다. == 역사 == ||'''선데이 서울의 편집 계획서''' 2)편집의 방향 1. 가급적 비 정치적인 교양 내지 오락 위주의 주간지로 한다. 2. 표지는 일본의 각 주간지와 같이 비 시사성의 표지로 한다. 3. 내객 기사의 편집에 있어서는 가벼우면서도 유익한 독자 위주의 사건 실화들을 겸하여 싣는다. 4. 정치적인 것은 가급적 정책 면을 피하고 '정계 야화'나 '인물 평'으로 한정시킨다. || ||<tablewidth=100%><width=50%>[[파일:선데이서울 창간호.jpg|width=100%]]||<width=50%>[[파일:선데이서울 최종호.jpg|width=100%]]|| || 1968년 9월 22일 창간호[* 표지모델은 연예인이나 직업모델이 아니며 평범한 은행 직원으로, 그 해 “미스 [[조흥은행]]”으로 뽑혔던 이영임 씨라고 한다.] || 1991년 12월 29일 마지막호[* 표지 모델은 [[고현정]].] || 1968년 창간 당시 선데이 서울은 80쪽에 싼 가격인 20원으로 팔려 창간 때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원래 5만 부를 찍으려다가 6만 부를 찍었는데 두 시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당시 태평로 서울신문사 사옥 앞에 선데이 서울을 사려는 가판 소년들[* 소위 “신문팔이” 소년으로, 당시에는 청소년들이 신문이나 주간지 등을 들고 다니며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현관문 유리가 깨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후 선데이 서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975년에 월 1억 원의 수익을 올려 서울신문의 재정에 보탬이 되었고, 특히 1978년 신년호는 23만 부의 판매 기록을 돌파했으며, 지면도 창간 때보다 52쪽을 더해 132쪽으로 늘어났다. 선데이 서울이 나오자 경쟁 업체인 [[경향신문]]이 <주간경향(1968년 창간)>, [[중앙일보]]가 <주간중앙(창간년 동일)>, [[한국일보]]가 <주간여성(1969년 창간)>을 내기도 했지만 선데이 서울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1988년 3월에 선데이 서울은 지령 1천 호를 맞이하였는데 이때까지 나온 표지 모델은 무려 8백 여 명이었다. 초창기에는 직장 단위로 선발 대회를 열어 은행을 비롯한 일반 직장에서 소문난 미녀를 모델로 썼으며 이들은 훗날 모임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사회가 급변하였다. 우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언론기본법의 폐지로 신문과 잡지 발행이 자유로워지면서 경쟁매체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또한 스포츠 신문이 언론자유화 조치의 영향을 받아 앞다투어 지면을 늘리며 주간지의 영역을 침투했다. 또한 동시기에 [[VTR]]이 대중화되면서 각종 성인영화들이 주간잡지들을 밀어내면서 선데이 서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1991년 12월 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폐간의 배경에 대해 <서울신문 100년사>는 "언론사가 언제까지 시대 착오적인 황색 매체를 고집할 것이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노골적인 항의의 움직임을 보였다"고 전했다. == 여담 == 당시 중/고등학생들이 몰래 보다가 걸려서 혼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학교의 폐지수집일에는 이 잡지의 공개적 거래가 성행하기도... 1970년대 초까지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여성이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위 창간호의 모델도 당시 [[조흥은행]]의 창구 직원인 19살의 이영임씨로, 1949년 광주 출생이며 인천 [[인천비즈니스고등학교|선화여상]]을 졸업 후 갓 입사해 창구일을 배우던 시절이다. [[채널A]]의 '백일섭의 그때 그 사람'에서 이분의 근황을 추적했으나 워낙 오래 전에 근무했던 분이라 근무기록을 찾을 수 없어 실패했다. [[https://blog.naver.com/s5we/220250649601|#]] 2020년 2월부터 [[이마트]]가 이벤트의 일종으로 선데이 서울이란 제목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기존 월간 정보지였던 '월간 가격'을 계승한다. [[분류:성인잡지]]